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월 2일이다. 긴장되는 마음에 잠도 설쳤는데, 급기야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덕분에 학교에 일등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운동장을 들어서는데 주차되어 있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등교를 하는 아이들이나 선생님의 모습도 찾아 볼 수가 없고, 쌀쌀한 바람만 내 옷깃을 스쳐 지나갔다. 첫 출근 하던 날보다 더 떨린다. 나는 걸음을 재촉해서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교실에 들어온 나는 먼저 칠판 앞에 섰다. 분필을 하나 잡아 ‘6학년 2반 친구들 환영합니다.’라는 글씨를 쓰려고 한다. 첫 글씨부터 삐걱.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우개를 들어 깨끗이 지웠다. 두 번째도 실패. 나름 칠판 글씨 잘 쓴다고 교대 때 교수님께 칭찬도 받고 했었는데 오늘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그 글씨들을 마음에 들 때까지 수십 번 고쳐 쓰고, 아이들 명단을 크게 프린트해서 칠판에 붙였다. 이 걸로 과연 아이들이 환영받는 기분이 들까. 내가 아주 많이 궁금했고, 보고 싶었고, 기다렸다는 걸 알 수 있을까. 과연 어떤 아이들이 저 책상에 앉게 될까. 아이들이 나를 좋아할까. 요즘 아이들 무섭다는데 무시 당하는 건 아닐까. 며칠 전부터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히던 물음들이 다시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크게 숨을 내 쉬어 본다. 그나저나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금세 외울 수 있을까. 숨을 다 내 쉬자마자 다른 생각들이 머릿 속의 틈을 파고들었다. 아냐, 아냐.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쓸데없는 생각들을 모두 강제로 머릿 속에서 날려 버린 나는 모니터 속에서 한글 프로그램을 찾았다. 그리곤 프로그램을 열어 학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를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이걸 다 뽑은 다음에는 아이들이 자기소개를 쓸 수 있는 서식을 프린트 할 생각이다. 해야 할 일이 척척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데 그 때 앞문이 드르륵 열리고, 남자 아이 한 명이 조용히 들어온다. 새로 오픈 한 가게의 첫 손님을 맡는 사장의 기분으로 인사를 건넨다. 나에겐 인생 최초의 제자다!
“안녕?”
놀란 마음을 애써 감추며 최대한 밝게 인사를 건넸다. 와! 첫 학생이다! 내 첫 학생!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별로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슬쩍 숙여보이고는 맨 뒷자리로 가서 앉는 것이 아닌가. 뭐지? 이 태도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는 금세 풀이 죽었다. 내가 안 반가운 걸까, 아니면 여섯 번째 해보는 새 학기 첫 날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는 뜻일까. 뭐가 됐든 얼른 잊어 버리고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선생님께 들려 드리는 나의 이야기’라는 자기소개서 양식이 프린터에서 다 뽑힐 무렵, 삼삼오오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 우리 반 쌤이에요?”
“어려 보인다~”
“울 학교에서 처음 보는 쌤인데?”등등.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마구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래, 이런 상황이 펼쳐져야지. 나도 아이들도 서로 설레고 궁금한 상황.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어릴 적 수줍었던 나는 선생님 옆에 제대로 가보지도 못했었는데 이 아이들은 내가 낯설지도 않은지 금방 책상 앞이 시장통 마냥 북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처음 왔어, 내가 2반 담임이야, 등 아이들의 질문에 이것, 저것 대답을 늘어놓고 있자니 등에 진땀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기선제압을 해야 하나, 이렇게 친구 같은 선생님으로 지내도 될까, 또 쓸데없는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 때 나를 구원해주는 반가운 손길이 나타났다.
“나선생님.”
가벼운 노크소리와 함께 앞문이 드르륵 열리고, 이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와, 이 사람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오늘따라 말도 안 되게 반갑게 느껴지는 얼굴이다.
“체육쌤이다!”
“아냐. 올해는 6학년 쌤 된댔어.”
아이들이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는 듯 반갑게 입을 열었다.
“야, 야. 얼른 자기 자리에 앉지 못해?”
저것이 바로 6학년 교사다운 기선제압인가? 이쌤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후다닥 아이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오오, 대단하다. 저런 거 배워야지. 머릿 속에서 노트를 펼쳐 배울 것을 적어둔다.
