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신규교사 나누리_프롤로그, 2월

by 릴리포레relifore

프롤로그, 2월.


그 때의 느낌은 그랬다. 1월이 아닌 12월이 첫 페이지인 다이어리를 쓰는 것 같은 기분. 새로운 해의 1월부터 다이어리를 쓰면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뭔가 긴장되는 기분이 들고, 그러다 글자라도 틀리게 써 버리면 참담해진다.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게 펜을 들고 있다가 어떻게 수습해야하는지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수정액을 쓰는 것도 뭔가 내키지 않는다. 그 틀려버린 한 글자로 인해 다이어리 전체가 엉망이 된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러면서 이제 다이어리 쓰기 싫다, 다른 다이어리를 사야하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러나 내년의 1월이 아닌, 올해의 12월부터 시작하는 다이어리를 쓰면 다르다. 새 다이어리라고는 해도 뭔가 아직 묵은해가 지나지 않아서인지 부담이 덜 하다고나 할까. 무겁고 긴장되는 마음을 비운 채 글씨를 써서 그런지 평소보다 글씨체도 예쁘게 써지는 것 같고 신기하게 웬만해서는 틀린 글씨도 나오질 않는다. 그러니까 똑같이 새 다이어리의 첫 장을 쓰는 일임에도 그것을 쓰는 시점이 언제이냐에 따라 마음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렇다. 새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하는데 12월부터 쓰는 느낌. 그것은 새 직장인데 새해가 아니라 묵은해의 끄트머리에 출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월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해의 두 번째 달이지만, 학년도를 사용하는 학교에서는 전 학년도 끝자락이니까.

아직 학교는 새 학년도로 넘어가지 않았다. 새 학년도의 시작인 3월이 첫 출근이 아니라 다행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갑자기 떠오른 ‘12월부터 쓰는 다이어리’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든다. 진짜 그렇게 덜 긴장된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평소의 글씨체로 가볍게 첫 글씨를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첫 출근이라는 것이 새 다이어리의 개시라는 느낌과 확연히 다른 것인지 갑자기 12월이 첫 장이라 다행이라는 안도감보다 새 다이어리를 쓴다는 긴장감이 훨씬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땀이 나는 것 같은 손을 비벼본다. 그리고는 긴장을 없애보려 평소 습관처럼 노래를 불러보기로 했다.

“참 되거라~ 바르거어라~ 가르쳐 주신~”

그런데 나오는 노래가 스승의 은혜라니. 갑자기 그 노래가 생각난 것은 이곳이 학교이기 때문일까. 햇빛은 따사로웠지만 운동장을 가로질러 부는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지금 느껴지는 몸의 떨림이 첫 출근의 설렘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긴장을 풀어보려고 출입문 앞에서 후-,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어 본다.

어색하게 신발장 앞에 서서 신고 온 검은 구두를 벗었다. 그리고는 내빈용 신발장에서 여자용 슬리퍼를 꺼내 신발을 갈아 신고 계단을 올라갔다. 아직 어떤 실내화를 살지 결정을 못한 나는 친구들의 조언대로 일단 오늘은 학교마다 비치된 내빈용 슬리퍼를 신기로 했다. 여자 선생님들이 많이 신으시는 검은색 통굽 슬리퍼는 왠지 나이 들어 보이고, 그렇다고 편한 스포츠 브랜드의 슬리퍼를 신자니 선생님 느낌이 안나는 것 같다. 학생에서 교사 신분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별 것 아닌 일에도 많은 고민을 가져오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벌써 2층에 다다랐다. 문패에 적힌 교무실이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정신을 차리고 긴장된 발걸음을 내딛어 간신히 교감 선생님한테 도착했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교감 선생님이 학년과 업무가 빼곡히 써 있는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같은 학년끼리 앉을 수 있도록 책상에 표시를 해 놓았으니 찾아서 앉으세요.”

