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저 지갑이 없어졌어요.”
점심시간 아이들과 앉아 밥을 먹으며 급식지도를 하고 있는데, 밥을 다 먹고 교실로 갔던 여자아이 둘이 다시 내려왔다.
“뭐? 언제?”
“모르겠어요. 지금 가방 보니까 없어요.”
“그래?”
언제 없어진 거지? 급식 먹으러 다들 내려왔을 때? 아니면... 갑자기 아까 열려 있던 문들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체육시간?
“얘들아. 선생님이 지금 교실 가봐야 하니까 선생님 없다고 안 먹고 밥 다 버리지 말고 잘 먹고 가. 알겠지?”
내 앞에 앉아 있던 남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다 먹지도 못한 식판을 정리하고 서둘러 교실로 올라갔다. 교실로 돌아와서 혜민이 얘기를 들어보니 3만원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렇게 큰 돈이 있으면 선생님한테 맡기지 그랬니... 안타깝네.”
“네...”
혜민이는 상심이 큰 듯 보였다. 어떡하지? 나는 일단 동학년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하고 혜민이에게 말했다.
“혜민아. 지금은 청소시간이니까 일단 청소하고 5교시에 애들 다 들어오면 물어볼게.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자. 일단은 청소하고 주변 다시 찾아보고 있어. 사물함이나 가방 깊숙이 다 찾아봐. 알겠지?”
“네.”
혜민이가 청소를 하기위해 교실 뒤로 돌아가고 나는 서둘러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 문을 열자 양치를 하고 있던 선생님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 있냐는 부장님의 물음에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곤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조언을 구했다.
“일단 5교시 시작할 때 아이들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네. 그런데 언제 없어진 거지? 급식 시간에 없어진 건가?”
부장님의 말에 수진쌤이 입을 열었다.
“아까 누리쌤 전담시간에 잠깐 연구실 왔을 때 아냐? 그때 문도 열려 있었고.”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문을 닫고 갔는데 열려 있더라고요...”
내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작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제가 그때 연구실만 안 왔어도...”
“이미 지난 일 자책할 필요 없어. 교실 문 단속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실안에 cctv가 있는 것도 아니니... 참 부장님. 5층 복도에 cctv 있나요?”
“없을 거야. 아마... 소지품 검사하는 것도 학부모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어서 잘 생각해야 하고... 일단 누가 가져가는 것을 본 아이들이 있는지 다른 반들도 한 번 물어보자고.”
부장님의 말에 선생님들이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때 양치를 끝낸 이쌤이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런 건 거의 못 찾아. 재수 좋으면 누가 그랬는지 본 아이들이 있겠지만 내 교직경력에 도둑 찾은 적은 정말 손에 꼽는다고. 다들 자기가 소지품 잘 챙기게 하고, 많은 돈은 교사한테 맡기게 해.”
“예...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해요.”
별 다른 소득은 없었지만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연구실을 나왔다. 아이들이 모두 식사를 하러 급식실로 이동하는 시간도 교실이 잠깐 비긴 하지만 금방 다 먹고 올라오는 남자 아이들이 많아 그 시간은 물건을 훔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아까 교실 문도 열려 있었고, 내 감으로는 왠지 체육 전담시간이 맞을 것 같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실 문을 열자 나를 본 아이들이 그제야 하나 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교실 앞에 섰다. 아이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 중에 도둑이 있을까? 아니면 다른 반? 혹은 다른 학년? 도대체 누굴까. 혜민이는 상심했는지 책상에 엎드려 있다. 저 아이에겐 큰돈이겠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하면 좋을까.
수업이 모두 끝나고 텅 빈 교실에 혜민이와 나만 남아 있다.
“아까 아이들한테 물어봤지만 본 사람도 없다고 하고 가져갔다는 사람도 없고... 여기엔 cctv도 없어서 아마 찾긴 힘들 것 같아. 혜민아...”
좀 전까지만 해도 울고 있던 혜민이는 이제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네... 괜찮아요. 제가 잘 관리 못해서 그런 건데요 뭘...”
“혜민이 잘못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중요한 소지품은 선생님한테 맡겨. 선생님이 집에는 전화해줄게.”
혜민이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책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갔다. 나는 컴퓨터에 저장된 학생명부 파일을 열어 혜민이 어머님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다행이 어머님과 잘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가방에 넣으려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가방에서 없어진 것 같은 느낌. 나는 서둘러 가방 이곳 저곳을 뒤져 보았다. 지갑? 지갑... 맞다. 지갑이 없어졌다. 내가 자리를 비운 그 순간 없어진 것은 혜민이의 돈 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것 같은 얼얼함이 느껴진다. 정신없이 가방을 챙겨들고 연구실로 향했다.