“누가 첫날부터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냐? 조용히 앉아서 책을 보거나 해야지. 아, 나선생님 회의 있으니 교무실로 오시랍니다.”
“아, 네.”
나는 얼른 머릿 속 노트를 접고, 책상에서 실물 노트를 챙긴다. 그리고는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은 조용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 이제 뭐해요?, 라는 물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선생님 얼른 회의 갔다 올 테니까 잠깐... 앉아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 거지? 옛날 담임 선생님들이 이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뭐 하고 있으라고 해야 되는 건가? 아, 모르겠다. 나는 얼른 교실을 빠져나와 후다닥 앞문을 나가 문을 닫았다. 문을 닫자마자 등 뒤로 아이들의 괴성과 고성이 들려온다. 걸어가던 이쌤이 그 소리를 듣고 다시 앞 문을 열었다. 순간 또 쥐죽은 듯이 조용해진다. 대단해. 저런 카리스마. 배워야지. 다시 머릿 속 노트를 펴서 ‘필요할 땐 카리스마 있게.’ 라고 적어 넣는다.
“처음이라 그런지 엄청 진땀났는데 이쌤 덕분에 살았어요. 고맙습니다.”
하하하, 멋쩍게 웃음을 덧붙이자 이쌤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선생. 신규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걸 명심해. 요새 아이들 처음 몇 분에 올 해의 담임 스타일을 파악한다고. 그렇게 처음부터 진땀 빼서는 일 년 내내 애들한테 끌려 다닐걸. 착하게 해주는 것만이 좋은 선생님이 되는 길이 아니야. 앞으로 일 년 애들하고 어떻게 지낼 건지 잘 생각해서 선택해.”
다다다,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일사천리로 말을 마친 이쌤은 고개를 휙 돌려 다시 교무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만 그 자리에 휑하니 남겨져 있다. 뭐야, 좀 좋게 생각해 보려 했더니만. 웃고 있던 내 얼굴에서 금세 웃음이 사라졌다. 괜히 심통이 나서 이쌤의 뒷모습을 한참 쏘아본다.
“알립니다. 전체 선생님들께서는 지금 즉시 교무실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전체...”
아, 얼른 가야겠다. 복도를 쟁쟁하게 울리는 방송 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얼른 교무실을 향해 빠른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어땠어?”
방과 후 연구실 소파에 앉는데 부장님이 말을 걸었다. 지금 부장님의 눈에 비친 나는 분명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4교시 밖에 안했는데 왜 이렇게 지치는지 모르겠어요. 자기소개 쓰라고 하고 있는데 애들이 자리 안 정하냐고 해서 후다닥 자리 정하고. 책에 자기 번호 이름 쓰라고 말해줬더니 번호 안 알려줬다고 해서 갑자기 번호 불러주고. 청소 뽑아서 청소 하려고 하니 급식 먹을 시간 되고. 완전 정신없었어요... 애들이 집에 가니까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내 말에 수진쌤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 있는 이쌤은 관심 없다는 듯 가만히 자신의 교무수첩을 바라보고 있고, 부장님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신규 첫날이 원래 그렇지. 빼먹고 지나가는 것도 많고. 그래도 옆에서 들으니 잘 하는 것 같던데?”
“네? 제 목소리가 다 들리셨어요?”
“학교 방음이 얼마나 안 되는데. 그리고 저 경력 교사일수록 목소리가 엄청 커서 다 들리는 거야.”
부장님 대신 말을 마친 수진쌤이 재밌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나는 옆 반이 아니라 다행이네.”,라고 시니컬하게 말하는 4반 이 선생님. 아, 예. 예. 어련히 그러시겠죠.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진다.
“학부모 총회는 3월 중순이지만 아마 오늘부터 관심 있는 학부모는 전화 올테니까 교육방침, 교육철학 미리 세워둔 대로 전화 받고, 다음 주 월요일에 있는 학급임원선거랑 다음 주 수요일에 있는 전교임원선거 공문에 있는 대로 준비 잘 해서 아이들에게 미리 공지해주세요. 오 선생이 전교어린이회 담당이지? 나선생 잘 가르쳐주고.”
