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굉장히 바쁘게 열심히 사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집-일-집-일의 루틴이 싫어 오전엔 운동 저녁엔 영어학원 주말엔 데이트도 하며 유튜브 영상 편집 출퇴근길엔 브런치 글을 쓴다. 최근에는 UX 기획 스터디도 시작했다.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나 사람들을 보면 난 너무나도 자만하고 아무것도 아닌 느낌이 든다.
영어의 경우, 솔직히 난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피킹이 좀 딸릴 뿐이지 문법은 토익 950점 이상이면 말 다한 것 아닌가? 영국 유학에 필요한 IELTS 성적도 2개월 만에 overall 6.5를 만들었다. 심지어 리스닝은 9점 만점에 8점이었다. (스피킹이 다 까먹었지만)
그런데 최근 영문법 강의를 들으며, 난 영어를 헛배웠구나, 정말 시험용 영어를 지독하게 배웠구나 하고 느꼈다. 그 교실의 학생들은 나보다 토익 점수는 낮을지언정, 영어라는 언어의 이해도는 나보다 높았으며 배우겠다는 열의도 나와 달랐다. 나는 나보다 조금 낮은 레벨의 수업을 들어서 내가 가진 실력을 검증받고 뽐내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완전히 달랐고 오히려 난 내 위치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한다.)
그리고 최근(바로 오늘) 시작한 UX 기획 스터디는, 한 오픈 채팅방에서 시작되어 신청자를 모집하길래 회사일 외에 커리어와 결을 같이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고, 이 스터디는 딱 맞았다. 그래서 신청했는데 9:1(아마도)의 경쟁률을 뚫고 내가 뽑혔다.
개인 사정으로 OT를 가지 않아 첫 시작이 곧 첫 만남이었는데, 바로 발표 자료와 발표 준비를 해야 했다. 주제는 디자인 프로세스 4 Phase의 develop-ideation. 이 프로세스대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는 것에 꽂혀 석사과정으로 서비스 디자인을 공부했고, 2016년 당시 서비스디자인은 그렇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 서비스디자인이라는 걸 아는 사람만 만나도 너무나 반가웠었다. 그래서 난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세스니 디자인 싱킹이니 하는 것의 지식과 학위 보유의 선두자 인양 착각하고 있었다.
나 서비스 디자인 석사야
솔직히 첫 스터디 주제가 디자인 프로세스여서, '실무에 쓰이지도 못하는걸 또 겉핥기 식으로 조사해서 얻다 쓰려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조사도 심도 있게 하지 않았다. 다 책에 나와있는 내용. 뻔하니까, 다학제적 관점과~ 시간의 제약과~ 편견은 없어야 하며... 블라블라
그래서 피상적인 개념과 테크닉 등만 대충 서치하여 키노트에 옮겼다.
이게 모가 어려워?
스터디 모임 당일, Phase 별로 분담하여 준비해온 발표를 듣는데 집에 가고 싶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보다 그 프로세스에 열의를 갖고 탐구했고 학교 과제나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했는지, 실제로 해보니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공유했다. 힘차게 튀고 흐르고 도는 물 사이, 나만 가만히 고여있는 물이 된 느낌이었다.
난 뭐가 그리 잘났다고, 다른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고 목표를 세우고 하는 것을 우습게 여겼을까. 내가 다 아는 건데 정작 알아도 쓸데없다고 치부해버린 내가 너무 부끄럽다. 난 다 아는 게 아니라 내가 아는 게 전부라고 합리화해버린 것 같다. 더 알아도 쓸데없다고. 아는 걸 활용하지 못한다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활용하고 싶은데 모르는 게 많다면 더 배우면 되는 건데 난 정말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과 자극은 나에게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들이 좋은 사람이건 아니건. 아직 배워야 할 것도 산더미고, 고쳐먹어야 할 마인드셋도 정말 많지만, 다음 스터디 발표부터라도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해보려 한다. 노력이 헛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건 그 노력을 완전히 마친 후에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