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신규교사 나누리_3월 02

by 릴리포레relifore


“누리쌤. 뭐해? 왜 안 나와?”

문이 열리고 등장한 사람은 수진쌤이었다. 맞다! 오늘 전 직원 회식이 있었지!

“수진쌤, 죄송해요! 일 처리하느라... 금방 정리하고 나갈테니 먼저 내려가 계세요.”

“응. 그럼 신발장에 있을게.”

곧 문이 닫히고 나는 서둘러 컴퓨터 전원을 껐다. 조금만 더하면 일이 완전 끝나는 거였는데... 할 수 없이 내일 해야지 뭐...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책상위에 펼쳐 있는 지도서와 교과서, 교무수첩들을 정리하고 후다닥 교실을 빠져나갔다. 계단을 뛰어 내려와 신발장에 도착하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6-2라고 적힌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갈아 신고 실내화를 다시 집어넣었다.

“학부모한테 카톡이 와서 답장하느라 좀 늦었어요.”

“뭐 중요한 내용이야?”

부장님이 물었다.

“준비물 문의요.”

“알림장은 홈페이지에도 올려두지 않아?”

“네.”

“먼저 찾아보지도 않고... 요즘은 다들 너무 급하시다니까... 그나저나 오늘 회식은 오리고기 집이랬나?”

“네, 학교 건너편에 있는 곳이요.”

수진쌤이 대답하자, 부장님은 먼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쌤과 수진쌤이 나란히 그 뒤를 따르고 나도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어느새 다른 학년 선생님들도 내려와 운동장을 같이 걷고 있다. 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은 없고 선생님들만 가득 찬 신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저 카톡으로도 연락 올 수 있다는 걸 생각도 못했던 거 있죠? 프로필 사진부터 바로 바꿨어요. 너무 장난스러운 사진이었어서...”

나는 진땀 났던 좀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말을 꺼냈다.

“맞아. 요즘은 편하게 메신저로 연락들 하니까. 읽고 답장 없으면 왜 답장 빨리 안 보내냐고 한 소리 들은 적도 있어, 난.”


수진쌤의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생각은 했지만... 진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요즘 가장 어려운 것은 수업도 아니고, 일도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학부모 상담이었다. 선생님들과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도 어렵기는 하지만 나이 어린 내가 많게는 스무살 정도 차이 나는 학부모들에게 교사의 입장에서 교육관련 문제를 상담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게 느껴졌다. 상담의 내용보다 어려운 것은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전화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뭐 그런 것들. 모두 교대 수업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았던 것들.


“남자사진이라도 올리거나 하면 당장 애들부터 쌤 남친 있어요?, 한다니까. 누리쌤도 조심해.”

“아... 그렇군요. 남친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수진쌤의 말에 나는 하하하, 하고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난 교사되고 나서 내가 연예인 된 줄 알았다니까? 나는 동네를 지나다니는데도 나는 모르는데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한테 인사하기도 하고. 인사라도 하면 다행이지. 다 알아보고 뒤에서 자기들끼리 말하는 경우도 있어. 나 초반 삼년은 노이로제 걸리는 줄 알았다니까... 연예인들이 파파라치한테 사진 찍힐까봐 숨어서 연애하는 것처럼 나도 몰래 만나고 그랬어. 혼자서 집 앞에 마트갈 때도 화장하고 다니고. 하하하. 웃기지?”

수진쌤의 말이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이것도 교사의 애환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교사는 계속 보여지는 직업이라 이것 저것 신경 쓸 게 많지. 옷차림도 그렇고. 그러고보니 오늘 나선생 치마가 너무 짧지 않아?”

부장님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 황급히 치마를 끌어 내린다. 내 치마가 짧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요즘 다들 이렇게 입으니까 아침에 아무 생각 없이 입고 왔었다. 젊은 여자로는 괜찮지만 선생님의 옷차림으로는 부적절한가,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든다. 앞으로는 옷차림도 신경 써야겠다.

“요즘 옷들이 다 짧게 나와요. 부장님~”

수진쌤의 말에 부장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선생이 더 문제야. 손에 그 형광분홍색 메니큐어에... 그러고 보니까 오선생 치마가 더 짧은 거 같다?”