부장님의 말에 수진쌤이 알겠다고 대답한다. 나는 교무수첩으로 쓰는 다이어리를 열고 부장님이 말하는 것을 한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르게 글씨를 써 나간다. 우리의 필기 속도를 배려하듯 잠시 말을 멈췄던 부장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정상 수업이 진행되고, 전담 시간표 확정 되는대로 시간표 만들 테니 각반 시간표 작성하셔서 수요일까지 나선생한테 보내주면 돼. 나선생이 학년업무 담당이지?”
“아, 네.”
그제야 생각난 나의 업무. 출근 첫날 교감 선생님이 준 업무 분장표에 내 업무는 ‘학년 업무’라고 적혀 있었다. 같이 발령 난 동기들한테 말하니 다들 말도 안 되게 적은 업무라고 부럽다고 했었던 업무다. 대충 교사는 수업, 학급경영, 교무업무를 해야 하고 그 교무업무는 학교 선생님들의 수만큼 나눠져서 배분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또, 학교의 큰 업무들은 부장님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하고 있고, 다른 선생님들도 여러 개씩 업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어디선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먼저 현장에 나가있는 대학 선배들은 업무에 대해 원치 않은 업무를 받는 경우도 있고, 업무가 많은 교사는 수업보다 업무에 치어 산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그 많은 업무 중에 달랑 한 개를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것인가. 업무를 알고 나서 만나거나 통화를 했던 선배들이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업무가 적은 나는 운이 좋은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신규라 해본 적 없는 업무들 사이의 직접 비교가 어려운 나는 달랑 한 개의 업무 일지라도 두렵기만 하다. 아직 학교에 대한 감이 아무것도 없으니 주변에 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직에 있는 선배들이 업무는 정확한 교재가 없으니 알아서 주변에 물어보며 배워야 한다고 말한 데다가, 학년업무는 학교마다 해야 하는 일이 달라서 정확한 답을 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은근히 겁을 먹고 있었다.
“학년업무는 일단 업무 담당 선생님들이 내라는 것 수합해서 내고 담당 선생님들이 주는 가정통신문 이런 것들 배부만 잘 하면 돼. 수합과 배부 알지? 별거 없어 보이지만 또 은근히 힘든 게 학년 업무야. 집안 살림 하는 것처럼 별로 일한 티가 나는 것도 아닌데 안 하면 금방 티가 나지. 해야 하는 일도 끊이질 않아. 특히 학기 초와 학기 말에 달라는 게 많아서 힘들 수 있을 거야. 6학년 네 개 반 것을 잘 모아서 잘 내고, 통계도 해서 내야 할 때도 있을 거고. 그런 것 자칫 하면 잊어버릴 수 있으니 수첩에 잘 적어 놓았다가 업무 추진해.”
“네.”
부장님의 정신이 바짝 드는 말이 끝이 나고, 나는 노트에 학년업무 추진 잘하기, 라고 적어 넣었다.
“참 곧 환경물품, 청소물품 사라고 할 거니까 미리 생각들 해두고. 참 우리 수학여행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지? 오선생 담당이던가?”
“네. 작년에 갔던 경주에, 작년에 갔던 숙박업소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저희 4월 초에 가는 건 다들 아시죠?”
내 앞에 선생님 둘이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6학년은 수학여행도 가는구나.
“1박 2일 인가요?”
갑자기 궁금해진 내가 불쑥 끼어 들었다.
“왜 벌써 짐 싸게? 우린 2박 3일이야.”
부장님이 내 말에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수진쌤도 웃으며 물었다.
“신규라 수학여행 기대되나봐?”
내가 아니요, 하고 멋쩍게 웃고 있는데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던 이쌤이 입을 열었다.
“나선생이 학창시절에 갔던 수학여행 생각하면 안 돼. 재미는 하나도 없고, 완전 힘들어. 애들은 재밌겠지만 우리는 일로 따라 가는 거고. 그게 다야.”
“아, 네. 그런 건 상관없는데요... 그냥 궁금해서...”
누가 수학여행 재밌기를 기대했을까봐? 이 사람은 나를 어리게만 보는 듯 하다. 원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듣다니, 괜히 물어봤다 싶다.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학년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마치며 볼펜으로 책상을 세 번 탕탕탕, 치는 부장님의 행동이 재미있다. 나도 모르게 꼬인 기분이 금세 풀어졌다.
“수고 하셨습니다.”