머리가 희끗한 남자 교감 선생님이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아직까지 학교라는 직장에서의 모든 것이 낯선 나는 누군가의 따뜻한 환대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그 두 가지를 모두 듣지 못한 채 교감선생님 곁에서 스스로 밀려나왔다. 교감선생님은 신규교사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없을 만큼 바빠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 자리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감 선생님 책상 앞에 ㄷ자로 놓인 긴 책상 앞뒤로 의자들이 있고, 이미 삼삼오오 앉아 있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자리에서 미친 듯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는 나는 현기증이 밀려오기 전에 서둘러 종이에서 내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나누리. 나누리. 나... 누리.’

‘찾았다!’

‘6학년?’

‘6학년이라니...’

6학년 칸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니 나도 모르게 입이 떠억, 벌어진다. 왠지 맡기 꺼려졌던 학년이었다. 키가 나보다 더 큰 아이들도 많을텐데... 요즘 6학년은 중학생 이상을 한다던데... 사춘기 애들을 어떻게 다루지? 내가 과연 6학년들을 잘 이끌 수 있을까? 엄청난 걱정들이 금세 뒤엉켜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그 때 누군가 내 팔짱을 끼며 말을 걸었다.

“신규?”

“아, 예. 이번에 새로 발령받은 나누립니다. 안녕하세요?”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새내기 교사는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선배들한테 배웠기에 최대한 깍듯하게 인사를 해버렸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선생님이 서 있었다. 그런데 내가 신규인걸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아셨을까? 교감 선생님한테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하고 있는 어색한 나의 모습을 들켜버린 걸까. 며칠 전까지 나의 소속이었던 대학교에서는 이미 한참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다시 1학년, 그 때의 어리바리하던 신입생 모습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여기 앉아요. 6학년 자리 여기니까. 난 6-1반, 학년부장을 맡은 김미영이에요.”

다시 들려온 목소리에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인 상념들이 한순간에 흩어졌다. 이곳에서 처음 느낀 친절한 배려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선생님이 가리킨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방금 나에게 인사를 건넨 그 분은 내 앞에 앉았다. 내가 앉은 책상 위에는 6-2라고 써 있었다. 종이에 6학년은 총 4반이 있다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내 옆과 김미영 선생님 옆 자리가 3반, 4반 자리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자리의 주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신규가 6학년 받아서 어째... 걱정 많이 되지? 그래도 여기 애들이 다른 데에 비해 착하니까 말썽을 많이 부리진 않을 거야. 참 말 놓아도 되나? 말을 먼저 놓고서는 나중에 물어보네. 하하하. 나이가 드니까 생각 없이 말을 편하게 하는 버릇이 들어버려서. 기분 상하거나 한 건 아니지?”

“네, 네. 말 놓으세요. 괜찮습니다.”

나는 상대방이 오해를 할까봐 서둘러 대답을 했다. 사실 초면에 반말을 듣는 것에 아직 적응이 되진 않았지만, 빨리 적응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학교생활 하다가 힘들고 어려운 거 있으면 내가 학년 부장이니까 나랑 상의하고. 3반, 4반 선생님들도 젊고 좋으니까 거기 물어봐도 잘 알려 줄 거야. 아. 마침, 저기 오네.”

“휴, 간신히 들어왔네요.”

“아. 진짜 너무 춥다!”

의자를 드르륵 빼며 젊은 여자 선생님 한 명과 남자 선생님 한 명이 자리에 앉았다. 추측하건데, 둘 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이나 많아보아야 삼십대 초반. 그래도 같은 학년 구성이 나이차이 많이 나는 분들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색 코트를 입은 생기발랄해 보이는 여자 선생님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갈색 웨이브 머리를 손으로 넘기며 가방에서 핫핑크색 노트를 꺼냈다. 크리스탈이 잔뜩 들어간 하얀색 펜도 뒤이어 등장했다. 검은 터틀넥을 입은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와 커다란 진주 귀걸이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야말로 ‘블링블링’해 보이는 모습. 그리고는 나를 보며 반갑게 웃어주었다. 나도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숙여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신규?”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내 옆에 앉은 블랙 롱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칭칭 동여맨 남자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걸어올 때 힐끗 보아도 180cm는 넘어 보이는 키였는데 지금 보니 얼굴도 호감형이다. 쌍커풀없이 선하게 처진 눈에 나름대로 오똑한 코, 남자 치고 잡티가 적고, 하얀 피부. 왠지 고학년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을 것 같다. 아니다. 그냥 보통 여자들한테도 인기가 많을 것 같다. 그래, 그게 정답일 것이다.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첫 발령받은 나누립니다.”
“아... 신규. 신규를 6학년 주면 어쩌자는 거야.”

