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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모니카 Oct 31. 2020

Doviđenja Međugorje!(안녕 메주고리예)


한국을 떠나 순례길에 오른 지 55일이 됐다. 보스니아 메주고리예를 베이스캠프 삼아 독일에 3박 4일 순례를 다녀온 일정을 제외하면 거의 50일 가까이 이곳에 머물렀다. 이렇게 우리 세 모녀 순례의 '첫 번째 여정'을 잘 마쳤다.



우리의 삶이 순례길이다


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세계는 한 권의 책 같다고. 삶이 곧 여행이라고.

익숙함을 벗어나 단 하루를 떠나도 여행은 매 순간 배움의 연속이다. 낯섦에 당황하고 막막함에 울고 싶은 순간에, 서로 말이 안 통해서 손짓 발짓하며 겨우 소통이 될 때는 더욱 그렇다. 특히 엄마와 함께 동생이랑 셋이 힘을 합쳐 위기의 순간을 잘 넘겼다며 하이파이브를 할 때, 이때의 힘겨움은 '잊지 못할 배움'으로 남는다.

낯섦과 긴장의 반복 속에 이어지는 순례길에서 우리는 서로를 통해, 다른 나라 사람들을 통해 '다름'을 보고, '인정'해 주는 연습을 한다. 그러면서 <받아들임>을 배운다. 조금씩 <받아들임>을 알고 내 것으로 만들게 되면 그제야 급급하게 살며 좁아진 마음을 넓혀 가게 된다.

<받아들임>이라는 인생공부를 생생한 현장학습인 '여행' 을 통해 온 몸으로 부딪치며 배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기적은 믿는 마음에서부터


하루를 남겨두고 '그동안 메주고리예에서 어떻게 지냈더라.' 궁금한 마음에 저장해 둔 사진첩들을 한 번 쓱 돌아봤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폴더가 있었다. '청동 십자가'

메주고리예에는 특별한 순례 장소들이 몇 군데 있다.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발현산(묵주기도 길)', 산 정상에 하얀 십자가가 세워진 '십자가산(십자가의 길 기도)', 순례자들의 수호성인인 야고보 성인을 주보로 한 '야고보 성당',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이 고해성사를 보는 '고해성사 실', 그리고 '청동 십자가'.


청동십자가 입구


'청동 십자가'는 말 그대로 청동으로 만든 십자가 상이다. 이 곳이 특별한 이유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무릎에서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밤낮 할 것 없이, 사계절 언제나 물이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한 두 방울씩 나오는 물에 작은 수건을 대고 물을 묻혀서 가져간다. 무릎에 손을 대고 천천히, 아주 정성껏 문지르는 모습이 간절하다.


청동십자가에서 나오는 물방울


우리도 작은 수건을 하나 샀다.(조각보처럼 작고 하얀 수건)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국에 이 수건을 원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전해 드리려고 줄을 섰다. 한 1시간쯤 걸렸다. 전달받으시는 분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며 서 있었다. 받기까지 기다리실 분들의 간절함과 아프신 곳곳이 꼭 나으셨으면 하는 우리의 간절함을 담아 기도드렸다.

우리 차례가 왔다. 예수님 발에 이마를 대는 순간 마음이 울렁거렸다. 아픔이 전해져서일까. 할 수 있는 한 더 정성껏 수건을 대고 기도했다. 우리의 믿음이, 그리고 사랑이 수건을 받으시는 분들께 복된 기도가 되길 바라며.





기적은 늘 그랬다. 믿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됐다.
우리가 겪어 온 삶에서 기적은 믿는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되었고 정말 딱 필요한 순간,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절박한 그 순간에 이루어졌다.



기도를 다 마치고 나왔다. 청동십자가 상의 예수님께 손을 흔들며 인사드렸다. '고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수건 때문만이 아니라, 기적은 우리의 마음에서 수건을 받으시는 분들의 마음으로 이어져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어떤 모습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정말 필요한 것을 얻게 되실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보스니아의 우리 집


두 달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날씨 때문에 고생도 많았다. 5월엔 개미, 6월엔 날파리 때문에 잠자리를 설친 일도 많았다. (풀밭 근처에 숙소가 있어서 그런지 방에 개미가 줄지어 다녔다. 자다가 이불에서도 몇 마리씩 잡았으니 ㅎㅎ;;;) 가장 최근엔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 때문에 뱀이 나오기도 했다.(죽어 있는 걸 2번이나 봤다 꺅... 글 쓰고 있는 지금도 몸서리;;;)

여기는 주말만 성수기 분위기라 평일엔 사람이 별로 없다. 성수기 기간이 확실한 지역이라(6월 중순부터 성수기, 7월 말~8월 초에는 축제 때문에 극성수기다.) 사람이 너무 없을 때는 거의 우리 셋만 있어서 허전할 때도 많았다.


종일 가장 큰 고민은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마트에 가면 늘 보는 똑같은 재료들, '오늘은 뭘 만들어 먹어야 될까.'
매일 엄마의 두 손이 바빴다. 물에 유독 석회가 많아 매번 물을 걸러야 했는데, 이젠 아주 익숙한 일이 됐다.

순례 내내 엄마는 우리를, 우리는 엄마를. 서로의 건강을 살피는 게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매일 아침에 엄마의 모닝 송으로 일어나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하루를 시작했다. 저녁 6시(6월부터는 7시)에 나가 미사와 영성체를 모시고, 성시간이 있는 날에는 성시간까지 마치고 들어와 잠들기 전 각자의 침대에 앉아 묵주기도를 바쳤다. 나는 글을 쓰고 동생은 그림을 그리면서 자유시간을 보냈다. 가끔씩은 카페에 나가 달콤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한국분들을 만나 잠깐씩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일상을 떠나 낯선 곳에 머물 때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해지면서 건강까지 좋아졌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곳이 조금 익숙해졌는지 자주 아팠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져온 약도 먹고, 여기 약국에 찾아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아파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보단 집만큼 익숙한 곳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풍족해졌다.


자주 애용했던 택시아저씨 조셉
메주고리예 식당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


마트, 약국, 식당, 미용실, 택시 아저씨 와는 이 곳 주민이 된 것처럼 서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먼 곳까지 떠나온 낯선 나라, 작은 시골마을에 '우리 집'이 생겼다. (한국에서 이 곳까지 들어오려면 거의 2일이 걸린 다고 봐야 한다)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이제부터 시작



천천히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알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 시간들,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이 뭔지 보고 배우며, 편안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자유롭게 기도하며 머물렀던 시간들.


고맙습니다! 다시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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