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신규교사 나누리_3월 마지막

by 릴리포레relifore

도난 사건.

이제는 돈을 가져간 아이를 알아내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영상 속에서 오늘 만원을 잃어버린 그 아이는 아직 돈이 없어진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직까지 나한테 이야기를 안 한 거겠지. 혜민이 말고 또 한명의 돈이 없어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 내 지갑 속 돈도... 이건 불확실하지만 괜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심이 이어진다.

앞으로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나는 경찰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죄를 물어 벌을 주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란 소리다. 그 아이가 잘못을 인정하게 해야 하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아이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런 책임이 있는 것이 바로 교사니까. 어떻게 지도해야 돈을 잃어버린 아이를 위로하고 돈을 가져간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동환이가 이런 버릇을 고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양쪽 모두 상처를 최소화하고 타인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은 채 즐겁게 학급 생활을 하게 만들 수 있을까. 머릿속이 금세 복잡해졌다.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전화상담이 남아 있었지. 그런 생각이 들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동환이 담당 교사 안지환입니다.”

그랬다. 상담주간의 마지막에 동환이의 전화상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동환이는 근처 보육시설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다. 키가 작고 왜소한 동환이는 체육시간을 무척 좋아하고, 평소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즐기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불쑥불쑥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등 감정 조절을 잘 하지 못했다. 3월 초에 본 진단평가 성적도 좋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육시설의 선생님과 나누었다. 물론 그 선생님도 다 아는 이야기였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아까 내가 본 영상 속 동환이의 모습을 이야기 해야 되는 것일까.

“평소에 학교에서 말썽 부리지는 않나요? 저한테 말씀하실 것 있으시면 하세요. 제가 집에서 잘 지도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보육시설을 집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동환이에게는 집이 맞는데, 나는 문득 느껴지는 이질감에 마음이 찌릿 아파왔다.

“아... 감정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것 말고는 딱히...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잘 지도하겠습니다.”

“네... 그럼 안녕히...”

“저, 선생님.”

전화가 끊길 것 같은 순간, 나는 동환이 담당 선생님을 붙잡았다.

“네?”
“동환이 학교 스쿨버스 타고 하교하죠?”

“네. 세시 차요.”
“그걸 네시로 미루고 저랑 방과후에 공부하다가 가면 안될까요?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마음에 걸려서요...”

“원에서도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선생님과 일대일 수업이 더 좋겠죠. 그렇게 신경 써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합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앞으로 일찍 가야되는 날은 저한테 미리 연락주시면 원래 시간에 차 태워 보낼게요.”

선생님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곧 전화를 끊었다. 나는 끊긴 전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나는 동환이 ‘집’의 선생님한테 그 일을 말하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늘 교육은 가정과 학교 모두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았나? 그러면서 혼자 어떻게 처리하려고? 내가 결정한 일이지만 내 속의 또 하나의 나는 나에게 책임을 묻고 있었다.


동환이의 담당 선생님한테 말하지 못한 것처럼 나는 결국 혜민이 어머니한테도, 또 다른 한명의 어머니한테도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교사인 내가 변변한 울타리가 없는 동환이의 처지를 알고 있기에 그 아이를 궁지로 내몰 수는 없다. 결국 내가 잘 지도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교사로서 최고의 선택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일 일단 동환이랑 상담을 해보자. 이야기를 나누는 게 먼저일 것이다. 그 아이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먼저겠지. 지금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은 그 뒤로 잠시 미루기로 했다.


이제 상담주간의 모든 상담이 다 끝났다. 교실 정리를 다 마친 나는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와 문을 닫았다. 어두운 복도를 걸어 신발장으로 내려갔다. 이쌤과의 야근 후에도 여러 번 혼자 늦은 학교에 남아서인지 지난번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뭔가 일을 열심히 하고 늦게 퇴근한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산재해 있지만 이번 상담주간만 생각했을 때는 내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신규교사라서 서툴긴 했지만 그래도 잘했어. 누리야 잘했어. 나는 내 어깨를 스스로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는 계단을 다 내려가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는데, 갑자기 내 머리 위로 손이 불쑥 나타났다.


