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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Sep 16. 2021

마당 벚꽃놀이 가능!

전원주택의 봄


옆 산이 파릇파릇, 초록초록한 색으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새들의 지저귐이 다시 들리기 시작합니다.

겨우내 조용한 적막의 추위만 느껴지던 고요한 숲이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하죠!

아파트 살 때는 이렇게 다양한 새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벌들이 윙윙대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들이 봄의 사운드를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 맘 때는 따뜻한 바람과 노곤노곤한 햇빛에​

마음도 말랑말랑해지는 계절이라,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사실 마당이 생기고나서 부터는 뿌리 없는 꽃을 살 일은 없어요. ​심어 놓아야 진짜 오래 꽃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장을 보러 하나로마트에 갔을 때, 화훼농가 돕기 코너가 있어서 한 번 둘러 보았습니다.

우리집 정원에 꽃들이 피어날 때까지 잠시만 이렇게 봄을 미리 만나 봅니다. 요즘 어렵다는 화훼농가도 돕는다니 일석이조의 마음으로 말이죠.


본격적으로 봄이 찾아오면, 겨울잠을 자고 있던 텃밭도 깨워야 합니다. 꽁꽁 자고 있던 텃밭을 남편이 갈아 엎었습니다.

퇴비도 뿌려서 땅의 힘을 끌어 올리고 4월이 되면 모종들을 심고, 씨도 뿌려야 하죠. 그 전에 초보 농부 체력도 슬슬 끌어 올리고, 여러가지 텃밭을 위한 준비도 해야합니다.


올 봄엔 친정부모님께서 저희집 근처 전원주택으로 내려오시는 큰 결심을 하셨어요.

그래서 어느 봄날엔 엄마랑 농자재마트에 가서 텃밭 농기구 플렉스를 하기도 했답니다. 20살 이후 독립해서 늘 떨어져 지냈는데 아이가 생기니 여러모로 기댈 곳이 친정밖에 없더라고요. 인생의 고비에서 넘어질 때마다 늘 큰 힘이 되어주는 엄마가 근처에 계셔서 이 봄, 어느 때보다 참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봄엔 나물 뜯는 재미가 쏠쏠!

큰찌가 마당에서 할머니와 함께 쑥을 한아름 뜯어 왔어요. 전원 생활 1년만에 8살 아이가 쑥과 냉이를 스스로 발견하고, 잘 캐게 되었습니다. 자연이란, 아이를 쑥 크게 만드니 참 신기해요.



올 봄,
가장 고대하던
순간이 왔습니다.

마당 벚나무에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집으로 들어가다 말고 잠시 꽃멍에 빠져들어요.


차에서 내리면서 마스크도 벗어던지고

마당으로 걸어 나오면

귀를 즐겁게 하는 여러 새 소리가 들립니다.

코에도 맑고 시원한 공기가 들어가고요.


​바쁘게만 돌아가는 도시에서 돌아와 마당에만 들어서도 무장해제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벚꽃까지 피었다니!


작년 가을, 한창 마당에서의 불멍에 빠졌던 시기처럼,​ 올 봄은 꽃멍에 빠집니다.


시간이 흘러 마당 벚나무가 다 지고 아쉬운 마음이 들면, 한번 더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동네 근처를 산책해요. 동네 뒷 산의 벚꽃이 좀 더 늦게 피고 진다는 걸 올해 알게 되었거든요. 마지막 벚꽃놀이를 주말에 우리끼리만 조용히 즐기기도 했습니다.


황홀한 꽃놀이를 즐기다 정신차리고 텃밭을 보면, 심어놓은 모종들이 알아서 쑥쑥 커 있는 걸 발견해요.

물만 줘도 알아서 잘 자라주니 참 고마운 텃밭입니다. 올해는 감자를 처음으로 심어 보았는데 너무 잘 커서 내년 봄에도 또 심으려고 해요.


벚꽃이 지면 영산홍의 계절이 찾아옵니다.

마당냥이들과 한가로운 주말 오후를 즐기기도 하죠.


블루베리나무와 미니사과나무에도 예쁘고 향기로운 꽃이 핍니다.


작년 겨울 이게 잘 자랄까?, 반신반의하며 심어놓은 구근들에서 꽃이 피었어요.

수선화, 무스카리, 알리움들이 얼굴을 보여줘서 작년보다 풍성한 봄의 정원을 만끽했습니다.





전원주택에 무거운 마음으로 도착했던 작년 봄.​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지나며 우리 가족의 마음이 어떤 면은 말랑말랑해지고 어떤 면은 더 단단해졌습니다. 그만큼 아이들도 자랐지만, 우리 어른들은 확연히 이 곳에서 많이 달라졌답니다. 고슴도치같이 가시를 세우는 일이 줄어들었어요. 상처난 마음에 말랑말랑한  새 살이 돋아났습니다. 이 정도 시련 그까이꺼, 하는 배짱도 좀 더 두둑해졌죠.


작년 봄보다 올해의 봄이 조금 더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의 봄을 기다렸어요.

그리고 정말 그런 봄을 보냈습니다.


심어 놓은 구근에서 꽃이 피는 일,

작은 텃밭 모종들이 크게 자라는 일,

마당 벚꽃놀이를 하며 황홀한 한 때를 보내는 일,

아이들과 해먹에 앉아 흩날리는 벚꽃잎을 맞던 일들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봄나물로 전을 부쳐먹고, 정원에서 잡초를 뽑으며

올 봄 소소하게 작은 일들로 행복했습니다.


내년의 봄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올해만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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