선생님들이 모두 일어나 연구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선생님들을 따라 나가려는데 수진쌤이 문을 나가려다 말고 뒤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참. 누리쌤 남은 교과서 책장에 정리하는 것도 부탁해도 될까? 전학생 오면 줘야할 수 있거든.”
수진쌤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들고 있던 노트와 펜을 연구실 책상에 올려 두며 팔을 걷어붙였다. 책장에 교과서를 정리하며 하는 김에 연구실 청소도 해 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학년담당이니까, 거기다 막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연구실을 한 바퀴 쭉 둘러본다. 문 옆에 작은 싱크대와 냉장고가 있고 벽을 둘러 책장과 캐비넷이 쭉 놓여 있다. 그 가운데에 큰 책상과 소파가 놓여 있고 바퀴 달린 의자도 네 개가 있다. 여기도 일 년 동안 함께할 나의 두 번째 교실이나 마찬가지니까 힘내서 치워보자. 그리고는 캐비넷을 뒤져 청소용구를 찾고 손에 고무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내가 수업과 아이들에 버벅이는 사이 시간은 금세 흘러 전교 임원선거의 날이 되었다.
아침까지 선거운동이 마감되기 때문인지 어느 때보다 출근길이 시끄러웠다. 형형색색의 피켓을 들고 무리지어 다니며 기호 1번, 기호 2번을 외쳐대는 아이들. 한 아이의 피켓은 주변 어른들이(아마도) 엄청 공을 들인 흔적이 가득하다. 인쇄소에서 프린트해온 것 같은 어깨띠도 선거 운동하는 어른들의 그것 못지않았다. 아이들의 것이어야 하는 학교의 선거가 어른들의 선거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실내화를 꺼내 갈아 신고, 신고 온 신발을 신발장에 집어넣었다. 드디어 결정한 나의 실내화는 통굽은 아니고, 교사용 룩에 어울릴 만한 적당한 검은색에 푹신한 쿠션이 있는 슬리퍼였다. 밖에서 신어도 창피하지 않은 것으로, 오래 신고 있어야 하니 무겁지 않은 것으로, 거기다가 6학년 아이들이랑 비슷한 실내화를 사지 않기 위해 엄청 머리를 써서 골랐다. 신발장에서 마주친 몇 명의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우리 반 후보자가 눈에 띄었다. 파란 셔츠에 보타이도 하고 머리도 정갈하게 빗어 넘긴 모습. 이걸 위해 반장선거도 나오지 않고 전교 어린이회 선거 기간 동안 열심히 한 우리 반 석훈이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응. 석훈아. 힘내서 마지막 선거 운동 잘 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석훈이를 따라다니며 함께 선거 운동을 해주던 남자 아이 여럿이 나에게 “석훈이가 회장 되면 좋겠어요.”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 열심히 도와줘.”
나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교실로 향했다.
수업이 끝나고 텅 빈 교실에서 내일 수업할 교구를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저장해 놓은 번호가 떠서 보니 석훈이 어머니였다.
“네, 여보세요.”
“네, 선생님. 석훈이 엄마예요.”
“네, 안녕하세요, 석훈이 어머님.”
“투표 결과 나왔나해서요. 아직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 안 됐던데 결과 안 나왔나요?”
“석훈이도 참관하러 3반 교실에 간 것 같은데, 아직 안 온 걸 보면 개표가 마무리 안 된 것 같아요. 제가 그럼 한 번 가 볼게요.”