“누리쌤. 우리 반 애들한테 물어봤는데도 본 사람은 없나봐.”
교실 환경정리를 위해 열심히 코팅된 시간표를 오리던 수진쌤이 잠시 고개를 들어 나에게 말했다. 그 옆에 앉아 코팅 기계에 코팅지를 넣던 이쌤도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반도.”
그리고 두 사람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수진쌤의 가위 소리만 사각 사각 연구실을 맴돌았다.
“쌤들... 제 지갑도 없어졌어요...”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뭐?”
가위질을 멈추고 수진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어디다 보관한거야?”
나를 힐끔 쳐다보며 묻는 이쌤의 말에 나는 눈물을 닦고 입을 열었다.
“컴퓨터 본체 넣는...”
“자물쇠로 잠갔어?”
“아뇨.”
“그렇게 보관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그렇게 대충 넣어두고 아이들한테 자기 소지품 잘 챙기라고 말할 자격이 있어?”
이쌤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다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밖에 말을 못하는 건가? 슬퍼서 울던 눈물이 화로 인한 눈물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이쌤이 지적한 내용이 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포트폴리오를 들고 들어오는 부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서 눈물이 멈춰주었으면 좋겠는데, 창피함에도 눈물이 계속 떨어진다. 부장님이 울고 있는 나를 보고 이유를 묻자 수진쌤은 내 대신 나의 상황을 전해 주었다.
“어쩌냐... 거기 얼마 들어있어? 카드는 혹시 모르니 빨리 정지시켜.”
“돈은 얼마 안 들어 있는데... 엄마가 취직 선물이라고 사주신 지갑이라서...”
수진쌤과 함께 소파에 앉으면서도 자꾸 눈물이 떨어졌다. 괜히 아이들이 모두 미워진다. 누군지 모를 범인이 우리 학교 학생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순수하다고만 믿었던 아이들에게 왠지 모를 배신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보관을 잘 했어야하는 내 탓인데도 괜히 화가 나고 누군지 모를 범인을 찾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휴지를 건네주며 수진쌤이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어쩌냐... 그런데 학교에서 도난 사고 빈번하게 발생해. 나도 몇 년 전에 털려 본 기억도 있고... 근데 어머님 선물이라니 마음이 좀 그렇네...”
“그러게. 나 선생. 근데 없어진 건 확실해? 좀 더 찾아봐... 같이 찾아주고 싶은데, 미안하지만 나는 부장회의가 있어서 가봐야겠다...”
포트폴리오를 연구실 책상 위에 올려둔 부장님은 곧 연구실을 나갔다. 이쌤은 별 말없이 코팅 기계를 끄고 밖으로 나갔다. 연구실에는 수진쌤과 나만 남아 있다.
“기운 내. 어쩌겠어. 이미 지나간 일. 앞으로 조심하는 수 밖에...”
“네... 감사합니다...”
그때 연구실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수진쌤이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네, 6학년 연구실입니다. 나누리 선생님이요? 잠시만요.”
수진쌤이 수화기를 나한테 건네 주었다.
“네, 나누립니다.”
“학습준비물 담당 김형식입니다. 아직 6학년만 학습준비물 파일을 안 보내주셔서요.”
“아, 수합은 다 됐습니다. 제가 곧 교실로 가서 메신저로 파일 보내드릴게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보내주세요. 저도 결재를 바로 올려야 돼서요.”
“네, 죄송합니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수진쌤을 바라보며 말했다.
“수진쌤 감사드려요. 저는 제출할 게 있어서 교실에 가볼게요.”
“응, 그래. 힘내.”
수진쌤이 다시 가위질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연구실 문을 닫고 나갔다. 교실로 돌아오자 마자 슬픈 기운이 싹 사라졌다. 업무 처리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꺼져 있던 모니터를 켜고 엑셀 프로그램을 열어 빠른 속도로 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 느낌이 들었다. 한숨이 입을 통해 빠져 나왔다. 고개를 들어 교실 옆에 걸린 시계를 본다. 벌써 4시다. 내일 수업준비도 못했는데... 그때 학교 메신저에서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소리가 들렸다.