그 남자 선생님은 목에 둘러 있던 회색 목도리를 풀면서 잠깐 목례를 하는 듯 하더니, 곧바로 볼멘소리를 했다. 지금 뭐라는 거지? 초면인데 저렇게 싫은 소리를 하다니. 단숨에 아까 생각한 호감형 얼굴이라는 말에서 ‘호감형’이라는 글씨를 머릿속으로 마구 지워버렸다. 그리고 ‘안 좋은 첫인상’이라고 다시 적어 넣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그 말의 속뜻은 내 걱정인가, 아니면 동학년을 신규랑 함께해서 싫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대로 된 뜻을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허우대만 멀쩡하면 다냐? 마음이 착해야지, 라고 쏘아 붙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규가 우리 보다 나을 수도 있어. 왜 이래? 안녕하세요? 오수진이에요. 신규면 스물 넷? 나는 올해 서른.”

다시 블링블링한 그 여자 선생님이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원래 힘든 순간에 찾아오는 귀인은 더욱 더 빛나는 법이다. 뭔가 눈물이 찔끔 나올 것만 같았다.

“결혼 못 한 서른이 자랑이냐. 경력으로 말해주든가. 없어보이게 왜 이래?”

감사한 마음을 잔뜩 담아서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고 인사하는 내 목소리가 저 첫인상 안 좋은 남자 선생님 목소리 때문에 묻혀 버렸다. 시작부터 정말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같이 결혼 못 한 서른끼리 왜 이러셔! 올해 7년차입니다. 이럼 됐냐? 군대 갔다 와서 나보다 실제 교직 경력은 낮은 이 선생아.”

저 둘은 친한가보다. 아무렇지 않게 내 앞에서 서로 투닥 거리는 씬을 계속 찍고 있는 걸 보니. 나는 이 어색한데다가 정신없고, 이상한 장면을 눈으로 촬영하고 있다. 최대한 싹싹한 신입사원다운 표정을 지으려, 얼굴에 최대한 미소를 머금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그렇지만 자꾸만 굳어가는 입 꼬리 때문에 들통이 나고 있겠지.

“자, 자. 둘 다 그만하고. 이선생은 자기 소개 안 해?”

김미영 학년부장 선생님이 둘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책상 위에 놓인 가방에서 검은색 가죽 다이어리와 모나미 펜을 꺼내며 남자 선생님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 나는 이정석. 학년 반은 알테니까 생략. 업무는 거기 종이에 적힌 대로 지긋지긋한 체육. 부장님 이 정도면 되죠? 이번에 남자 많이 들어오길 기대했었는데... 우리 학교는 왜 이렇게 남자가 안 오냐?”

이정석 선생님의 말을 다 듣고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두 가지였다. 학년부장 선생님을 앞으로 부장님, 이렇게 불러야 하는 구나. 또, 저 사람은 내 자리에 남자 선생님을 바라고 있었구나. 교대에서도 여자들이 많아 당연히 초등학교에 남자 교사의 비율이 적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많이들 원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면전에서 남자를 바란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러게. 나도 영한 꽃미남 신규 들어오길 간절히 바랬다네. 하하하. 아무튼 우리 잘 지내봐요.”