“예, 감사합니다. 선생님. 석훈이가 너무 하고 싶어 해서, 저도 마음이 졸이네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책상을 대충 정리한 뒤 3반 교실로 향했다. 수진쌤이 전교어린이회 업무를 맡고 있어 그 반에서 개표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 반 뒷문과 3반의 앞문을 차례로 지나친 뒤 잠시 멈춰 서서 창문을 통해 교실 안을 바라보았다. 한창 개표가 진행되고 있는지 칠판에 전교 회장 후보들의 이름과 바를정자 표시가 더해지고 있었다. 홍석훈, 홍석훈. 나는 손가락을 들어 칠판에 적힌 석훈이의 이름을 찾았다. 석훈이의 득표 현황을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여자 후보자 한명과 엎치락뒤치락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공정한 교사여야 하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괜히 우리 반 후보자에게 마음이 쏠리고 있었다. 서 있는 아이들이 하나씩 투표 용지를 펼쳐가며 개표를 하고 있고,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떨리는 표정들로 앉아 있었다. 교실 뒤에 서 있는 수진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4반쌤? 이쌤은 왜 와 있지? 둘이 친해서 그런가. 아냐, 혹시 둘이 사귀는 사이일지도... 첫 날부터 보아온 두 쌤은 친해도 너무 친한 느낌이었다. 지금도 둘이 웃으며 투표 진행 과정을 관전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즐거워 보이는 둘의 모습에 자꾸 시선이 고정된다. 그 때 수진쌤이 나를 발견하고는 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제야 이쌤도 나를 힐끗 쳐다본다. 나는 이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목례를 마친 이쌤은 이미 고개를 돌려 개표 결과를 보고 있었다. 그 때, 개표가 끝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칠판을 바라보았다. 결과는? 홍석훈 98표. 김다혜 101표. 아슬아슬하게 우리 반 석훈이가 부회장이 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창을 통해 석훈이의 표정을 살펴보니 굉장히 낙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석훈이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주먹을 꼭 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부회장으로 당선 된 것만 해도 멋진 결과인데, 저 정도의 반응이라니. 석훈이는 꼭 회장이 되고 싶었나 보다. 잠시 후 석훈이가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석훈아.”
신발 주머니를 챙겨 계단을 내려가려던 석훈이가 나를 발견하고 잠시 멈춰서 인사를 했다. 아침과 다르게 어두운 표정이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회장 된 것 축하해.”
나는 위로의 말 대신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사실 그게 맞지 않은가. 부회장으로 당선이 되었으니 말이다.
“네... 그럼 안녕히계세요.”
그러나 석훈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잘 가. 내일 보자.”
나는 석훈이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었다. 석훈이는 곧 나를 지나쳐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으로 석훈이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네, 선생님.”
“방금 결과 나왔는데... 석훈이가... 부회장에 당선되었어요.”
내가 결과를 전달한 다음에 나온 석훈이 어머니의 대답에서 나는 석훈이가 왜 그런 뒷모습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회장이 안 되었단 말씀이세요?”
석훈이의 어머니는 석훈이가 부회장이 된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고 있었다. ‘부회장에 당선 되었어요? 너무 잘됐네요!’ 이렇게 말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네... 안타깝게도 회장은...”
“알겠어요, 선생님. 자세한 건 석훈이 오면 물어볼게요.”
그리고는 인사도 없이 뚝, 끊겨 버린 전화. 뭐지? 기분이야 나쁘겠지만 그래도 끝인사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3반에서 수진쌤과 이쌤이 나왔다.
“왜 그런 표정으로 서 있어?”
수진쌤의 말에 나는 방금 있었던 전화 내용을 말해주었다.
“요새 선생님은 옛날 선생님과 달라. 스승의 은혜? 그런 거 없어.”
이쌤이 날카롭게 말을 마치자마자, 수진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좋은 분들도 많아. 그리고 그 어머니도 자식이 회장 선거에 떨어져서 기분이 나빴나보지. 근데 부회장 당선도 잘 한 건데? 전교 부회장 당선이면 좋아해야 할 일 아냐? 동네 잔치 벌이고... 아, 이 정도는 아닌가? 하하하. 아무튼 그 아이 안 됐다. 집에 가면 좋은 소리 못 들을 거 아냐... 누리쌤도 기분 나쁜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좋게 생각해. 아, 참. 오늘 환영회식 있는 거 알지? 다섯 시에 연구실에서 만나서 같이 가자고.”
“네.”
나는 수진쌤 말에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교사가 됐으면서 내 기분만 생각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수진쌤 말대로 당사자인 석훈이는 지금 얼마나 속상할까. 부회장 당선도 정말 잘한 건데 말이다.
“나는 투표 결과 결재 나서 게시하러 가야 돼. 먼저 갈게.”
“네, 이따 봬요.”
