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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Dec 10. 2023

살아있으나 죽은 삶

정말 그랬다.

나는 살아있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숨은 붙어있으나 호흡하기가 어려웠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늘 따로 돌아다녔다.


정확히 바뀌는 계절처럼 일 년여를 멀다 하고 그의 미친 짓은 계속 반복되었다. 세 번째 즈음이었을까? 그때는 그가 어느 여자에게 청혼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이제 그만 결혼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자 바로 시어머님은 이혼할 경우 애는 못 데려간다고 일찌감치 못을 박았다. 사실 그건 친정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가슴 아파도 애는 두고 와야 이혼의 의미가 있는 거라고 하셨다.  혼자 키울 능력도, 그렇다고 친정의 도움을 구할 상황도 아님은 분명했다.


미칠 거 같았다.

정작 당사자 중의 하나인 그는 사건이 불거져 드러나면 사라졌다가 부채문제가 해결되고 여자문제마저 정리가 될 즈음 슬며시 나타났다.

팔이란 건 세상이 두쪽 나도 안으로 굽는 게 정상인 거였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걸 처리해 주시던 시아버지도 첫 손자 문제에서는 명확한 선을 그으셨다.

내가 낳은 아이인데 내 아이가 아니었다.


아이는 너무 순하고 이뻤다.

미친 듯 돌아가는 상황과는 상관없이 보채거나 크게 아픈 일 없이 순둥순둥 잘 자랐다.

나는 그 자라나는 생명 앞에 기를 쓰고 고쳐 앉고, 고쳐 일어섰다.

그 생명력이 나에게 덧씌워지길 간절히 바랐다.

아이를 돌보는 일만이 나를 움직이게 했고 숨 쉬게

했다.  

그 어디에도 쓰러져 울 데가 없었다.


그 사람의 미친 질주에 함께 실려 떠다니며 나는 내가 어떤 결심을 해야 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살았으나 죽은 것과 같은 시간들이 흘러갔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나는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의 모든 일들을 함께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 네가 나중에 엄마에게 너의 어린 시절을 물어볼 때 너는 이런 아이였다고, 너의 시시콜콜한 역사를 기억해 주는 그 한 사람.


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이 아이를 포기하고 얻게 될 다른 미래가 설사 나의 모든 고통을 상쇄하고도 넘쳐날 만큼의 행복을 준다 해도, 그 행복한 시간조차 괴로운 고통으로 느끼게 될 터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아이의 곁을 지킬 수 있는 엄마의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길은 친정의 숨통도 조금은 틔워줄 수 있는, 그때의 어린 내가 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길이었다.


나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을 다시 곱씹고 싶은 게 아니다. 내가 얼마나 잔인한 시간을 헤치고 지금껏 왔는지 말하려는 게 아니다.

누구를 비난하여 나를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다만, 무지하고 어렸던 내가 나의 아픔을 나의

노래로 부르게 되기까지 걸어온 시간들을 되짚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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