“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아, 깜짝이야. 나야, 나.”

벌벌 떨리는 몸을 돌려세워 소리가 나는 곳을 살펴보니 이쌤이 내 바로 옆 칸에서 신발을 꺼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

“아, 저는 학교에 저만 있는 줄 알고... 교실에 불이 다 꺼져 있길래.”

“난 상담마치고 복사할 일이 있어서 연구실에 있었어. 그건 그렇고 뭘 혼자 그렇게 어깨를 토닥여? 머리도 쓰다듬고... 하하하. 완전 모노드라마 찍는 줄 알았다.”

어이없다는 듯이 이쌤이 웃었다. 그런데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 웃는 거 처음 보는 건가? 어슴프레하게 보이는 이쌤의 웃는 모습은 무언가 낯설고 새로운 느낌이었다. 괜히 멍하니 쳐다보게 되었다.


“뭐해? 안 가?”

“아, 네. 가요.”

나는 재빨리 신발을 갈아신고 이쌤 뒤를 따라갔다.

“부장님하고 수진이는 칼퇴근 했던데... 우리만 야근 했구나.”

이쌤은 오수진쌤을 수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는 ‘나선생’, 화날 때는 ‘나누리’ 그렇게 부르면서. 둘이 친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심통이 났다.


“나는 그럼 이쪽으로 간다.”

서로 말 없이 운동장을 지나와 이쌤은 자신의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걸어가는 이쌤의 뒷모습에 대고 나는 말없이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나도 우리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혼자 걸어가는 길이 괜히 쓸쓸하게 느껴진다. 어두워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건가. 길에 나의 그림자만 길게 드리워진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번호를 보니 우리 반 소정이 어머니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함과 동시에 교사는 퇴근해도 퇴근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핸드폰 시계는 벌써 8시가 가까워 옴을 알려주고 있었다.

“네. 소정이 어머님.”

“선생님. 늦게 죄송합니다. 제가 아까 상담을 하고 집에 들어갔고, 소정이는 학원갔다 오느라고 이제 만났거든요. 들어보니 오늘 만원이 없어졌다고 하네요. 물어보니 선생님께는 아직 말을 못했다고 하네요.”

아, 그 영상 속의 지갑 주인은 소정이였구나.

“제가 엄마들 단톡방에 얘기를 했더니 이미 그런 사건이 있었더라고요. 이거 심각한 것 아닌가요? 범인을 잡아야 할 거 같은데요. 지금 엄마들도 다들 걱정하고 있고...”

소정이 어머니는 자신의 의견과 다른 어머니들의 의견을 모아 전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는 모르고 있는 일이 벌써 어머니들 사이에는 다 퍼진 내용이라니. 예전부터 내 일거수 일투족이 실시간 중계되고 있었겠구나. 내가 알고 있는 일도, 내가 모르고 있는 일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어머님 걱정 많으셨죠? 죄송합니다.”

일단은 소정이 어머니의 기분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가장 상심한 사람은 소정이와 소정이 가족일테니.

“제가 앞으로 지도 잘 하겠습니다. 가져간 아이도 최선을 다해 찾아보고요... 내일 소정이한테도 잘 이야기 할게요.”

“네, 선생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전화는 곧 끊어졌다. 나름대로는 부드러운 끝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와 전화통화를 끝내고 소정이 어머니가 학부모 단톡방에 뭐라고 올렸을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방금 전의 통화 내용도 재방송으로 중계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화장실 나오면서 뒤처리를 못한 것처럼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소정이와 이야기를 나눈 뒤 오후에는 동환이를 교실에 남겼다. 하교하면서 아이들이 동환이는 왜 남는지 물었지만 나는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고, 동환이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자신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 아이가 문을 닫고 교실을 나가자 나는 동환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랬니?”

“네?”

동환이는 표정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지갑에서 돈을 가져간 거 나쁜 짓 인건 알고 있지?”

“저 아닌데요.”