‘학교 교육과정 파일 보내드립니다. 참고하셔서 학년 교육과정, 학급 교육과정을 작성하시고 다음 주 수요일까지 학년업무 선생님들이 수합하셔서 2-3로 파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연구부장님이 전체 선생님들한테 보낸 메시지였다. 하루하루 수업하고 정신없이 수합해서 제출하라는 일만 하기도 벅찬데 또 다른 업무관련 메시지가 계속 내 컴퓨터로 날아든다. 아직은 수업 준비해서 수업만 하기도 힘든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중간 중간에 계속 업무 관련 메시지가 컴퓨터로 날아들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독촉 메시지나 전화가 나를 찾았다. 자꾸 내가 유능하지 못한 교사같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교대에서는 거의 수업에 관련된 지식을 배웠는데, 막상 현장에 나와 보니 수업보다도 어려운 것이 학급경영, 각종 상담들, 그리고 업무였다. 나는 교무수첩을 열어 다음 주 수요일 칸에 학급, 학년 교육과정 제출이라고 적어 놓는다. 그리고 오늘 칸에 적힌 학습준비물 제출이라고 써 있는 글씨에 완료했다는 의미로 한 줄을 그어 놓았다.
‘안녕하세요? 환경담당입니다. 2주 뒤에 있을 학부모상담기간 전까지 각 학급의 환경미화를 마무리 지어주시기 바랍니다.’
또 다시 날아든 메시지. 환경미화? 고개를 들어 교실 뒷편을 바라본다. 교사들이 환경판이라고 부르는 사물함 위로 아직 휑하기만한 커다란 초록색 판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교무수첩을 다시 펼친다. 알맞은 칸을 찾아, 환경미화 끝낼 것, 이라고 적는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내일 수업준비를 못했다는 것이 다시 생각났다. 내일 수업이... 나는 재빨리 책상 위 유리에 끼워 놓은 시간표를 바라본다. 목요일 국, 수, 과, 사, 체, 음. 일단 국어 수업부터 준비하기로 하고 의자를 뒤로 밀어 교사용 책장에 꽂힌 국어 교과서와 지도서를 꺼내어 온다. 시계를 보니 벌써 4시 10분. 퇴근시간 까지 다 못하면 집으로 싸가지고 가야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펼친다.
똑똑.
지도서를 막 펼치려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라고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이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쌤은 천천히 나에게 걸어왔다. 그리고는 책상에 무언가를 툭, 던졌다. 뭐지? 내 지갑? 틀림없이 내 지갑이다. 나는 손으로 지갑을 들어 안을 확인했다.
“이거 어디서 찾으셨어요?”
“남자 화장실에 버려져 있더라. 오면서 대충 확인해보니 카드는 있는 것 같고. 현금만 빼간 것 같아. 그래도 다시 확인해봐.”
나는 미처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금세 몸을 휙 돌린 이쌤이 교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쌤을 따라 교실을 서둘러 나왔다. 이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일부러 찾은 거 아니라니까... 아, 오수진! 오수진쌤!”
이쌤은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는 앞에 걸어가던 수진쌤을 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뭐야, 고맙다고 인사를 했는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나는 잠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교실로 돌아왔다. 어쨌든 다행이다. 지갑을 열어 살펴보니 엄마랑 찍은 사진, 카드들은 다 제자리에 꽂혀 있었다. 현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가져간 아이는 그것만 필요했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지갑을 버리고 간 게 어디냐.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니 롤러코스터를 여러 번 탄 것 같이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 맞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지? 벌써 시계는 4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곧 나가야 되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지도서를 몇 권 집으로 싸가야 할 것 같다.
“일등!”
학급 교육과정철을 연구실 책상위에 툭, 내던지며 이쌤이 말했다. 방과 후 가위로 코팅된 사물함 이름표를 오리던 나와 수진쌤은 고개를 들어 이쌤을 바라보았다.
“대박. 벌써 다 했어? 이거 언제까지지?”
“수요일.”
“오늘 집에 가면 진짜 미친 듯이 해야겠다.”
수진쌤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가위질을 시작했다. 나도 다시 가위를 들어 이름표를 오리려고 하는데 연구실 문이 열리고 부장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선생 학급 교육과정 벌써 낸 거야?”
“네. 그럼 저는 이만.”
“아, 이 선생. 잠깐만.”
몸을 돌려 걸어가던 이쌤을 부장님이 돌려 세웠다.
“나 선생. 교육과정 했어?”
“아뇨. 아직... 앞에 학급교육목표랑 학급현황 작성은 다 했는데...”
“안 그래도 아까 연구부장님이 나 선생 신규니까 학년에서 잘 가르쳐 주라고 하더라고. 교육과정 시수 프로그램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를테니까... 이 선생이 알려주면 되겠다. 이 선생이 잘 알려줘.”
“네? 제가요?”
