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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Sep 26. 2021

어쩌다, 무작정 시작된 고양이들과의 인연

마당냥이, 전원주택의 고양이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더니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제가,

주택에, 그것도 전원주택에 살 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강아지는 키워봤어도 고양이는 키워 본 적도 없는 제가,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던 제가,

이렇게 고양이까지 함께 살게 될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다니까요.



오늘은 전원주택의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정확히는 우리집 마당에 살고 있는 냥이들에 관한 이야기지요.


결혼 후 처음으로 내 아파트를 마련하고 리모델링을 예쁘게 해 놓고 나서, 채 두달이 안 되어 전원주택으로 다시 이사를 갔습니다.

2020년 1월에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같은 해 3월에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다시 갔으니 두 달만에 이사를 두 번 했죠. 이전 글에서 써 놓은 것 처럼 둘찌의 건강 때문이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도 힘든 결정이었지만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결단을 내렸고, 둘찌는 20개월쯤이었으니 별 다른 생각이 없을 때였지만, 태어나서 아파트에만 살았던 7살 큰찌의 결심이 큰 난관이었습니다. 유치원 근처의 아파트에, 처음으로 크고 예쁜(벽지부터 조명까지 큰찌의 선택을 받았던 터라) 자신의 방이 생겼는데, 이사간 지 2주만에 다시 시골의 집들을 알아보러 다니고 있으니 당연히 어린 큰찌에겐 당연히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였을 겁니다. 주변 지인들도, 다시 집을 팔아달라고 전화를 했던 부동산에서도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문제였으니까요.


굳은 표정으로 며칠 간 여러 집을 보러 다니던 큰찌가 4번째 집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10년쯤 된 목조주택의 겉모습은 괜찮았지만, 집 안에서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났고 마당에 있는 커다란 개는 컹컹 짖어댔거든요.

마지막으로 한 집만 더 보자, 하면서 큰찌를 다독여 차를 태웠지만 그 때의 저도 오만가지 걱정을 했었습니다. 둘찌를 생각하면 이사를 가긴 가야겠는데, 막상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질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우연히 찾은, 마지막으로 보러 간 집에서 기적처럼 큰찌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이사 올래.”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고양이 덕분이었습니다.

전 주인이 계속 마당에서 사료를 준 덕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주로 이 집에서 상주를 하고 있었거든요.

7살 큰찌는 고양이를 너무 좋아했지만 아파트 근처에서 길냥이들을 멀찍이서만 바라 본 적 밖에는 없었습니다. 고양이 나오는 책과 만화를 즐겨 보고, 언제 고양이 카페를 꼭 가고 싶다고 말하던 큰찌에게 진짜 고양이를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드디어 생겼습니다. 특히, 이 고양이는 개냥이 수준으로 만져도 가만히 그 손길을 즐기는 고양이였습니다. 이 고양이와 교감을 하며 큰찌는 하트가 뿅뿅 나오는 눈으로 빨리 이 집으로 이사오고 싶다고 마음을 바꿔주었죠.



그렇게 
우리와 고양이들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이사를 온 다음 이름을 까망이라고 붙여주고, 평생 사 본 적 없는 고양이 사료와 간식, 장난감들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금세 까망이랑 친해져서 마당을 뛰어다니고 장난감으로 놀아주고 했습니다.

여긴 시골동네라 까망이 말고도 갈색이(까망이의 새끼로 추정되는), 왕뚱뚱이, 검구리, 삼식이가 간간히 우리를 피해 밥을 먹고 가곤 했습니다. 전원주택에서 고양이들이 뱀을 잡아 고마운 일을 한다는 것을 어딘가에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이득보다도 고양이를 챙겨주고 같이 놀며 아이들의 정서가 풍부해지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까망이의 배가 눈에 띄게 불룩해지더니 작년 5월의 어느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아이들(특히 큰찌) 근심이 어마어마 했죠. 우리는 새끼를 낳으러 갔나 보다고 안심을 시켜주려했지만, 큰찌는 영영  돌아오면 어쩌냐고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까망이는 다행이 며칠 뒤 돌아와 힘 없이 홀쭉한 상태로 밥을 먹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 새끼들의 행방은 오리무중! 우리는 또 한참을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다가 까망이의 아지트를 우연히 찾았어요.

집 가까운 곳에 있던 컨테이너 박스에 새끼들이 꼬물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끔씩 컨테이너 박스로 소풍을 가서 까망이가 아기 고양이들에게 젖 주는 모습과 새끼 고양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다 오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찌가 아침부터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 까망이랑 새끼들이
다같이 우리집에 왔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진짜 데크 위까지 새끼들이 와 있었어요. 그 이후로 엄마 까망이와 새끼들이 모두 자주 찾아와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다들 우리 마당에 살게 되었네요.



큰찌가 이름도 붙여주고 밥과 간식을 살뜰하게 챙겨줘서 일까요. 몇 마리는 그러다가 어디론가 떠나버렸지만, 엄마 까망이와 4마리의 새끼들이 우리집 마당냥이가 되었습니다.

미까, 티티, 루루, 노랑이입니다.

까망이는 주로 햇살을 즐기며 누워 있었지만, 새끼 네 마리는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장난감으로 즐겁게 놀기도 하고, 우리가 산책을 나가면 그 곳까지 따라와서 아이들을 지켜 주었죠.

제가 잡초를 뽑고 있으면 어느새 옆에 와서 장난치기도 하고, 밤에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남편 곁을 따라 다니기도 하고.

어느새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저까지도 마음이 가게 되더라고요.

고양이를 챙기며, 고양이랑 놀며 아이들이 많이 자랐습니다.

