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을 준비하는 이유
캐나다에서 살다 보면 캐내디언(시민권자) 혹은 영주권자의 권리와 외국인 한계를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일상을 나누던 이웃들과 격 없이 지내다가도 양육이나 주거에 대한 정부지원, 교육기회(특수한 전공), 체류 기간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내가 외국인 신분임을 절감한다. 관광이나 단기체류를 목적으로 거주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배타적 느낌을 즐길 여유가 있을 테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둘째가 캐내디언이라 가족 모두가 캐나다 거주에 제한이 없는 신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캐나다가 우리나라보다 좋아서?
글쎄. 캐나다가 좋은 건 사실이나, 한국보다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내가 볼 때 캐나다와 한국 각 각의 강점과 단점은 극명히 다르다. 캐나다는 하늘이 허락한 자연경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시민의식이 매우 훌륭하지만 느리고 느린 공공시스템과 의료시스템은 정말 힘들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미세먼지와 과도한 경쟁이 육체와 마음의 건강에 위협적임에도 일상의 편리함을 주는 (내가 생각할 때는) 세계최고의 공공행정과 의료시스템뿐 아니라 제품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캐나다에 있는 한국인들이 공공행정과 병원을 이용할 때마다 한국이 최고라며 괜스레 뿌듯해하고, 역 직구로 한국제품을 사서 쓸 뿐 아니라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가정에서는 방학시즌에 맞추어 아이들과 함께 한국의 신(!) 문물을 접하기 위해 한국여행을 가기도 하니... 비단 내 생각만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일상적 편리함과 유익함을 당장 포기하면서도 캐나다에서의 거주를 오래 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캐나다의 더디고 느린 여유가 참 좋기 때문이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느리거나 더딘 것을 잘 참지 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대학원, 직장에서까지 늘 목표달성과 경쟁우위에 대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고, 첫 아이 육아휴직 때는 육아우울감과 복귀해서도 회사의 바뀐 시스템이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늘 아등바등 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늘 마음 한 구석에 '이 게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일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환경과 사회와 집단에 쓸려 내가 원하지 않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삶, 그게 참 불편했다.
어느 날 랭포드 우리 집의 거실 소파에 앉아 새소리가 들리는 백 야드를 쳐다보며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늦둥이를 돌보며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서 풍족한 나라에서 넉넉하지 않게 살고 있었고, 낯선 곳이라 아는 사람도 많이 없었으며, 우리 가족에게 처한 중요한 어려움도 겹쳐있었지만 그저 새소리와 햇빛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이었다. 그 당시 자연을 거닐며 생명을 느끼고, 이웃과 소통하며, 내 삶에 자족하며 즐기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때였다. 동시에 내게 익숙한 '빠름'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된다'는 강박과 '긴장'이 있는 건 아닌지, '경쟁의 대상과 방법', '속도'를 중시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나'를 잊고 살게 된 건 아닌 지도 돌아보았고...
빠르고 이기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 느리고 더뎌도 단단하고 행복할 수 있음을 일상에서 배우게 하고픈 욕심
물론 한국 엄마이기에 캐나다의 느림이 우리 아이들을 경쟁에서의 도태로 안내하진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맞다. 그러나 2년 간 캐나다에서 살면서 아이들에게 빠르고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느리고 더디 가더라도 나 자신을 단단하고 행복하게 지키는 방법을 일상에서 알려주고픈 욕심이 생겼다.
듬성듬성한 하루의 스케줄과 불편한 일상, 그리고 생활의 결핍이 스스로 필요와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믿기에... 우리가 선택한 길을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