“옷가게에서 긴 치마를 안 판다니까요. 만들어 입을 수도 없고. 그리고 부장님~ 네일아트 모르세요? 이게 요즘 트렌든데~ 참 그리고 다 분홍색 아니에요. 여기 여기... 흰색도 보이시죠? 요즘 간간히 다른 색깔 칠하는게 트렌드라니까요~ 그리고 여기 포인트로 붙인 큐빅도 이쁘죠? 다음에 부장님도 같이 네일샵 가실 래요?”

수진쌤이 과장된 몸짓을 하며 말하자 부장님이 웃는 것으로 상황이 종료 되었다.

“아, 오수진. 내가 졌다, 졌어. 진짜 오선생은 이길 수가 없다니까.”

부장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먼저 걸어나갔다. 수진쌤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옆에 걸어오던 이쌤도 정말 오수진은 대박이야, 라고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고 보니 수진쌤은 늘 옷을 잘 입는 것도 그렇지만, 옷차림마다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메니큐어라든지, 다른 사람은 소화 못하는 색상의 옷이라든지. 보통 선생님들의 수수한 옷차림과 달랐다. 오늘도 수진쌤은 핑크색 손톱에 핫핑크 색상의 자켓을 입고 있었다.

“누리쌤. 부장님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도 초반 몇 년은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남의 시선 의식했었는데... 다 소용없다? 내가 뭘 하든지 욕하는 사람은 욕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해. 그리고 우리는 교사로서 해야할 일만 잘하면 되는 거 아냐? 잘 가르치고, 아이들 사랑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뭘... 나는 옷차림이 너무 노출이 심하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괜찮다고 생각해. 요즘 잡지나 TV만 봐도 옷이 얼마나 예쁘니? 근데 저 앞에 걸어가는 선생님들 옷 색깔 봐. 다 검은색 흰색, 회색... 무난하지만 재미없어. 다들 누가 그렇게 입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틀에 박혀서는... 그러니까 밖에서 교사들 옷 못 입는다는 소리나 듣는 거야. 저 옆에 이정석도 봐. 무난한 자켓에 청바지. 완전 재미없지 않니? 저분 완전 틀에 박히신 분이거든. 하하하.”

조금 떨어져 걷던 이쌤이 우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네 지금 내 얘기하냐?”

나는 화들짝 놀라며 이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수진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뭐라니? 관종이야? 우리가 왜 니 얘기를 해... 근데 참 너네 반에 그 전교 얼짱 성식이가 체육시간에 다쳤다며? 우리 반 여자 애들이 걱정하던데...”

천연덕스럽게 수진쌤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이쌤은 별로 다치지 않아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동학년 선생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오니 어느덧 회식 장소에 도착했다. 도착한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가기위해 신발을 벗고 있었다.


“마루에 앉아야 되나봐? 아, 신발 벗기 귀찮아.”

“6학년 뭐해? 꼴찌야 꼴찌. 얼른 들어와.”

수진쌤이 투덜대며 부츠를 벗고 있는데 교무부장이 나와서 우리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나도 재빨리 신발을 벗고 선생님들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수진쌤은 입고 있는 자켓을 벗어 다리에 걸쳤다. 그러나 오늘 흰 쉬폰 소재의 블라우스에 얇은 가디건만 입은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가디건을 벗으면 블라우스에 속살이 비칠까 신경 쓰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치마 끝부분을 내려 보기도 하고 다리를 최대한 오므려 앉았다. 그래도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오늘 회식하는 걸 잊어버리고 치마를 입고 온 내 탓이다. 그것도 부장님 말씀대로 짧은 치마를... 두 손으로 최대한 드러나는 허벅지를 가리고 있는데 갑자기 휙, 하고 다리에 무언가가 걸쳐졌다.

“덮고 있어. 불편하잖아. 아, 내가 보기가... 불편하다고.”

올려다보니 이쌤이었다.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나한테 덮어준 것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호의에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데 건너편에 앉은 수진쌤이 이쌤을 놀리기 시작했다.

“오~ 나름 배려 돋는데? 이런 남자인줄 미처 몰랐네.”

“니가 날 뭘 알아. 너는 얼른 물이나 따라.”

컵을 수진쌤 앞에 갖다 놓으며 이쌤이 말했다.

“아, 아. 지금부터 다들 지방 방송은 꺼주시기 바랍니다.”
교무부장이 일어서 발언을 하기 시작하자 웅성거리던 모든 곳이 조용해졌다.