나무를 타고, 햇살을 즐기며

새끼 고양이들도 많이 자랐습니다.

어느새 엄마인 까망이랑 비슷하게 커졌습니다.


겨울엔 털로 된 포근한 집도 사주고, 거센 바람이 걱정이 되어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비닐 하우스도 설치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당분간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2021년 2월, 그 겨울의 끝에 까망이와 노랑이를 황망히 떠나보내는 일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아이들이 구토를 하고 컨디션이 확 나빠졌어요. 지인이 하는 동물병원에 처음으로 마당냥이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까망이가 너무 탈진되었다고 해서 수액도 맞고, 콧줄도 끼고 했는데 무지개 다리를 건넜네요. 동네분들은 다른 밭에서 유박비료를 먹은 것이 아닌가 추측을 했고, 수의사는 자궁에 염증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길고양이들은 아픈 이유를 잘 찾을 수가 없어 치료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일이 우리 까망이에게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집 밖이긴 했지만 열심히 챙긴다고 챙겼는데 말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항생제를 계속 먹이고 해서 그나마 컨디션이 나아졌지만, 노랑이도 엄마를 따라 우리곁을 떠났어요.

생각지도 못한, 준비한 겨를도 없었던 이별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습니다.


흔하게 보는 길냥이에서 우리집 마당냥이로 이름을 지어준 만큼만,

그만큼만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마음을 주고 있었나 봅니다.


그 경황없던 이별속에서 휴대폰의 사진을 쭉, 훑어 보는데 많은 사진에 함께 있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힘든 상태로 이사왔을 때 이 곳에 정을 붙이고 살게 해준 까망이.

우리 아이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 까망이.

고양이를 안 좋아하던 나에게 고양이가 이렇게 예쁘구나를 알게 해준 까망이.

예쁜 새끼들을 낳아준 까망이.


제가 키우고 싶어서 키우게 된 것도 아니었는데,

자주 집에 찾아 오는 아이라 챙겨주고 싶어서 밥 주다 정이 흠뻑 들어버렸습니다.


그렇게 까망이와 노랑이를 황망히 떠나보내고,

미까, 티티, 루루만 우리집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봄과 여름 티티와 루루가 새끼를 낳기 시작했어요.(미까만 남자입니다.)

아기 꼬물이들은 너무 귀여웠고, 무럭무럭 쑥쑥 자랐어요.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상태들이 급박하게 나빠지고 다들 떠나버렸어요.

그럴때마다 병원에 데리고 가보니, ‘파보 바이러스’라고 하더라고요. 강아지는 괜찮은데 고양이 치사율은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낫게 해보려고 여러가지 방법을 써보고 입원도 시켜 보았지만 결국 다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결국…

루루 까지요.


그 날은 그런 날이었어요.

그냥, 아무 이유없이 하루종일 속이 시끄럽던 날.

올 여름 처음으로 선풍기 없이 잠든 날.

선풍기 없이 잠들었는데 새벽녘 쌀쌀한 바람에 솜이불을 꺼내야 하나,라고 처음 생각했던 날.


새벽 2시에 남편이 평소와 다르게 잠든 저를 깨웠어요.

비몽사몽하게 거실로 나왔는데 한다는 소리가, 루루가 죽었다네요.

잠이 확 깼습니다.


아기 고양이 4마리를 낳고 잘 지내던 루루가 갑자기 그저께부터 밥도 잘 먹지 않고, 힘이 없었어요. 그래서 얼른 동물 병원에도 데려가 주사도 맞히고, 약도 타와서 먹였는데 말입니다. 그 새벽녘에 마당 데크 위에서 눈을 감았네요.

설마, 하는 마음에 현관문을 열었는데 잠든 것처럼 누워있는 루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배에 손을 대 보아도, 이름을 불러 보아도 일어나지 않는 루루.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 있는 몸을 만지자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엉엉, 한참을 울며 좋은 곳에 태어나라고, 오랜만에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로 들어가, 올 여름 처음으로 솜이불을 꺼냈습니다.


정을 많이 준 까망이, 노랑이때처럼 한동안 힘든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엄마 없이 잘 자라는 듯 했던 루루의 새끼들도 결국 엄마를 따라가더라고요. 같은 이유로 말이죠.





지금 우리집엔 티티와 미까만 남아 있습니다.





2년차 초보 집사에게 참 여러 일들이 있었어요.


어쩌다가 고양이를 마당에서 키우게 되어

밥주다가 담뿍 정이들어 버리는 경험,

준비없이 영영 이별하는 경험을 오랜만에 또 마주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만큼 많이 자랐고,

우리는 굳은살이 잔뜩 박힌 줄 알았던 마음이

사실은 말랑말랑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티티는 요즘 또 아파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었어요. 파보라는 무서운 녀석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또 이별을 준비해야하나 했는데, 큰찌가 약을 잘 챙겨 먹이고 하더니 다행이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아무것도 못 먹다가 츄르를 먹고, 이제는 건식사료까지 먹게 되었죠. 일단은 조금 안심했습니다.


마당냥이에겐 중성화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죠. 자주 새끼를 낳는 것이 고양이에게 굉장한 데미지를 입히는 일이라는 걸 2년동안 깨달았어요. 그래서 티티가 컨디션이 나아지면 조만간에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합니다.


극심한 고통속에서 이사를 온 이후, 이 집에 정을 붙이고 살 수 있게 해준 건 까망이의 역할이 컸어요.

우리 가족의 첫번째 고양이 까망이. 까망이를 떠나보낼 때 약속을 했거든요. 새끼들을 끝까지 잘 지켜주겠다고.


티티랑 미까는 우리 곁에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까망아,
우리 가족의 넘버원은
언제나 너야.
나중에 만날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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