이쌤이 싫은 티를 잔뜩 내며 말했다. 아, 나도 싫은데... 나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수진쌤을 바라보았다. 수진쌤이 도와주면 좋을텐데...
“그래. 일등으로 내신 분이 알려줘야지 아직 교육과정 다 하지도 못한 우리가 알려줘?”
부장님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옆에 앉아 있는 수진쌤도 맞다는 듯이 고개를 마구 끄덕거렸다.
“누리쌤 미안해. 내가 알려주고 싶은데 지금 내 코가 석자라... 미안. 그래도 이 선생이 잘 알려 줄거야. 교육과정 이런 데에 빠삭한 분이셔! 그치?”
수진쌤이 일어나서 이쌤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쌤은 싫은 표정이었지만 달리 말할 핑계가 없었는지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다. 부장님도 수진쌤도, 그리고 나도 이쌤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허락을 바라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었다. 제발 안된다고 말해. 바쁘다고 말해...
“아... 할 수 없죠. 뭐. 학년 일은 학년에서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니...”
‘처리’라니. 내가 무슨 일이나 물건이 된 느낌이다. 이런 나의 기분은 알지 못한 채 수진쌤과 부장님은 잘됐다, 라는 말만 연발하다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연구실을 나갔다. 문을 닫으면서 수진쌤이 나에게 ‘화이팅!’이라는 입모양과 주먹을 불끈 쥐어 보여주었다.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제 연구실엔 나와 이쌤뿐. 그때 이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럼... 난 오후에 육상 지도 때문에 바쁘니까... 오늘 남아.”
“네?”
‘처리’로도 모자라 이젠 남으란다. 예전 학창시절의 나머지 공부 그런 느낌인가.
“야근 몰라 야근? 시간외 근무. 퇴근 후에 남으라고.”
“내일 알려주셔도 되는데...”
‘근무시간에’,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난 이번 주 내내 오후 시간에 바빠. 그렇다고 애들 있을 때 가르쳐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이거 내일 모레까지야. 알지?”
그건 그렇지만, 이라고 작게 읊조리는 내 말을 못 들었는지 이쌤은 개의치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싫으면 다른 사람한테 배우든지...”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남을게요.”
나는 서둘러 대답을 했다. 다들 자기 일만으로도 바쁜 시기에 나를 알려줄 만한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 그럼 다섯 시에 우리 교실로.”
이쌤은 그렇게 말하고 연구실을 나갔다. 나는 소파로 풀썩 주저앉았다. 뭐, 어차피 저녁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집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니 깔끔하게 배우고 가자고 마음먹는다. 좋게 생각하자. 어쨌든 나를 가르쳐 주는 거니까. 그래. 신규가 배워야지. 모르는 게 산더미인데. 일부러 시간 내서 날 알려주는 거잖아? 좋게 생각하자. 나누리... 좋게...
가위를 들어 다시 시간표를 자르기 시작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선을 오린다. 그러다 끝부분에서 가위가 폭주하고 만다. 코팅지 끝이 확 잘려 나간다.
아, 다 좋은데 왜 하필 이쌤이냐고!
학교를 빠져나가는 선생님들의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짐을 챙겼다. 밖에 선생님들은 뭐가 기분이 좋은 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며 복도를 지나간다. 그래 다들 퇴근하니 얼마나 좋겠어. 나는 조금이라도 늦게 가볼까 싶어 천천히 짐을 챙긴다. 오늘따라 컴퓨터도 금방 꺼지는 것 같다. 뭐를 챙겨야 하더라. 지도서 가방에 넣고... 교무수첩을 열어 살펴보고 있는데 교실 전화가 크게 울린다.
“아, 깜짝이야. 네. 6학년 2반 나누리...”
“나누리. 너 왜 안와?”
이쌤이다.
“네, 금방 갈게요. 죄송합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교실 정리를 빨리 끝내고 이쌤 교실로 향했다.
똑똑.
노크가 끝남과 동시에 안에서 짧게 네, 라는 말이 들리고 나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저기 앉아.”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던 이쌤이 나를 바라보며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이쌤이 지정해준 TV앞 세 번째 줄에 있는 학생 책상에 앉았다.
“자 이거 받아.”
그렇게 말한 이쌤은 소보로 빵과 흰 우유 한 개를 나에게 던졌다. 정신없이 날아오는 두 개를 연달아 잡았다.
“오, 나이스 캐치! 나름 순발력은 있는데? 오늘 육상부 간식 주고 남은 거야. 먹으면서 배우라고. 여기서 우리가 뭐 시켜먹기도 애매하잖아?”
“네. 그건 그렇죠.”