동환이의 입에서 당당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태연할 수 있지? 잠시 나의 생각을 가다듬는다. 아마도 동환이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뻔뻔한 얼굴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TV를 켜고 영상을 실행시켰다. 그리고는 가만히 동환이의 표정을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이 일그러진 동환이는 벌떡 일어나 교실 앞으로 나와 재빨리 TV의 전원버튼을 껐다. 그 아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있었다.


“다... 말했어요?”

확실한 증거를 눈 앞에 들이밀었는데도 이 아이는 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누구한테?”
“애들한테요...”

지금 이 아이에겐 아이들의 시선이 가장 중요한 모양이다.

“아니.”

나는 동환이에게 걸어갔다.

“선생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 너희 선생님한테도... 애들한테도... 그 애들의 부모님한테도...”

그제야 동환이가 마음이 놓이는 지 작게 한숨을 뱉어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영상을 계속 보관할 생각이야. 앞으로 니가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다시 영상이 누구에게도 보여지는 일은 없을거야. 그리고 곧 삭제 하겠지. 그렇지만 같은 일이 또 반복된다면 그때는 여러 사람들한테 보여질 수도 있어.”

“다시... 안 해요.”

힘겹게 동환이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그랬니?”

동환이는 나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필요해서요... 다른 애들처럼 뭐 사먹고, 게임도 하고 싶어서...”

생각보다 순순히 입이 열렸다.

“그랬구나. 일단 그돈으로 나쁜짓을 한 건 아니라니 다행이고. 그렇지만 이건 명백히 잘못이야. 알고 있지?”

“네.”

“앞으론 안 그럴거지?”

“네...”

“그래. 일단 그럼 선생님는 너를 믿고 한번은 넘어가 줄게.”

“네...”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아까처럼 동환이에게서는 고맙습니다, 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동환이에게 보통의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하면 안 될 것 같다. 그저 이 정도로 나오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조건이 있어.”

“네?”

“앞으로 하교하고 나랑 남아서 공부하고 가.”

“저 집에 가는 차 시간 때문에...”

싫다는 말 대신 다른 핑계를 찾았지만 동환이의 얼굴에 싫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건 선생님이 다 확인했어. 너 4시차 타고 가도 되잖아. 너희 선생님하고도 이야기했고.”

“그렇지만 다른 애들한테 쪽팔린단 말이에요.”
“다른 애들한테는 선생님이 잘 이야기 할거니까 걱정마.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잘 얘기해줄게. 선생님이 일부러 남기는 거 아니라고.”

동환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교사용 책장으로 가 교사용으로 나온 문제집을 꺼냈다. 그리고 동환이에게 건넸다.

“이거 선생님 건데... 너 줄게. 그러니까 매일매일 배운 부분 풀어서 검사 받아. 다른 애들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가서 공부하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해. 알겠지? 오늘부터 니 자리에 앉아서 풀고 가. 시간 되는 만큼 풀고 검사받고 가.”

“네.”


동환이는 문제집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곧 필통에서 연필을 꺼내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동환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누가 그랬던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보육원에서 지내는 동환이의 생활과 감정을 나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동환이는 자신한테 가혹하고 힘겨운 세상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 마음이 아려왔다.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문제를 풀고 있는 동환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평소의 옷차림, 갖고 있는 학용품, 다 떨어져가는 실내화. 그런 것들만 보아도 동환이의 생활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가끔 철없이만 보이는 다른 아이들의 눈빛과 제 또래보다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 동환이의 눈빛은 가끔 극명한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교사의 입장에서 동환이를 도와줄 수 있을까.


몇 주 지켜본 동환이는 머리가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누적된 교육 결손으로 인해 낮아진 성적과 별개로 똘똘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조금씩이라도 방과 후에 가르친다면 성적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동환이가 저지른 나쁜 행동에 대해 벌주는 것보다 이쪽이 더 동환이를 좋게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저렇게 남겨서 가끔 대화도 나누고 한다면 동환이의 마음이 나한테 좀 더 열리지 않을까. 많은 것에 다친 마음이 조금씩 치유가 될 수는 없을까.


“선생님 이만큼 풀었어요.”

“가져와 봐.”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확인받고 싶어 하는 동환이를 내 책상으로 불렀다. 동환이의 문제집을 받아들고 채점을 해보니 열 개중에 두 문제만 동그라미를 칠 수 있었다.