나는 쌤들과 헤어져 다시 아무도 없는 교실로 돌아왔다. 텅 빈 교실만큼 내 마음도 텅 빈 느낌이 든다. 부회장 당선도 아니, 큰 선거에 자신감있게 나온 것만으로도 굉장히 장한 일인데 가장 칭찬받고 싶었을 엄마에게 축하받지 못한다. 석훈이의 상황을 생각하니 그 아이의 슬픔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그러니 아까 개표할 때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마음이 씁쓸해진다. 아이들이 작은 일이라도 칭찬받고 축하받는다면 자신감도 커지고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자랄 수 있을텐데. 집에서도 아이들이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일부터는 교사인 나부터 아이들을 많이 칭찬해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의자에 앉았다. 모니터를 켜보니 메시지 팝업창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학교 메신저의 ‘안 읽은 메시지 24개’라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나를 사로잡고 있던 감상적인 기분은 금세 사라졌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메시지를 하나씩 클릭을 하며 살펴보기 시작한다. 퇴근하기 전까지 처리해야 될 일이 있나? 내가 놓친 일이 있을까 싶어 마우스 커서를 밑 줄 긋듯이 천천히 움직이며 메시지를 읽어 내려간다. 이것도 오늘 제출이네.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업무들의 독촉 메시지들이다. 교무 수첩을 펴서 해야 할 일을 적는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옮겨 메시지를 확인한다. 그러한 단순 행동들이 반복되는 사이 조금 전 통화에 대한 상념이 머릿 속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교사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성인군자인척 해보려하지만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보다. 그렇지만 내가 이쌤말대로 ‘스승의 은혜’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선생님이 아니라도, 누구든지 전화를 하다가 끊을 때는 끝인사를 하는 거니까 말이다. 안녕히계세요, 감사합니다, 이런 말이 어려운 건가? 이게 대우를 받으려는 나의 욕심인건가. 머릿속에 교사가 되고 나서 학부모들하고 통화를 했던 장면들이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다. 예의를 갖추어 통화를 하는 학부모들이 대다수였지만, 아까처럼 자기 용건 후에 뚝 끊어버리거나 심지어 반말을 섞어가면서 통화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1반 김미영 선생님처럼 나이도 있고, 경력도 많았다면 나를 그렇게 대하지는 않았겠지? 내가 너무 신규티를 낸 건가. 그래서 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가. 안 좋은 생각은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아냐, 아냐. 잊어버려. 잊어버리자.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생각아 물러가라, 훠이 훠이~ 허공에 손도 내저어 본다. 정신을 차리고 메시지를 다시 살펴보니 지금은 수합해서 낼 것만 4개가 있었다. 업무가 밀려 있으니 빨리 일이나 하자.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었다.
일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을 무렵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렸다. 이거 하나만 처리해서 보내면 되는데... 일단 한글 파일을 저장해 놓고 휴대폰을 확인한다. 김성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떠서 누군가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우리 반 학부모 중 한 명이었다.
‘안녕하세요. 진우맘입니다. 내일 준비물 뭔가요?’
준비물이라니... 다 알림장에 다 적어준 건데... 알림장은 모두 검사를 하니 진우가 안 적어 갔을리는 없고, 아무래도 진우 어머니가 알림장도 보지 않은 채 나한테 질문을 던진 것 같다. 그리고 카카오톡 대화라니... 카카오톡은 그야 말로 사적인 공간이라 공적인 관계인 학부모들과 연관될 줄 몰랐던 터라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프로필 사진도 생각 없이 친구들 보기용으로 올린 것도 많고, 내가 읽었는지가 바로 확인 가능하니 조금이라도 답장을 늦게 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지금도 일 처리를 먼저 하고 싶지만 학부모는 내가 읽은 것을 이미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니 답을 신속하게 해야 할 것 같다. 카카오톡 대화가 처음으로 불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부터도 휴대폰 메시지보다 카카오톡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으니 저한테 카카오톡 보내지 마세요, 라고 할 수도 없고... 이래서 선생님들이 두 개의 휴대폰을 사용한다는 거구나... 얼마전에 포털사이트에서 생각 없이 클릭해서 본 기사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번쩍, 프로필 사진이 생각났다. 학부모들이 그 사진을 이미 봤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엄청 웃기게 나온 걸 일부러 올린 거였는데... 서둘러 장난스럽게 찍은 프로필 사진부터 지우고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풍경 위주의 사진으로 변경했다.
‘안녕하세요. 진우 어머님. 내일 준비물은 수채화도구와 스케치북입니다. 준비물은 학교 홈페이지에도 올려놓았습니다. 참고 부탁드립니다.’
뭐라고 써야하나, 여러 번 생각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준비물 확인을 다시하고, 오타도 다시보고, 예의 있는 말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역시 공적인 메시지 보내기는 어렵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교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