내가 서둘러 대답했다. 이쌤 말은 맞는 말이었다. 안 그래도 어색한 사이에 밥 먹고 하자고 할까봐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학생 간식마냥 빵과 우유라니. 한편 웃기기도 했다.
“내가 프로그램 열어서 설명해줄테니까 TV보면서 배워. 아, 이런 건 강의료 받아야 되는 건데.”
“아, 제가 언제 한 번 밥 살게요. 선생님.”
“그러든지. 일단 총 시수를 알아야 해. 총 시수라는 게 일년 동안 니가 가르쳐야 하는 수업 시수야. 여기 학교 교육과정에 6학년 부분 찾아보면 국어, 수학... 이런 식으로 총 시수 써 있지? 그 시수에 맞게 작성하면 되는데...”
나는 가져온 학교 교육과정과 학급 교육과정의 프린트물을 번갈아 바라보며 강의를 듣는다.
“어차피 6학년 총시수는 우리 네 반이 다 똑같아야 하니까. 나선생이 다시 짤 필요는 없고... 시간표 짜논 거 있지? 그거에 맞게 잘 배열하면 돼. 프로그램에서 해 보자면...”
이쌤은 프로그램을 열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사람 생각보다 설명을 참 잘 하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말을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강의하고 있었다.
“필기 안 해?”
“아, 네. 네. 적고 있어요.”
나는 서둘러 프린트 물로 시선을 떨구었다. 내가 빤히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을 들켰나보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얼굴이 달아오른다.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 사이에도 이쌤은 학생이 한 명 뿐인 강의를 열정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가자.”
이쌤의 말에 나는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저 때문에 퇴근 늦게 하시고 죄송합니다.”
“감사하고 죄송하고... 다음에 밥 얻어먹을 이유는 충분하네.”
“아, 네. 다음에...”
“불 꺼야하니 먼저 나가.”
나는 이쌤의 말에 서둘러 의자를 집어넣고 교실을 나왔다. 이쌤도 불을 끄고 교실을 나왔고 우리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화가 없어서인지 발걸음 소리만 복도에 크게 울렸다. 아무도 없는 학교는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다. 커다란 공간에 불은 다 꺼져 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쌤에게 바짝 붙어 섰다.
“무섭냐?”
“아, 네. 조금요... 이런 시간에 학교에서 있어본 적이 없어서...”
“저 쪽이 과학실인데... 괜히 이럴 땐 사람 뼈 모형이 막 떠오르고 그렇지?”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 한껏 더 오싹해진 나는 이쌤과 멀어지지 않으려고 걸음을 맞추어 걸었다.
“아직 안 갔네?”
“으악!”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이쌤의 팔을 붙잡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 네. 일이 남아서요.”
이쌤은 넘어질 뻔한 나를 붙잡아주며 누군가에게 대답을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얼굴을 살펴보니 학교에서 숙직하시는 주무관님이었다.
“그럼 안녕히들 가셔.”
주무관님은 우리를 스쳐 윗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그제야 한숨을 쉬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겁이 많아서 어디 시간외 근무 하겠어?”
이쌤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놀리지 마세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말하는데도 여전히 심장이 두근 거렸다.
“저기... 그런데 이건 좀 놓지?”
이쌤이 쳐다보는 곳을 보니 여전히 이쌤의 팔을 잡고 있는 내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아, 네. 네...”
나는 서둘러 손을 이쌤의 팔에서 떼어냈다. 멋쩍어진 나는 괜히 머리를 매만졌다. 머리를 쓸어 넘기자 가슴께에 있는 머리칼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얼른 가자.”
이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다시 걸음을 옮겼고, 나는 학교 건물을 빠져 나갈 때까지 바짝 이쌤 곁에 붙어 있기로 했다. 지금은 싫은 것보다 나의 안전이 우선이다.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신발을 갈아 신고 건물을 나오니 운동장에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밤의 학교는 이런 모습이구나. 삼삼오오 트랙을 돌며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배드민턴을 치는 어르신들. 학교 건물 안에서의 오싹한 모습대신 정감 있는 풍경이 내 곁에 다가왔다. 은은한 가로등 불빛에 정취가 더해진다. 어느새 우리는 교문 앞에 다다랐다.
“난 이쪽 편으로 가는데.”
“아, 저는 반대쪽으로 가요. 형신아파트.”
“그래, 그럼. 잘 가.”
“아, 네. 오늘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자 이미 걸음을 옮기고 있는 이쌤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데려다 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진짜 엄청 빨리 걸어가시네. 드디어 해방이라는 듯이. 괜히 심통이 난 나는 가방을 고쳐 매고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