해맑은 표정으로 오수진 선생님이 말을 마쳤다. 나는 ‘알겠습니다. 선생님.’하고 깍듯하게 대답을 했지만, 뭔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남자선생님을 넘어서, 영하고 꽃미남인 남자 신규를 바랬다는 말에 더욱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첫날이니만큼 어색하고 적응이 안 되는 마음을 숨겨야 했다. 정신차리고 더 싹싹하게 행동을 해야한다고 다짐을 하고 있었다.

“근데 누리쌤. ‘선생님’ 그렇게 부르니 뭔가 내가 늙은 기분? 쌤~ 그래요. 수진쌤~ 혹은 3반쌤.”

오늘 나눈 대화 중에 가장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말이었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오수진 선생님은 늘 밝게 웃는 얼굴인 것 같다. 뭔지 모르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따뜻한 매력이 느껴진다.

“네, 쌤. 아. 수진쌤.”

이제부터 나는 친해지는 선생님들을 그렇게 부르기로 결정했다. 애정을 담아 친근하게 쌤, 하고.

“듣기 좋네.”

수진쌤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요새 애들이 안 그래도 말 끝마다 쌤 그렇게 부르는데 선생님들까지 나는 쌤~ 이렇게 부르는 거 별로더라. 선생님도 아니고 쌤이 뭐야.”

부장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에이, 부장님. 뭐 어때요. 정감 있고 좋잖아요? 요즘 언어죠. 하하하.”

부장님의 핀잔에 수진쌤이 웃으며 대답했다. 수진쌤은 나이가 많은 분들한테 무슨 말을 해도 밉지 않게 잘 말하는 것 같다. 저런 건 배워야지. 머릿속에서 펜을 꺼내서 아까 마지막으로 적어 넣은 ‘안 좋은 첫인상’ 밑에다가 다시 하나 적어 넣는다. ‘수진쌤처럼 웃으면서 싹싹하게 말하기.’ 그리고 별표를 세 개쯤 그려 넣었다.

“부장님. 쟤는 그냥 냅둬요... 아, 나는 맘대로 불러. 이선생님 하든지 이쌤하든지. 4반쌤도 좋고. 그래도 정석쌤은 좀 별로.”

이 사람은 정말 수진쌤과 정반대의 인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말 한마디로 없던 천냥 빚을 지는 스타일인 듯 하다. 그리고 웬 걱정? 어차피 애초에 그렇게 친하게 이름 넣어서 부를 생각이 없었는데. 앞으로 이쌤이라고 불러야지. 기분나쁘면 ‘이선생님’하고. 엄청 먼 사이인 것 마냥.

그 때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

“아, 아. 지금부터 학년 부장님은 학급명단이 들어 있는 봉투를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교감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각 학년에서 한 명 씩 교감선생님 자리로 나가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드디어 결정적 순간!”

수진쌤이 말했다.

“드디어 뽑기 시간이군.”

이쌤이 말을 끝내자 부장님이 자리로 돌아왔다.

“신규 먼저 뽑을래?”

봉투 네 개를 나에게 내민다.

“이게 뭔가요?”

봉투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부장님께 여쭤보았다.

“작년 5학년 선생님들이 여러 기준에 따라 반 편성을 해서 네 개 반으로 나눈 명단이 여기 하나씩 들어있어. 이걸 뽑으면 그 반이 내가 올 일 년 맡을 반이 되는 거지. 공평하게 추첨하는 거랄까.”

친절한 수진쌤이 대신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처음 담임을 맡게 될 반? 그 아이들의 운명이 내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가슴이 다시 방망이질 치기 시작한다. 이런 저런 핑크빛 설레는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는데, 순간적으로 6학년 나머지 세 선생님의 눈이 나만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구나. 그래도 여기서 내가 먼저 뽑는다고 하면 안 되겠지.

“아니에요. 부장님. 제가 막내니까, 맨 나중에 뽑을 게요.”

“그럴래? 그럼... 경력순으로 뽑는다. 이의 있는 사람 있어?”

