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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리모니카 Jan 29. 2021

우리의 다름이 틀린 건 아니니깐.

남편과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비슷한 사람인 줄 알았다가 얼마나 상처를 주고받았는지 모른다. 그 시작이 신혼여행부터였으니, 우린 꽤 오랜 시간 씨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충격을 흡수해 줄 만한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각자의 욕구와 각자의 캐릭터를 지켜주기 위한 보이지 않는 작은 공간이었다.     


하바롭스크 중앙시장에 갔을 때다. 한참 구경을 하는 중에 러시아, 시베리아 하면 떠오를 만한 멋진 밍크 모자를 발견했다. 모자를 보자마자 매일 새벽기도를 가시는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가게 주인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있는데, 남편이 “이거 살 거가? 우리한테 꼭 필요한 건 아닌 거 같은데- 꼭 사야겠나?”라고 말했다. “어, 할아버지한테 선물할 건데?”라고 말했다가 짧지 않은 설교를 들었다. (짜증..)


다음날, 다시 다 같이 또 중앙시장을 들렀다. 구경을 하다가 공주가 잠에 떨어지자, 나는 남편에게 “오빠 나 쇼핑 좀 하고 올게.”라고 말했다.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동안 나는 1시간 정도 어제 그 모자가게로 갔다. 구글 통역기를 돌려 흥정을 시도했는데, 대화가 잘 안 통했다. 사장님은 사장님대로, 나는 나대로 자기 말만 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답답했던지, 옆 가게 고려인 사장님을 모시고 왔다. 고려인 사장님의 도움으로 색상이 다른, 같은 디자인 모자 2개를 저렴하게 살 수 있었다. 


카페에 돌아오니 아직 공주가 자고 있었다. 책을 읽던 남편은 내가 들고 온 검은색 비닐봉지를 보며, “샀나?”라고 물었다. 나는 모자를 보여줬다. 남편은 모자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 골동품 좀 보고 올게!”라며 1시간 동안 쇼핑을 하러 갔고, 난 할아버지와 아빠가 기뻐하실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관심사는 이렇듯 너무 다르다. 예전에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했고, 인정하지 못했다. "왜~!, 너는~!"으로 시작된 대화는 싸움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누군가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리며 전사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난 그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여행에서 남편의 소소한 변화가 발견되었다. ‘잔소리’가 예상되는 지점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변화. 신선했다. 


잠시 후 남편은 건진 게 없다며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사실 전날 중앙시장에 들렀던 것은 우연한 것이었다. 내가 남편을 배려하여 남편이 하바롭스크 시내의 화폐 상점 3곳을 들를 수 있도록 일정을 양보했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시장을 지났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하루 종일 화폐상을 방문하며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는데, 나는 남편의 긴장과 좌절이 드러나는 표정을 보는 것이 여행의 볼거리였다.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구경하며 키득키득 거리기도 했다. 남편은 자신의 취미로 하루를 보낸 것에 대해 나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하였지만, 나는 그저 현지를 여행했을 뿐이었다. 이방인으로서 현지의 삶에 들어가 보는 경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풍경을 바라보고, 거리를 걸으며 냄새를 맡고, 하바롭스크 사람들이 즐겨가는 마트를 방문해 장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는 그 루트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실컷 누렸다.      


밍크 모자를 사고 돌아온 날 밤, 모자를 쓰고 장난치고 있는 공주를 바라보며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오빠, 우린 각자가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해야 하는 성격인 것 같아. 오빠는 여기 와서 화폐를 꼭 구경해야 했고, 나는 여기서 밍크 모자를 꼭 사야 했어. 다음번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여행 일정 중 하루를 빼서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날로 하면 어떨까?”라고 물었다. 남편은 웃기만 했다.


그날 밤 남편의 사소한 변화에서 기분 좋은 변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리의 다름을 존중하기로 했다. 다른 게 틀린 건 아니니깐.



화폐 구경하러 갔다가 우연히 들린 마트의 피자/베이글 클래스. 이날 점심메뉴는 피자였고, 비주얼처럼 맛도 매우 훌륭했다.
남편이 미안해서 사준 커피, 컨테이너 샵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는데 맛있었다(해적 커피와 비교 안됨..). 중앙시장에서 산 모자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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