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떨어져 생활한 지 4년이나 되었음에도, 남편과 나는 어느새 비슷해지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지출 부분에서 말이다.
우리의 변화는 씀씀이에 있었다. 미혼일 때 때 나는 과소비를 하진 않았지만 '잔 소비'가 많은 편이었다. 커피를 매일 마셔야 했고, 볼펜에 유독 집착을 했다. 그리고 가끔은 몇 달 혹은 몇 년을 고민 고민하다가 통 크게 물건을 사곤 했다. 하지만 남편은 결혼 전 본인을 위한 지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물건을 거의 사지 않았다. 받은 물건, 주은 물건 등을 사용했다. 모든 물건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당연히 그에겐 절약이 베여있었다. 이랬던 우리는 신혼 때 생활비 아니 지출 자체의 문제로 정말 많이 싸웠다. 남편은 10원, 아니 1원 단위로 소중히(!) 다뤘고, 나는 적당한(!) 지출을 통해 자유를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가난했을 때는 진짜 돈을 함부로 다뤘어. 그냥 동전을 길가에 버리기도 했다. 집이 어려워졌을 때 돈이 너무 싫었거든. 그런데 돈을 소중히 다루니까 돈이 모이더라."라는 말을 종종 했다. 당시엔 그의 말이 너무나 듣기 싫었는데... 나도 점점 그 말에 익숙해졌는지, 아님 싸울 여지를 두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지출 부분을 조여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우리는 7박 8일의 러시아 여행 동안 체재비(식비, 교통비, 간식비, 관광입장료, 선물비 등)를 총 100만 원도 쓰지 않았다. 대륙횡단 열차(블라디-하바롭 왕복구간)를 탔고, 아무르강 유람선을 탔으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아쿠아리움을 구경했고, 수프라를 2번이나 갔는데도.. 비용은 충분했다. 7박 중 2박을 기차에서 해결했고, 하행 기차의 조식을 받을 수 있도록 일정을 짰다. 그리고 숙소는 호스텔 닷컴을 이용하여 취식이 가능하고, 세탁이 가능한 곳으로 선택했다. 했고, 이동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걸었다. 8일간 택시를 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40개월짜리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차를 좋아하던 꽁주는 트램 타는 걸 즐겼고, 전깃줄에 매달려 달리는 버스인 트롤리지를 신기해했으며, 한국의 버스와 다른 구조의 버스를 재밌어했다. 가끔 오래 걸을 때나 버스에서 잠이 들 때면 남편이 목마를 하거나 내가 엎기도 하였는데, “꽁주야, 엄마가 너 계속 업고 다니면 엄마 나중에 꼬부랑 할머니 될 수도 있다!”라는 말에 그다음부터 업히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 “엄마 나 다리 아프니깐 잠깐만 쉬었다가 가쟈”라며 길에 잠깐 앉을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가족이 다 같이 벤치에 앉아 쉬어가곤 했다.
아침식사는 한국에서 가져간 햇반, 간편식, 캔 김치 등으로 해결했다. 점심은 외식을 했지만 예산 내에서 해결했다. 저녁은 현지 마트에서 사 온 재료로 숙소에서 만들어 먹었다. 러시아는 빵과 과일, 고기가 무척이나 저렴했다. 가끔 너무 지치거나 힘들 때는 커피나 초콜릿, 과자 등을 사 먹기도 했지만 한국과 비교했을 때 저렴했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국적인 거리의 건물, 나무, 트램, 트롤리지, 사람들, 그리고 공기를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신선하고 좋았다. 가족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혹은 자유롭게 함께 걷고 도와주고, 안아주고, 의지하는 상황도 참 행복했다. 충분히 좋았다.
아이도 엄마 아빠와 함께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아빠가 마트에서 사준 초콜릿 아이스크림 하나에 만족하였고, 엄마랑 함께 동전 하나를 넣고 돌려서 뽑은 츄파츕스 크기의 탱탱볼을 며칠이나 가지고 놀았다. 매일 구경만 하던 가판대 장난감을 귀국하는 날 "하나 골라봐!"라고 하고 사줬을 때 아이는 길거리에서 춤을 추며 행복해했다.
짠내 폴폴 나는 여행이었지만, 어느새 같은 수준의 절약을 하게 된 우리는 행복했다. 다행히 아이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