살아서 맞이한 지옥은..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 신곡 지옥편)
요즘식으로 계산하는 나이법으로는 그때 내 나이가 고작 24살이나 되었을까?
첫 아이의 돌잔치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고등학교 동창이자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 준비 중이었던 친구가 가전제품을 보러 간 그곳에서 남편과 어느 여자가 깍지 끼운 손을 잡고
구경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인 줄 알았다고 했다.
곧이어 다른 친구에게서도 연락을 받았다. 우리가 자주 갔던 식당에서 네 남편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관계의 어떤 여자와 식사를 하고 멋진 외제차를 타고 나가더라 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1995년 가을이었다.
알아보기 시작하니 쉽게 알게 되었다.
그가 몰래 외제차를 구입하여 숨겨놓고 타고 다닌 것도, 나와 갔던 식당과 해외여행지의 호텔들로 다른 여자들과 여행을 갔었던 것도, 매일 바쁜 회사일정 때문에 집을 비운게 아니라 그 시간들은 늘 다른 여자들과 바빴었다는 것도.
그는 강남의 한 오피스텔을 얻어 혼자 사는 총각행세를 했고, 만나는 여자들은 비행기승무원으로 시작해서 술집 접객원, 평범한 회사원, 대학원생등 다양했다.
그중 한 명의 손목에 내가 남편과 함께했던 여행지 면세점에서 골라준 티파니의 시계가 채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 나는 한없는 절망과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맞다. 이혼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 IMF 사태가 일어났다.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어야 할 친정은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사업체의
부도와 개인적인 연대보증건 때문에 살던 집마저 날렸다. 대책 없이 무너지는 친정은 대학 다니던 여동생이 휴학을 하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대입 진학을 코앞에 둔 고등학생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친정은 회복의 여지없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때의 성수대교처럼, 어떤 백화점처럼.
믿을 수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균형을 잃고 쓰러져가는 나 자신과 친정의 모습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시로 손이 가고 챙겨야 했던 아이가 아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자상하게 자녀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분은 아니었지만 늘 내 마음에서부터 존경과 사랑이 있었던 아버지가 나에게 보이신 허물어져가는 모습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우선 나는 친정의 급한 불부터 꺼야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논하거나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이혼을 지금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와는 달랐다. 왜냐면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돈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생기는 수많은 부채를 해결해 주셨던 시부모님 중 특히 나를 예뻐해 주시던 시아버님이 가끔 손에 쥐어주시던 꽤 큰 목돈들은 친정의 급한 일에 너무나 요긴하게 쓰이는 가뭄의 단비였기 때문이었다.
인테리어 잡지에 두 번이나 소개될 만큼 예쁘게 꾸며놓은 그 집에서 나는 밤에 아이를 재우고 뒷베란다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 울며 담배를 피우는 일이 많아졌다.
채 30살도 되지 않았던 , 참 이쁜 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