“6학년 수학 문제집은 어렵지? 내일은 선생님이 다른 학년에서 문제집을 구해 올테니까 천천히 올라오자.”

“그럼 오늘은 가도 돼요?”

“너 차 시간까지 좀 남았잖아.”

“운동장에서 축구하면 돼요.”

동환이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러고 보니 체육시간에 두각을 나타낸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래. 오늘은 첫날이니까 그럼 여기까지만 하자. 축구하다가 차 놓치지 말고 운동장에 커다란 시계 잘 보면서 체크해. 알았지?”

“네. 안녕히 계세요!”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른 동작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간 동환이는 가방을 정리하고 후다닥 교실을 빠져 나갔다. 나는 오래도록 동환이가 나간 자리를 바라 보았다.



다음 날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과 공부를 하고 싶은 친구들이나 하교 후 방과 후 수업, 학원 갈 시간까지 시간이 남는 친구들 중 희망자는 교실에 남아도 된다는 말을 전했다. 대부분 고개를 가로 저으며 싫다고 했지만 여자아이들 중 몇몇은 ‘선생님이랑 놀아도 돼요?’이런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긍정적인 뜻을 비췄다.


그리고나서 일주일 간 지켜보니 하루에 두 명, 혹은 세 명 남아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동환이는 반대로 내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이에 교실을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5일 동안 2번이나 공부했을까? 알림장 검사 후에 계속 동환이를 주시하지 않으면 우르르 아이들이 교실을 나가는 동안에 같이 나가버리곤 했다. 동환이의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 보니 매일 4시 차를 탄다고는 했다. 그럼 어디로 가는걸까. 동환이가 걱정된 나는 학교 도서관과 컴퓨터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동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반을 가보아도 동환이의 모습은 없었다. 그러다 찾은 곳은 결국 운동장이었다. 창을 통해 내다보니 동환이는 환한 얼굴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교실 안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생기 있는 표정으로. 그래, 뭐 어떠랴.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저렇게 밝은 표정이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동환이는 그 뒤로 남의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내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친구들과 다투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등의 행동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이렇게 나쁜 행동을 조금씩 고치고,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만 있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 더 바라는 것은 없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도 있듯이 동환이를 비롯한 모든 우리 반 아이들이 그저 즐겁게만 지낼 수 있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삼월의 마지막 불금인데 동학년 회식 어때요?”

시작은 점심시간 수진쌤의 제안이었다. 다들 동의했고(막내인 나는 선택권이 없었지만) 그래서 지금 우리는 앞에 숯불이 놓인 테이블에 둥글게 앉아 있다. 그 위에 양념된 갈매기살이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고, 내 빈 술 잔에는 부장님이 맥주를 따라주었다.


“건배사는 막내가 해.”

부장님의 말이 끝나자 마자 다들 내 눈만 바라보고 있어서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지만,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팔 떨어진다.”

이쌤의 한 마디가 내 머릿속 말의 스위치라도 켠 듯 입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 그럼... 건배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못하겠지만... 3월 한 달 동안 동학년 선생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규라서 수업도 힘들고... 업무도 힘들고... 학부모 상담은 더더욱 힘들지만 선배님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게 건배사냐, 감상문이냐.”

이쌤의 핀잔에 수진쌤이 입을 열었다.

“그럼... 건배사는 일단... 새내기 나누리 파이팅 하죠. 제가 나누리 하면, 파이팅 하시는 걸로.”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고, 수진쌤이 내 이름을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들 파이팅!, 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잠시 후 맥주가 목을 통해 흘러 내려갔다. 따가웠지만 시원했다. 계속 무언가 목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야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1년 중에 가장 바쁘고 어려운 게 3월이야. 3월 무사히 보낸 것 축하해.”
부장님이 내 앞에 놓인 빈 잔에 다시 맥주를 따랐다.

“감사합니다.”

나도 부장님 잔에 술을 따라 드렸다.

“내 잔도.”