“오늘은 새 학년도 첫 회식입니다. 먼저 이 감사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교장선생님 말씀 먼저 듣고 식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오늘은 2차도 있습니다. 다들 중간에 미리 가는 일 없도록 해주세요. 1차 끝에 학년별로 얼마나 남아 있는 지 확인 하겠습니다.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학년에게는 친목회에서 선물... 아, 친목회는 돈이 없다고 하니까 제가 작은 선물로 교무실에 있는 사탕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교무부장의 말에 선생님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난 재미 하나도 없는데.”

작게 투덜거리는 수진쌤 팔을 가볍게 건드리며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해 보이는 부장님. 그 모습을 보고 쌤통이다, 하고 입모양으로 말하는 이쌤. 나는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선생님들 물 잔에 물을 따랐다. 이것도 막내가 할 일이니까. 숟가락과 젓가락을 통에서 꺼내 선생님들 앞에 내려놓았다. 이윽고 교장선생님의 긴 환영사가 끝나고 속속들이 음식이 세팅되기 시작했다. 지글지글하고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방 전체에 감돈다.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수진쌤을 필두로 식사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신규 선생님?”

한참 신나게 먹고 있는데 누군가 팔을 건드려 돌아보니 교무부장이었다.

“교무부장님 여기까지 웬일이세요?”

크게 싼 쌈을 입에 밀어넣으며 부장님이 말했다.

“신규 데리러. 나누리 선생님? 교장 선생님한테 인사 한 번 드려야지?”

“네?”

“술 한잔 따라 드리라고.”

“아, 네.”

그런 것도 해야하는 구나. 덮고 있던 옷을 벗어 옆에 앉아 있는 이쌤에게 다시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 부장님.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술을 따릅니까?”

이쌤이 장난치듯 볼멘소리를 툭 건넸다.

“여자라서 술을 따르라는 거냐? 신규니까 인사드리라고 하는 거지. 이게 다 나누리 선생님한테 도움 되라고 하는 거야. 야, 이정석. 너는 알지도 못하면서... 잠자코 고기나 먹어.”

장난치듯 말하고 교무부장은 나에게 앞장서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고 교장선생님에게 향했다. 술 한잔 따라 드리고, 술 한잔 받으며 좋은 이야기를 잠시 듣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아휴. 고생했어. 누리쌤. 나도 그랬어. 이 문화는 없어지질 않나봐. 그래도 우리 교장선생님은 술자리에서 깔끔하시니까... 기분 나빠하지는 말고.”

수진쌤의 위로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수진쌤은 역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래. 얼른 고기나 많이 먹어. 우리 막내.”

부장님이 말을 마치며 쌈을 하나 싸서 내 입에 넣어 주신다. 쌈을 우걱우걱 씹으며 그래도 나를 챙겨주는 건 동학년 뿐이구나, 하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1차 회식이 끝나고 나와 이쌤은 2차 회식을 위하여 한 술집에 들어갔다. 수진쌤과 부장님은 각각 컨디션 난조와 아이들을 핑계로 귀가했다. 딸린 가족도, 현재 아픈데도 없는데다 심지어 환영회식의 이유이기도 한 나는 반드시 2차에 함께 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믿을 수 있는 동학년이라고는 이제 이쌤뿐이다. 물론, ‘믿을 수 있는’ 이라는 말은 금세 취소하고 싶을 만큼 나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처럼 따로 앉아 있었지만.

여러 선생님들이 귀가한 뒤 시작된 2차 회식에는 젊은 교사들을 주축으로 교무부장, 교감선생님까지 해서 총 12명이 있었다. 맥주와 안주가 테이블에 도착하고 또 다시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선생님들이라고 해서 회식 때 술을 별로 안 먹을 것 같은 생각을 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이런 술자리는 일반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들었던 회식의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옆에 앉게 된 5학년 김지향선생님, 4학년 임진희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각각 2년차, 3년차로 나와 비슷한 나이여서 그런지 쉽게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중간 중간에 반대편에 앉아있는 이쌤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다지 서로 신경쓰지는 않았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또 몇 명의 선생님이 집으로 갔다. 교감선생님도 귀가하셨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남은 사람은 총 다섯. 나는 언제쯤 집으로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눈으로 남은 선생님의 수를 세고 있는데 얼큰하게 취한 교무부장이 내 옆으로 왔다.

