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어느 날은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이었다.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아침잠이 그렇게 많던 내가, 해가 어둠의 장막을 들추어 내지 않았던 그 이른 새벽에 눈이 떠져 내복바람으로 마당으로 나섰었다.
그 누구도 밟지 않은 설탕같은 하얀 눈가루가 온 마당이며 한 편의 장독대며 소복이도 쌓여 마당을 은은히 비추는 주황 불빛에 작게 윤슬처럼 반짝였더랬다.
추운 줄도 모르던 어렸던 나는 내복바람으로 마당으로 나와 마치 딴 세상 속에 떨어진 것 같은 동화 속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도취되어 마당에 한발자국씩 조심스럽게 흔적을 남기며 걸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마냥 나홀로 설레고 신났던 어린 날의 나는 장독대에 쌓인 반짝이는 눈가루를 손으로 쓸어보며 남모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이제 예닐곱 살 먹은 그 어린 게 무얼 알았다고 지금 생각해 봐도 어이없는 실소가 비집고 나오지만 그래도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임에는 분명했다.
겨울에도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남해안의 바닷가 출신인 나는 눈을 보면 신기하고 설레고 들뜨던 그런 계집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