웃으면서 수진쌤이 잔을 내 앞에 갖다 주어 거기에도 따랐다. 그러자 불쑥 이쌤의 술잔도 내 눈 앞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이쌤의 잔에도 맥주를 따라 주었다. 이번에는 수진쌤이 6학년을 위하여, 라고 건배사를 외치고 우리는 다시 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다들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3월 내내 집으로 일을 싸갔던 나는 일을 책상 위에 펼쳐 놓고, 저녁을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했기 때문이었다. 아침도 밥보다는 잠을 택하는 날들이 많았으니 거의 거르다시피 했고. 그나마 점심으로 영양소에 맞추어 골고루 나오는 급식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제대로 된 영양섭취일 것이다. 물론 몇 백명의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시장통 같은 곳에서 먹는데다가 급식 지도도 업무 중의 하나기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알 수 없는 때가 많지만.


“누리쌤. 고기 엄청 좋아하네?”
수진쌤이 내 앞에 고기를 여러 개 밀어 주며 말했다.

“하하하. 그랬나요?”
내가 너무 눈치 없이 고기를 먹어댔나 싶어서 젓가락을 슬며시 내려 놓았다.


“자취생이 그렇지 뭐. 고깃집은 혼자서 먹으러 올 수도 없고... 그런데 우리 학교에 또래 선생님들하고는 친해졌어?”
부장님의 물음에 나는 마시던 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아니요. 그때 전체 회식 때 조금 말 섞어 본 정도요? 계속 동학년 선생님들하고만 보니 만날 기회가 없더라고요.”

“맞어. 같은 학년 아니면 학교에서 볼 일이 거의 없지. 전체 회의 할 때 나 얼굴 보게 되고.”

“네, 그런 것 같아요.”

“눈치 보지 말고 많이 먹어. 그리고 오늘 내가 내는 거야. 다들 많이 먹어. 여기요! 2인분 더 주세요.”

부장님이 다시 주문을 했고, 수진쌤과 이쌤과 나는 다시 고기를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맥주였다가 소맥이었다가 하는 술을 서로의 잔에 따라주고, 비워지고 하는 동안에 우리는 돌아가며 3월 한달 간 자신의 반에서, 혹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수진쌤은 여자아이들의 왕따 문제를 이야기했고, 정석쌤은 체육 업무에 관한 고충을, 그리고 부장님은 반에 자주 항의를 하는 학부모의 이야기를 했다.


“저는 선생님들에 비하면 업무도 없는데도 매일 허덕이는 것 같고... 학부모도 어렵고... 또 이번에 도난사고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참... 누가 그랬는 지 잡았어?”

수진쌤의 물음에 나는 선생님들께 있었던 일을 대충 요약해서 설명해 드렸다.

“그랬구나... 그래도 처리 잘 했네. 신규라 어려웠을 텐데...”

“여러 선생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아직 확실히 좋아졌는지 알 수가 없어서... 좀 더 지켜 봐야죠.”

“그래. 내가 얘네들 연임해서 잘 알지만 동환이 예전부터 말이 많이 나오던 아이였어. 드러나게 말썽은 많이 안 부리지만 마음을 주지 않아서 전 담임 선생님도 힘들다고 했다니까. 나이도 어리고 예쁜 누리쌤이 많이 사랑해주고 도와주면 좋아질거야.”

부장님이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술을 따라주었다. 나는 선생님들의 위로를 들으며 술을 입으로 넘겼다. 여러 잔을 마시니 이제 정말 얼큰하게 술이 오르고 있는 기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짜 누리쌤 여러 가지로 일 많았다. 고생 많았네.”

“아이들이랑은 이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학부모님들은 저를 아직 못 미더워하시는 것 같아서 매번 뭐 할 때마다 눈치 보게 돼요.”
“왜? 무슨 말이라도 들었어?”
부장님의 물음에 나는 학부모 관련된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들의 항의와 카카오톡 관련 이야기들.


“신규라서 그래. 다들 도와줄 생각은 안하고 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부장님이 목소리를 높였다. 술이 취해서 그런지 평소의 부장님과 다른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좀 더 중간입장에서 객관적인 위로를 해주던 부장님이었는데. 그래도 내 편에서 나를 위로해주니 고맙게 느껴졌다.