“나선생. 생각보다 술 잘 하네? 한 잔 하지?”

내 술잔에 휘청거리며 술을 따르는 교무부장에게 자리를 비켜주며 지향쌤이 내 귀에 재빨리 말을 전했다.

“나쌤 미안해. 임신 초기라 그런지 힘이 들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내일 봐요.”

그리고는 가방을 메고 부리나케 술집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취해있는 교무부장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나만 사색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술을 입에 넣으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에이. 부장님. 많이 취하셨네.”

나와 교무부장 사이를 비집고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쌤이었다. 이렇게 이 사람이 반가운 것은 처음이다. 아니 두 번째 인가?

“저 화장실 좀...”

이때다 싶었던 나는 슬쩍 자리를 나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신규라고 인사차 주는 술을 거절도 못하고 다 마셨더니 화장실 변기를 보자마자 울렁거림이 극에 달했다. 오늘 먹은 것을 모두 게워내고 물로 입을 헹구었다. 집에 가고 싶다. 이렇게 귀가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 보긴 처음이다. 또 술자리가 이렇게 지겨워보기도 처음이다. 이게 사회생활이라는 거겠지. 대학 시절까지 나와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과의 관계만 있었는데 이제는 나이 많은 선배 교사들과도 학부모들과도 일을 하고, 이야기를 나눠야하는 위치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는 그저 학생이었는데, 3월 2일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확 바뀌었다. 많이 컸네, 나누리. 대면식이 아니라, 회식에 와 있다니.


거울을 들여다 보다 문득 생각이 나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열시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퇴근 시간인 5시부터 회식을 시작해서 그런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벌써 열시야? 벌써 열두시야?’ 하며 술자리를 했던 것 같은데... 이 재미없는 술자리는 언제 끝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런데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닌가? 벌써 회식이 끝난 건가 싶어서 나는 서둘러 술집 문을 열고 계단으로 향했다.

“나누리. 괜찮아?”

거기에는 이쌤이 서 있었다. 이 사람한테 나누리, 라고 불려보기는 처음이다. 뭐 이 사람도 선배니까. 대학 선배들도 그렇게 부르니까.

“아, 네. 괜찮아요.”

“다들 밑에 있어.”

이쌤이 앞장서고 내가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니 선생님들이 밖에 서 있었다. 교무부장이 사람들을 붙잡고 3차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은 인사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교무부장은 마침 내려온 나를 붙잡고 취한 얼굴을 들이 밀며 말했다.

“나선생. 3차 콜?”

3차 같은 소리하고 있네,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역시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부장님... 오늘은 시간이 늦은...”

“부장님. 저랑 가요. 3차. 여 선생님 잡고 이러다 큰일 나는 거 아시죠? 3차는 남자끼리. 콜?”
내가 횡설수설하며 핑계를 생각하는 찰나, 이쌤이 부장님의 손을 내 어깨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이쌤이 웬일이지?’ 싶게 오늘은 정말 많이 도와주는 것 같다.

“나선생. 집이 엄하다며? 얼른 들어가.”

“아? 네, 네. 감사... 아니, 안녕히 계세요.”

살았다! 나는 서둘러 인사를 하고 택시를 잡으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집이 엄한 것은 사실이지만 난 현재 자취중이고, 그걸 이쌤도 알고 있었다. 집이 엄하다며? 라는 핑계를 대다니. 그 순간에 나를 보내 줄 이유를 제대로 못 찾은 건가? 정말 생각할수록 엉뚱한 핑계였다. 90년대에나 통할 것 같은 핑계다. 재미있는 사람이네. 달리면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쨌든, 이렇게 어렵고 적응이 안 되었던, 신규 나누리의 첫 회식이 끝났다. 드디어!



나 어릴 적 선생님들도 술 마신 다음날 이런 모습이었겠지.

나는 울렁이는 속과 흔들리는 골을 견디며 태연한 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1교시 수학, 2교시 국어는 어떻게 견뎠는데 3교시는 음악! 토할 것 같은 상태로 노래를 하려니 이러다 여기서 정말 큰일 내겠구나 싶다. 아이들은 이런 내 마음을 모르겠지. 그러니 저렇게 눈치 없이 떠들고 있지.

