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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l 12. 2019

여행의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 책

<여행의 이유> 독서록

몇 달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리디 페이퍼 프로로 읽는 첫 책이라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골랐다. 내용은 편안했으며 읽기 쉬웠고 여러 구절에 형광펜을 치게 했다. 제목대로 '여행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18p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해외든, 국내든, 내 집에서 떠나는 여행이든 무엇이든.

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데, 혼자 하는 여행을 즐겨했지만 함께 하는 여행을 요즘은 더 좋아한다.

지금 내가 보고 느끼고 있는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66p 멋진 곳에 가서 놀라운 것을 경험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일인칭의 경험이다.
76p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나는  주변 사람 중 꽤 많은 여행지를 다녀본 편이다. 그 중 반 이상이 혼자 여행을 한 것이고, 나머지는 친구와 중간에 조인을 했거나, 엄마와 한달 내리 동남아 곳곳을 여행을 했거나. 생각해보니 친구랑 해외여행을 떠난 적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시간상으로 가장 가까운때이기도 하지만 한 달 동안 엄마와 여행 한 것이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또는 공부를 마치고 유럽 곳곳을 여행 했을 때는 분명 아름다운 풍경과 장면들이 끊임 없이 이어졌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피렌체 미켈란젤로언덕에서 엄마 연배의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 엄마 생각이 나 한번 왈칵 운 것. 로마를 혼자 여행하다 이탈리아인 친구 앨리스와 차로 이곳 저곳 드라이브를 하는데 친구가 초보운전이라 생명의 위협을 여러 번 느꼈던 것(그치만 재미있었다). 또 같은 친구와 피렌체에서 만났는데, 어떤 언덕에 눕자마자 내가 코골고 자고, 그걸 그 친구가 또 녹음 한 것 (ㅋㅋ) 포르투 이곳 저곳을 쏘다니다가 우연히 만난 전망 스팟에서 사진찍어주겠다던 할아버지가 내 이에 립스틱 묻었다고 알려준 것.


등등, 혼자 비행기를 타고내리고 혼자 관광도 했으나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은 누군가와 교류가 있을 때, 아무리 풍경이 멋지고 좋았다한들, 시간이 지난 후 머릿속에는 어떤 인물과 함께 저장되는게 더 오래가고 인상 깊었다.


101p 때로 우리는 노바디가 되어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 하고, 섬바디로 확연히 구별되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 패턴을 보면 뭐랄까, 의무적으로, '남들도 가는데' '나도 인생샷남기고 싶은데' 라는 욕구에서 파생되어 가는 여행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정말 원해서라기보다, 다른 사람들도 하니 하는.. 마치 여행이 유행인 것 처럼 돌고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영국에서 잠깐 만나던 친구가, 독일로 여행을 갔는데, 왠지 나도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 친구에게 집중하고 있는데, 그 친구는 여행하느라 정신 없으니 나도 여행을 떠나 똑같이 다른 곳에 관심을 두고 싶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을 갔다. 결과는 되게 별로였다. 나는 100% 여행에 집중하지 못했고, 피상적인 여행만 했다. 영국에서 암스텔담을 가는건 비용이 그렇게 크게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 영양제 한 통이라도 더 사드릴 수 있는 금액이었을텐데. 


105p '예의바른 무관심' 정도가 현지인과 여행자 사이에는 적당하다. (중략)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던 시절이면 나는 무엇에든 쉽게 중독되어 자신을 잊기를 바랐다. 


그리고, 혼자 여행할 때 긴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할때보다 가방을 단단히 잠구고, 어쩔 땐 자물쇠도 채우고, 밤 늦게 다니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빨리 하고 낯선 이가 접근하면 해코지는 안 당하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거절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여행가서까지 긴장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을 더 좋아하게 된 것 일 수 도 있다. 


126p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여행은 현실로부터 도피를 하고 싶어 떠다는 여행이라기보다, 치열하게 현실과 싸운 후, 이기든 지든 마무리를 짓고 여행에서는 참 수고했다는 의미로 푹- 쉴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다음 날 바로 출근이라 할 지라도)

현실을 자각하기 싫어 떠난 여행은 잠시만 좋고, 환상에서 돌아왔을 때 변한 것은 시간밖에 없다. 문제 해결은 전혀 되지 않았을거고 refresh 되어서 다시 으쌰으쌰! 해보자 라는 기운을 가질 수 있다면 상관 없지만, 글쎄 내 경험상 도망은 도망을 부르는 것 같다. 여독을 풀어야하는데,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제쳐놓은 문제도 함께 날 기다리고 있다면 끔찍할 것 같다.


131p 흔들림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찾아오는 낯선 단단함


엄마와 방콕의 에어비앤비에서 묵을때 매일 아침 중간 층에 있는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하고, 일광욕을 했다. 혼자 여행하다 사람과 소통하는 행위가 중요하듯, 같이 하다 혼자 가지는 시간도 중요하다. 그 날 엄마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숙소에서 쉬시고, 나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미루고만 있던 생각을 꺼내 계속 곱씹었다. 그때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별 것도 아닌 것 때문에 내 오랜 친구의 추모를 뒤로 미룬 것이 정말 미안하여 피하고만 있었다. 쓸데 없는 걱정이 어느정도 지워진 후 친구는 슬그머니 내 머릿속에 나타나서 사과할 기회를 준 것 같았다. 




스낵콘텐츠와 b급 유머만 즐겨 보다, 오랜만에 에세이를 깊게 읽었고 정말 오랜만에 차분히 글을 썼다.

김영하 작가의 글은 정말 잘 읽혔고, 내가 그의 메세지를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나 나름대로의 여행의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여행을 주제로 쓴 글이 굉장히 흥미로워 지금은 #모든요일의여행 #김민철 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힘 빼는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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