“나도 어려웠다니까. 물론 지금도 어렵지만... 말 한마디라도 좋게 해주고 위로해주면 내가 더 애들한테 잘할텐데... 괜히 학부모한테 한 소리 들으면 그 아이 한 동안 되게 밉고 그렇잖아. 사람이니까...... 그래도 교사니까 티는 못내고.”

수진쌤의 말에 맞아맞아, 라고 맞장구 치며 웃는 부장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선생님들이 공감해주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니가 제대로 처신을 잘 못한 것도 있을 수 있으니 잘 생각해봐. 학부모들이 아무한테나 항의하고 괜히 불신하고 하겠어? 그럴만한 일이...”

“님아, 분위기 파악 좀. 너는 쌈이나 드셔.”

기분이 나빠지려는 찰나, 때마침 눈치 빠른 수진쌤이 상추쌈을 싸서 이쌤의 입을 막아 주었다. 고마운 수진쌤. 그리고 늘 틀에 박힌 말만 하는 이쌤. 백번 맞는 말이지만 누가 그걸 모를까봐? 나도 내 잘못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고... 그냥 같은 교사들 사이에서 위로를 받고 싶었다는 것 뿐이었는데. 결국 내 편은 들어주기 싫다는 거겠지. 나는 더 취하지 않으려고 입에 고기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부장님은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 미안해... 다들... 난 애들 때문에 이제 가 봐야 될 것 같아. 내가 계산하고 갈게.”

“저희도 그럼 2차로 자리 옮기죠. 뭐.”

이쌤의 말에 우리는 후다닥 자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부장님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고 우리는 옆 건물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왜 갑자기 쌀쌀하지?”

수진쌤이 양손으로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진쌤이 얇게 입은 것 같다. 블라우스 위에 걸친 하늘색 린넨 자켓이 얇아 보였다.

“이거나 걸치고 있든가, 그럼.”

이쌤은 입고 있던 검은색 자켓을 벗어서 수진쌤에게 툭, 던졌다. 그리고는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수진쌤은 이쌤이 건네준 자켓을 어깨위에 걸쳤다. 순간 나는 예전부터 궁금했던 물음이 하나 떠올랐다.


“수진쌤... 궁금한게 있는데요... 혹시 정석쌤이랑 사귀세요?”

술 취한 건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물어보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입에서 모든 말이 흘러나온 뒤였다. 수진쌤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내가 걔랑? 말도 안돼. 누리쌤 우리가 그렇게 보여? 하하하.”

그때 마침 정석쌤이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왔고, 수진쌤은 정석쌤을 장난스럽게 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우리 둘이 사귀냐고 묻는데... 너랑 내가? 말도 안되지? 하하하.”

“그냥 저는 두 분이 친하시길래 혹시나 제가 실수할까봐...”

나를 바라보는 이쌤의 차가운 눈빛에 술이 확 깨는 느낌이 들었다.


“미쳤냐? 내가... 여기요! 맥주 좀 주세요. 500cc 세 잔. 안주는 이걸로.”

정석쌤은 메뉴판에서 안주 세트 메뉴를 가리키며 직원에게 말했고, 곧 직원이 맥주를 세 잔 가져와 우리 앞에 한 잔씩 내려놓았다.

“얘는 요즘 열심히 소개팅 하고 있을 걸? 나는 이렇게 개방적이고 틀이 없으신 분은 관심 없어. 부담스러워.”

“누가 할 소리를! 나도 이정석 친구로는 좋지만 남친으로는 안 맞아. 너~무 틀에 박혀 계셔서. 완전 평소 생활도 이 선생, 딱 그래. 너무 바른 생활 사나이라 재미없어. 그거 알아? 이선생 부모님도 다 교사이신거? 물론 이정석과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하신 분들이시지만, 어쨌든 교사부모 밑에 또 교사라... 말만 해도 너무 틀에 박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니? 그래서 이름도 수학의 정석의 정석이잖어.”

수진쌤의 말에 이쌤의 얼굴로 시선이 옮겨 갔다. 그러자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이쌤이 입을 열었다.


