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편두통에 시달렸다. 몸이 아프면 괜히 날씨 탓도 해보고 이상하게 말도 안 되는 투정도 해 본다. 하필 아픈 날 동안 계속 비가 와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제발 뜨거운 해가 번쩍하고 뜨길! 화창한 날만 목 빠지게 기다렸다.
다행히 통증이 줄었다. 몇 번 뒤척이다가 잠들었는데 밤새 푹 자고 일어났다. 거실로 나와 보니 어머나! 그렇게 기다렸던 해가 쨍했다. 오랜만에 기분도 활짝 갰다.
'얼마 만에 빨래를 밖에다 널어보니~'
엄마는 건조대부터 베란다에 내놓으셨다. 이불하고 베개도 손으로 팡팡 시원하게 털었다. 집안 곳곳에 창문도 다 열었다. 아직은 찬 바람이 불었지만 상쾌했다. 찌뿌둥했던 몸과 마음도 내리쬐는 햇살에 쫙 펴지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일찍 숙소를 나섰다. 미사를 드리기 전에 여름날 같은 햇살을 조금이라도 만끽하고 싶었다. 야고보 성당 마당에 섰다.
오월의 장미처럼 순례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다. 셀카도 찍고, 성당이랑 마당도 사진에 담았다. 매일 비추는 햇살이었다면 몰랐을 작은 행복을 남기고 싶었다.
우리는 순례를 떠나오기 전 날 고해성사를 본다. 우리만의 예식이다.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 헌 부대를 버리고 새 부대를 마련하는 의미에서.
고해성사란? 가톨릭 신자가 알게 모르게 범한 죄를 성찰, 통회, 고백, 보속 등의 절차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는 성사.(출처. 두산백과)
고해성사를 받기 위해 해당되는 언어 팻말이 붙은 곳에 줄 서 있는 순례자들 모습(출처. 두피디아)
순례를 떠나온 지 오늘로 38일째. 우리에게 다시 고해성사가 필요했다. 다행히 한국 신부님들이 몇 분 계셨다. 우리는 성사 볼 기회를 보고 있었다.
(*메주고리예에서는 매일 고해성사를 볼 수 있어요. 각국의 신부님들께서 가능하신 언어로(주로 영어, 불어, 독어, 크로아티아어, 이태리어 등) 고해성사를 주신답니다. 한국어일 경우 안타깝게도 여행사를 통해 혹은 혼자 순례 오신 한국인 신부님이 계셔야 가능하답니다.)
드디어 오늘, 고해성사를 봤다.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순례팀으로 오신 한국인 신부님을 뵙게 된 것!
'이미 지나간 일은 내 삶의 과정이 됩니다.
과정은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고,
모든 과정은 마음의 성장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어떤 과정이라도
자신을 너무 탓하진 마세요.
오히려 감사하세요. 성장할 수 있음에.
그리고 만남에 있어서 다른 이들의
말 마디가 아니라 마음을 들어보세요'
신부님 말씀이 내 영혼에 바람처럼 불어왔다가 좁아져 있던 마음을 밀어내 주었다.
미사 시간 내내 바람이 점점 세게 불더니 해가 도망갔다. 비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쨍했던 날씨에 우산은 지팡이 대용으로 한 개뿐이었다. 모자 쓴 채 우산 아래 머리만 맞대고 간신히 미사를 드렸다.
아니 그런데 하늘에 커다란 무지개가!
야외 제대 위였다. 회색빛 하늘에 색색이 선명한 무지개가 떴다. 하늘에서 그림동화책을 펼쳐서 우리들에게 보여주며 읽어주는 것 같았다. 모두들 아이들처럼 좋아라 했다. 무지개는 계속 떠 있었다. 무려 1시간 동안!
몇 시간 동안 비바람에 춥고 힘들었지만, 무지개 아래 엄마와 동생이 함께 있는 이 시간이 그저 감사했다.
나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딱 한 마디, 나를 위해 기도드렸다.
'말 마디가 아니라 마음을 듣게 하소서.
제게 평화를 주소서.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