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여행> 독서록
모든 요일의 여행
36p 결국 나는 또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좀 쉬어도 됐을 텐데, 좀 천천히 가도 됐을 텐데,
여행이 업인 사람과는 다르게, 보통의 사람에게 여행은 특별하다. 그래서 그 특별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다른 사람이 올려놓은 블로그 후기, 구글 지도 평점 등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다. 해외로 가면 trip advisor 추천 명소도 봐야 하고. 그렇게 구글 지도에 하트와 별을 뿅뿅 남기면서 나름대로 동선을 짜고, 여기 가서 이걸 먹고 저기 가서 저 사진을 찍어야지. 나보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감상과 사진을 보며 설레어한다.
39p 이걸 위해서 왜 여기까지, 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밀어냈다. 맛있어야 했다. 나는 행복해야 했다. 파리에 왔으니까.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안 행복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감히 행복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어느새 나는 행복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었다.
112p 안 그래도 돼요. 유명하다고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에요.
220p 잘 재단된 사진과 함께 올라가니까 나조차도 내가 완벽한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
42p 너무 많이 안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그 독약을 섣불리 마셔선 안 된다. 지도와 정보를 내려놓자. 우리의 취향과 우리의 시선과 우리의 속도를 찾자.
74p 평일만 있는 일상이 잔인한 것처럼, 열심히 여행하는 순간만이 가득한 여행도 잔인한 것이었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했다.
사실, 2박 3일 3박 4일 가는 여행을 온전히 '쉬러'만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몇 시간의 비행을 하고 예약한 호텔방에 누워 '내 집'에서 쉬듯 책을 보거나 SNS를 하거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내면 어둑어둑해질 때쯤, '나 여기 왜 왔지?' 하는 생각이 들 것만 같다. 그래서 새삼 여행의 '콘셉트'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왜 이 곳을 선택했는지. 이 곳에서 무얼 하고 싶은지.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왜 하필 이곳인지.
112p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남들과 상관없이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이 책은, 정말 힘 빼고 여행을 하라고 다독여주는 책이다. 무언가 알차게 일정을 채우고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색깔로 자기만의 시간을 채우는 것.
115p 거길 못 갔다고 큰일 나는 게 아니야. 그거 못 먹었다고 여행이 끝장나는 게 아니야.
118p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인 거야. 남들 다 본다고 너까지 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 넌 너만의 여행을 직조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잖아.
159p 가이드가 아니면서도 가이드 짓을 버리지 못한 건 정작 나인데. 아무도 그걸 내게 요구한 사람은 없는데. 친구들은 눈치채지도 못하는 배려 덕분에 결국 나를 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남을 위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162p 좋은 걸 보고 흥분할 때, 옆에서 같이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좋았다. 미술관에서는 서로가 발견한 것들을 나누며 각자가 알고 있는 것들을 합쳤다. 혼자 여행할 땐 '아, 이걸 그가 보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수없이 생각했는데, 같이 여행하니 그런 생각 자체가 사라졌다.
남들 다 함께하는 여행을 왜 내 애인은, 친구는, 가족들은 시간이 맞지 않아 나는 혼자 떠날 수밖에 없는지. 난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게 혼자라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서 혼자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으나, 기왕 같이 하면 더 좋아서 같이 하고 싶은 거다.
순간순간의 우리만 중요한 것이다.
116p "저기가 유명하대"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누가 그래?"라고 물었다. "블로그에서 봤어"라고 대답하니 남편은 "그 사람이 이 도시의 모든 식당을 다 가보고 말하는 것도 아니잖아. 난 남들이 어딜 가는지, 뭘 먹는지에는 관심이 없어"라고 대답했다.
186p 유명하다니까, 꼭 가야 한다니까, 뭐가 있을 것 같으니까, 바쁜 여행 중에 시간을 쪼개서 도착하는 곳들은 늘 우리에게 등 돌리는 기분이다.
한 달 후, 베트남 무이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여행은 지난번과 다른 것이 되었으면 한다. 내 시간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의 후기로 만들어지는 여행이 아닌, 내가 직접 걸어서, 물어서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볼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다시 빡빡한 일정을 짜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김민철 씨의 책을 읽으며 안 가도 된다고, 안 먹어봐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