“누가 노래 안 부르는 거지?”

머리가 깨질 것 같고 얼굴에 열이 오른다. 아이들이 내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다시 집중을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덩치만 컸지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순진한 얼굴로 순수한 동요를 부르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새삼 귀엽게 느껴진다. 변성기를 막 통과하고 있는 몇몇 남자아이들의 걸걸한 목소리도 오늘따라 웃음이 날 정도로 귀엽다. 이 교실에서 때가 탄 건 나뿐인가. 어른 세계의 때. 그러니 이렇게 아름다운 동요를 이런 몰골을 하고 술집에서 다 쉰 목소리로 부르고 있지.


“자, 이제 3교시 끝! 다들 체육 하러 나갔다 오세요.”

노래를 몇 번 더 부르자 수업 마칠 시간이 되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일제히 와, 하며 교실을 달려 나간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체육 전담 시간. 나도 이제 좀 쉴 수 있겠다! 만세를 외치며 의자에 풀썩 앉았다. 가방 속에서 숙취해소용 음료를 꺼내 알약과 함께 마신다. 그리고는 교무 수첩을 열어 오늘 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살펴본다. 이건 아침에 냈고, 이건 방금 처리했고. 잠깐 여유가 생기자 연구실 소파에 누워 있다 올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10분만 누워 있을까? 보건실에 가서 누워 있을 정도로 아프지는 않으니. 나는 주변을 정리한 뒤 교실 문을 닫고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 들어가 보니 다행이 아무도 없었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꺼내 알람을 10분 뒤로 맞췄다. 그동안 내 몸 안에 들어 있을 숙취해소용 약이 효과를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벌써 10분이 지났어?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은 느낌인데... 나는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 없을 때 어제 수합한 청소용구 신청 파일 네반 것을 모두 모아 담당 선생님한테 보내야 한다. 신규교사라는 핑계로 업무와 수업을 모두 헤매고 있는 나는 아이들의 등교와 동시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할 때까지 오늘 해야 할 업무를 못하기 일쑤였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가 밀렸을 때는 퇴근 이후에 학교에 남아 시간외 근무를 하거나 집으로 일을 싸가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짬이 나는 전담시간에 꼬박 업무 처리를 해야 한다. 얼른 교실로 가서 일을 하자. 나는 정신을 차려보려 애쓰며 연구실을 나왔다.

“누리쌤. 어제 잘 들어갔어?”

연구실 앞에서 빨간색 니트 원피스를 입은 수진쌤과 마주쳤다. 평소에는 예쁘다고 느꼈을 색상인데 숙취때문인지 오늘따라 머리가 아프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쌤. 잘 들어갔어요.”

“이정석 말들어보니 어제 끝까지 있었다며... 고생 많았어. 내가 생리통만 아니었어도 함께 해주는 건데...”

다시 머리가 아파오는 나는 수진쌤의 옷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별 일 없었어요. 지금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것만 빼면요... 하하하.”
“지금 전담?”
“네. 체육이요.”

“나도 영어 전담시간인데... 그럼 좀 쉬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청소용구 제출해야돼서요... 얼른 가서 일해야 돼요. 그래도 잠깐 연구실에서 쉬었어요.”

“그렇구나. 원래 학년업무가 학기 초에 수합해서 제출할 게 많아 정신이 없지. 고생해. 나는 복사 좀 하러.”

내 어깨를 토닥이며 수진쌤은 복사기가 있는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참.”

들어가다 말고 수진쌤이 다시 나를 찾았다. 나는 다시 수진쌤을 바라보았다.

“교실 문 다 열려 있던데? 누리쌤. 교실 밖 나올때는 문단속 하고 나오는 게 좋아. 특히 아무도 없을 땐.”

“네? 저 문 닫고 나왔는데?”

나는 서둘러 교실로 향했다. 뭐지? 아이들이 잠시 교실에 왔다 갔나?

교실로 와보니 수진쌤의 말대로 교실 앞, 뒷문이 휑하니 열려 있었다. 나는 분명 닫고 갔었는데, 누가 왔다 간 거지? 교실 안은 조용했다. 나는 서둘러 문을 닫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별 일 없는 것 같아 일을 하기로 하고, 컴퓨터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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