“자, 원치 않는 제 TMI는 이쯤에서 됐고요... 오선생 최근 소개팅 이야기나 하시죠?”

그러자 수진쌤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화제를 좀 바꿔볼까. 나는 요즘 한창 소개팅 중이거든. 근데 소개팅 해봐도 별 거 없더라... 소개팅이 내 스타일이 아닌지... 조건 보고 얼굴 보는 게 여러 가지로 불편해. 여교사라고 좋아하면서 나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얘기 들어보면 그 사람들이 원하는 여교사상이 딱 있더라고. 조선시대에나 나올 법한 여자를 찾는 사람도 있고... 퇴근 시간 정확하고 육아휴직 이런 제도 잘 되어 있으니 애 잘 키우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수진쌤은 자신의 앞에 놓인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지난주에 만난 남자는 내가 교육이라는 게 단기간에 드러나는 성과가 없다고 했더니 뭐라더라... 급식줄을 효과적으로 세워서 점심시간을 단축시키는 프로젝트라도 해보래... 그런식으로 단기간의 작은 목표들를 세워서 진행하면 좋지 않겠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더라. 그러면 성과가 눈에 보여서 흥미 있을 거라고... 교육이라는 특수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외부에 몇 명이나 될까 싶다. 우리는 봄 되면 입학식 좀 있으면 체험학습, 운동회, 방학, 학예회, 시험, 방학, 종업식, 졸업... 이런 것들을 매년 반복하면서 지내잖아? 전 학년도든, 새 학년도든 하는 일은 사실 비슷하다고... 그 속에서 맡는 애들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게 누리쌤은 신규라서 아직 모르겠지만 십 년 정도 되면 매너리즘을 불러오기도 하거든. 내가 맡고 있는 일년 동안 단기 성과가 눈에 보이는 건 거의 없지... 일년 뒤에 애들하고 헤어질때도 드러나는 성과도 거의 없고... 그냥 시원섭섭함을 느끼는 거야... ‘우와, 내가 올해도 해냈구나!’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게 아니고... 안 그러냐? 이선생?”


수진쌤이 이쌤의 어깨를 툭치며 건배를 유도했고, 이쌤은 말없이 위로하듯 술잔을 부딪혔다. 곧 나에게도 차례가 돌아와 나도 수진쌤과 이쌤 잔에 건배를 했다. 목을 통해 술이 넘어 가고, 다시 정신이 몽롱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앞을 바라보니 두 선생님 얼굴도 빨갛게 변해 있었다. 수진쌤이 좀 더 빨갛고, 이쌤이 좀 덜 한 차이는 있었지만.


“저는 아직 하루, 하루 보내는 것에 급급해서... 그런 어려움까진 미처 몰랐네요.”

“모든 직업이 다 애로사항은 있겠지만... 다른 직업군이 교사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긴 하지. 마냥 어린 애들 다루니까 쉬워 보이고... 애들 하교하면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더라? 밖에서는 모르지만 근무중에도 각자 맡은 업무라는 게 있고, 또 퇴근해서도 계속 전화가 울려대는 애로사항이 있고... 그러는데.”

수진쌤의 말이 끝나자 이쌤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사실 엄격하게 우리를 지켜보는 시선들도 있지... 마냥 이런 곳에 와서 큰 소리로 고충을 얘기할 수 없을 때가 많거든. 옆 테이블 신경 쓰여서.”

“맞아. 그리고 여 선생일 때 더 심하게 기준을 세워서 본다고... 이런데서 술먹고 밖에서 뻗어 있는 걸 학부모라도 봐봐. 내일 심하게 얼굴 따가울거야. 아니다. 요샌 그 전에 SNS가 시끄럽겠지?”

수진쌤의 말에 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근처에서 나를 누군가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안심해. 지금은 우리 아는 사람 없는 것 같아. 하하하.”

수진쌤이 장난치듯 웃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너무 교직의 안 좋은 얘기만 해 준건가?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좋게 받아들여줘.”

