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잘 도착했어. 윤빈이가 언니가 준 꽃을 잘 들고 와서 작은 화병에 꽂아두었어.
매화 향기가 너무 좋아.”
일산에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환자가 나왔다며 뉴스가 들썩이던 때였다. 부산역을 지나 기차를 타고 일산으로 가는 8살 조카의 손에 매화꽃을 쥐어 보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포가 서로를 경계하고 인종을 혐오하고 눈과 마음을 외부로부터 꽁꽁 닫아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는 요즘. 이것이 현재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에 만일에 하나 내게 닥칠 불행한 현실을 막기 위해 최선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월대보름 행사가 취소되었고 아이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는 자리에 함께 할 수도 없게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마스크로 입과 코를 에워싼 채 꽃다발을 들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흑사병이 나돌았던 유럽에서 감염으로부터 막아 줄 허브식물들을 몸에 지니던 기록들이 생각났다. 유럽은 중세시대 허브 작물들을 키우면서 이 식물들이 박테리아로부터의 감염을 막고 이 식물이 심어져 있는 것만으로 공기 중의 세균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스크가 없던 시절 그들은 로즈메리와 라벤더, 카모마일 등 약용식물로 사용되던 허브잎과 향이고운 꽃을 몸에 지니거나 손에 들고 코에 가져다 대어 사방에 널린 악취를 막아 병이 걸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중세 유럽인구의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이 창궐하던 때 치료사들의 복장은 새머리 모양을 한 가죽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부리처럼 생긴 길쭉한 부분에 약용식물을 넣어두었다.
유럽인구의 절반의 목숨을 앗아간 14세기 중엽이 지나서 1665년 영국 런던에서 페스트로 인한 비극을 겪었고 그 이후 영국 18세기 조지왕조시대 때는 여성들이 노즈게이라고 불리는 작은 꽃다발을 들고 다니면서 주변의 악취를 피하고 또 꽃의 향기가 각종 전염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그려진 여성의 초상화를 보면 대부분 손에 작은 부케를 들고 있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꽃을 손가락과 연결되는 고리가 달린 통에 담아 편리하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섬세한 장신구들도 만들어졌고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시대가 되면 패션의 한 장르가 될 정도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식물과 꽃이 우리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줄지 모른다는 말은 그저 감상적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겨울에 구하기 힘든 라벤더 꽃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이들을 닮은 어여쁜 장미에 고대로부터 전해지던 허브 식물들의 줄기와 잎을 섞은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꽃을 다듬어 버려지는 줄기와 잎을 모으면서 두려움으로 하지 못하는 일은 무엇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나를 위험에 빠뜨릴지 모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경계하고 비난하는 마음이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인지도 생각했다. 계획했던 일들이 공포와 두려움 앞에 서게 되면 그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달짚에 묻어 태워버리고 싶던 슬프고 괴로운 일들 그리고 간절히 바라는 것들에 대한 집착, 이 모든 것들을 모아서 조용히 홀로 달에게 실어 보냈다.
내 마음에 꽃을 두고 생각해 본다. 우리가 두려움의 공포로 얼굴을 가리고 서로를 경계하는 동안 지천으로 피어날 꽃들을 생각해 본다. 누가 아는가? 향기로운 봄꽃의 정령들이 우리들과 함께해 줄지.
[국제신문 2020.2월 아침숲길 발행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