부장님의 말에 ‘없습니다!’, 라고 외치는 3, 4반 선생님. 역시 내가 먼저 뽑는다고 했으면 욕 먹을 뻔 했구나, 싶다. 앞으로도 웬만하면 마지막에 하자. 굳은 일은 먼저 한다고 해야 사랑받는 신규가 되겠지. 그러고 보니 이거 얼마 전에 ‘신입사원 사랑받기.’라는 제목의 유튜브에서 본 내용이다.

이윽고 부장님부터 봉투를 한 개씩 가져가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여기 담긴 아이들이 일 년 동안 나와 함께 할 아이들이란 말이지? 두근두근한 기분으로 봉투를 열어 명단을 살펴본다. 총 25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각각 예쁘고 멋진 이름들이다. 내 첫 아이들. 과연 어떤 아이들일까.

“오늘은 업무 인수인계를 마무리 해주시고, 각 학급으로 돌아가 청소 및 정리를 하시면 됩니다. 학년별로 알아서 회의를 가지시면 되겠습니다.”

교감선생님이 마이크를 내려놓자 부장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각자 반으로 가볼까? 반에서 청소 좀 하고. 12시쯤 학년 연구실에서 모이기로 하지.”

우리는 부장님을 따라 일어나 반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이번에 6학년은 너무 끝으로 준 거 아닌가? 완전 섬이네, 섬.”

“그러게. 이쌤 말대로 후관에 5층이면 너무 멀다. 특히 출퇴근 할때... 계단을 몇 개를 오르락내리락 해야하는 거야...”

나는 ‘친해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걸어갔다. 아직은 내가 미로 속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이미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물음이 머릿속에 적혀 있었다. 내 뺨에 닫는 찬공기, 그리고 오래된 학교에서 나는 쾨쾨한 냄새까지도 낯설게 느껴진다. 빨리 학교 지리를 익혀야 겠다. 학급 경영 계획도 세워야지. 결재할 때 찍을 도장이랑 아이들 알림장에 찍어 줄 검사 도장도 사야 되는데. 아이들 줄 스티커도 사야하고. 해야 하는 일 한 가지를 생각하자 다른 일들이 떠오르고 그러다 결국 머릿 속에서 ‘해야하는 일 리스트’가 쭉 만들어진다. 당장 노트에 적어도 족히 열 개는 넘을 것 같다. 빨리 가서 다이어리에 적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들이 걸음을 멈췄다. 나도 따라 멈추고 고개를 들어보니 6학년 팻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럼, 다들 정리하고 만나요.”

부장님이 먼저 1반으로 들어가고, 3, 4반 쌤들도 차례대로 자신의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복도에서 잠시 6-2라고 쓰여 있는 명패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숨이 막히고, 어지러울 정도로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전까지 학생 신분이던 내가 이제 직장인, 그것도 선생님이 되다니. 잠시 그 기분을 머리가 띵할 만큼 즐겁게 느끼다 떨리는 마음으로 손잡이를 돌렸다. 끼이익하고 낡은 문이 열리고 익숙한 학교 냄새가 났다. 잊고 있었다가 한 번에 숨을 들이쉬면, ‘그래 이거였지.’, 하고 떠오르는 그 냄새. 교생 실습 때도 교실에 와보긴 했지만 이렇게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있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 건 나의 교실이다. 내가 교사인 내 첫 교실!... 떨리는 숨을 내 쉬자 고요한 교실에 내 숨소리만 가득 들려온다. 교사용 책상 앞에 놓인 25개의 책상들. 그리고 뒷벽에 가득하게 붙어있는 초록색 환경판. 그 밑에 빼곡하게 들어찬 사물함들. 기억 속에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새롭게 그리고 낯설게 다가오는 풍경들.

잘 해보자. 나누리.

잘 해보자. 6-2반.

아자, 아자!

머릿속에서 나만을 응원하는 응원단이 나팔을 불며 현란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취재 및 초고를 5년 전쯤 완성한 소설이라 현재의 교육현장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선생님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