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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l 21. 2019

여행을 떠나기 전 읽으면 좋은 책

<모든 요일의 여행> 독서록

빡센 여행에 지쳤지만,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이전과는 좀 다른 여행을 하고 싶은 여행자들이 읽으면 좋은 책

모든 요일의 여행


36p 결국 나는 또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좀 쉬어도 됐을 텐데, 좀 천천히 가도 됐을 텐데,

여행이 업인 사람과는 다르게, 보통의 사람에게 여행은 특별하다. 그래서 그 특별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다른 사람이 올려놓은 블로그 후기, 구글 지도 평점 등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다. 해외로 가면 trip advisor 추천 명소도 봐야 하고.  그렇게 구글 지도에 하트와 별을 뿅뿅 남기면서 나름대로 동선을 짜고, 여기 가서 이걸 먹고 저기 가서 저 사진을 찍어야지. 나보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감상과 사진을 보며 설레어한다.

39p 이걸 위해서 왜 여기까지, 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밀어냈다. 맛있어야 했다. 나는 행복해야 했다. 파리에 왔으니까.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안 행복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감히 행복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어느새 나는 행복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었다.
112p 안 그래도 돼요. 유명하다고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에요.
220p 잘 재단된 사진과 함께 올라가니까 나조차도 내가 완벽한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올린 그 풍경, 그 음식, 그 순간들을 기대하며 '그'곳에 간 순간 기대했던 그 마음은 어떻게 될 까? 모든 게 다 주관적이다.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본 그 풍경은 유료 필터 몇 가지와 몇 분의 보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블로그에서 본 음식점 후기나 맛 평가는 그 사람들이 여행 동안 먹은 게 맛이 없으면 안 되기에, 잠시 인생 동안 먹은 게 하나도 없었고, 처음 맛 본 음식인 것처럼 그래서 인생 음식에 등극한 것처럼 써 내려간 글 일 수 있다. 

42p 너무 많이 안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그 독약을 섣불리 마셔선 안 된다. 지도와 정보를 내려놓자. 우리의 취향과 우리의 시선과 우리의 속도를 찾자.
빠릿빠릿 여행하는 게 지쳐 철퍼덕 앉아버린 포르투의 한 공원

석사 코스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왠지 유럽 여행을 하지 않으면 다신 못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알아보고 여행 계획을 짰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등 떠밀 린 여행을 한 것 같았고 내 풀에 내가 지쳐버린 여행을 했다.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뒤통수를 한대 치고 싶다.

 

74p 평일만 있는 일상이 잔인한 것처럼, 열심히 여행하는 순간만이 가득한 여행도 잔인한 것이었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했다.

사실, 2박 3일 3박 4일 가는 여행을 온전히 '쉬러'만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몇 시간의 비행을 하고 예약한 호텔방에 누워 '내 집'에서 쉬듯 책을 보거나 SNS를 하거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내면 어둑어둑해질 때쯤, '나 여기 왜 왔지?' 하는 생각이 들 것만 같다. 그래서 새삼 여행의 '콘셉트'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왜 이 곳을 선택했는지. 이 곳에서 무얼 하고 싶은지.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왜 하필 이곳인지.


112p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남들과 상관없이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이 책은, 정말 힘 빼고 여행을 하라고 다독여주는 책이다. 무언가 알차게 일정을 채우고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색깔로 자기만의 시간을 채우는 것. 

115p 거길 못 갔다고 큰일 나는 게 아니야. 그거 못 먹었다고 여행이 끝장나는 게 아니야.
118p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인 거야. 남들 다 본다고 너까지 봐야 하는 건 아니잖아, 넌 너만의 여행을 직조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잖아.
바르셀로나에 가면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받았던 시체스 해변. 아무것도 없는 해변에 스윗한 부녀만 있었다.

159p 가이드가 아니면서도 가이드 짓을 버리지 못한 건 정작 나인데. 아무도 그걸 내게 요구한 사람은 없는데. 친구들은 눈치채지도 못하는 배려 덕분에 결국 나를 위한 여행이라기보다는 남을 위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 여행 스타일은 꼭 나의 것과 닮았다. 누구도 가이드 역할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내 욕심에 내가 먼저 이것저것 애쓰고, 그 흐름대로 따라와 주지 않으면 기분이 상했거나 혹은 기대했던 식당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내 잘못인 것 같고 자책감에 시달리곤 했다. (특히 엄마와 여행할 때)

지난 글 여행의 이유를 생각하게 만든 책 <여행의 이유> 독서록에서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했지만 점점 생각이 바뀌어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고 그걸 공유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적었었는데, 그 마음에 더 불을 지핀 구절이 있었다.

162p 좋은 걸 보고 흥분할 때, 옆에서 같이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좋았다. 미술관에서는 서로가 발견한 것들을 나누며 각자가 알고 있는 것들을 합쳤다. 혼자 여행할 땐 '아, 이걸 그가 보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수없이 생각했는데, 같이 여행하니 그런 생각 자체가 사라졌다.

남들 다 함께하는 여행을 왜 내 애인은, 친구는, 가족들은 시간이 맞지 않아 나는 혼자 떠날 수밖에 없는지. 난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게 혼자라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서 혼자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으나, 기왕 같이 하면 더 좋아서 같이 하고 싶은 거다.


순간순간의 우리만 중요한 것이다.

116p "저기가 유명하대"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누가 그래?"라고 물었다. "블로그에서 봤어"라고 대답하니 남편은 "그 사람이 이 도시의 모든 식당을 다 가보고 말하는 것도 아니잖아. 난 남들이 어딜 가는지, 뭘 먹는지에는 관심이 없어"라고 대답했다.

186p 유명하다니까, 꼭 가야 한다니까, 뭐가 있을 것 같으니까, 바쁜 여행 중에 시간을 쪼개서 도착하는 곳들은 늘 우리에게 등 돌리는 기분이다.


한 달 후, 베트남 무이네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 여행은 지난번과 다른 것이 되었으면 한다. 내 시간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의 후기로 만들어지는 여행이 아닌, 내가 직접 걸어서, 물어서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볼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다시 빡빡한 일정을 짜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김민철 씨의 책을 읽으며 안 가도 된다고, 안 먹어봐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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