수진쌤이 말을 마치고 술잔을 들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건배를 했다. 그리고 목으로 넘기려는데 속에서 술이 다시 올라오려고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서둘러 입을 가리고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는 얼마 전의 전체 회식에서처럼 속에 있던 것을 모두 게워냈다. 변기의 물을 내리고 나와 물로 입 안을 헹궜다. 거울을 보니 눈까지 빨걔진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웬일이니. 맥주 몇 잔에 이렇게 되다니. 물로 입 주변과 손을 씻고, 페이퍼 타올을 몇 장 뽑아 닦아냈다. 그리고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괜찮아?”

자리로 돌아가니 수진쌤이 걱정된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 보았다. 이쌤은 자리에 없었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괜찮아요. 오늘 얼마 안 마신 것 같은데...”

“아냐, 우리 소맥도 마시고 꽤 마셨어. 그리고 술이 잘 안 받을때도 있지 뭐. 이제 그만 마셔. 우리는 술 강요, 그런 거 안해. 술 아까워서... 하하하.”

“이쌤은 어디 가셨어요?”

“뭐 살 거 있다고 편의점에 가시던데? 사석이니까 개인적 질문 해도 되지? 누리쌤은 남친 없다고 했지?”

“네.”
“꽃다운 나이에... 얼른 만들어. 참, 그리고... 이정석도 괜찮아.”

“네?”

갑자기 술이 확 깨는 느낌이 들었다. 취기에 달아오른 얼굴이 더 뜨겁게 느껴진다.


“아니 그냥 해보는 소리긴 하지만... 내가 대학 때부터 쭉 봤으니 십년째 보는 건가? 그런데 사람이 참 괜찮아. 틀에 박혀서 재미없긴 해도 진국이야. 나랑은 스타일이 안 맞아서 그렇지만 꽤 괜찮은 남자라고. 물론 나도 이정석 첫인상은 안 좋았지만... 사람이 입바른 소리를 잘 못해서 그래. 누리쌤도 가끔 기분 나쁠 때도 있었을 텐데 그건 이해해.”

그 때 불쑥 이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입을 열었다.

“뭘 이해해?”


“아유, 깜짝이야. 너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 주는 거야. 하도 니가 누리쌤 괴롭히길래. 의외로 인간 본성은 착하다고 말해 준 거지. 어때, 고맙지?”

“고맙긴 뭐가 고맙냐. 니 앞가림이나 잘 하셔. 내 인간성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난 곧 소개팅 성공해서 크리스마스 전에 날 잡을 거라니까?”

“아유, 그러세요. 꼭 성공하시길 빕니다.”

이쌤이 장난치듯 존댓말로 대답하며 안주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다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이정석. 너도 튕기지 말고 옆에 있을 때 누리쌤이나 잡아봐. 너 그러다 진짜 총각귀신된다.이거 진짜 옛날 스타일의 개그네. 하하하. 그리고 그렇게 둘이 앉아 있으니 잘 어울리네.”

수진쌤이 두 손으로 사진찍듯 프레임을 만들어, 나와 이쌤을 손가락 프레임 속에 넣었다. 당황한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대답을 하지 못했고, 이쌤은 재빠르게 수진쌤의 손에 맥주잔을 쥐어 주었다.


“술이나 드셔. 나는 니 말대로 틀에 박힌 사람이라 어린 여자한테 관심 없으니까. 아래로 많아도 4살 안으로만 여자로 보인다고. 거기다 지금까지 보아하니 나누리도 예전 너만큼 사고치시는 것 같고... 하하하.”

이쌤이 장난치듯 웃다가 갑자기 나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나는 금방 시선을 피했다.

“봐봐. 나선생도 나한테 관심도 없거든? 고개 돌리는 것 봐. 뭐, 나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6살 차이야. 말도 안 통한다고. 그치? 나누리?”

“아뇨!”

헉.

왜 그렇게 대답을 해 버렸을까. 그 때의 나는 나를 어리게만 보는 이쌤에게 괜히 심통이 났다.

“뭐라고?!”

그 순간, 수진쌤과 이쌤이 동시에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나는 내 잘못을 깨달았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릴!


“아, 네. 그렇죠. 6살 차이 말 안통한다고요. 네. 네.”
나는 뭐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

“누리쌤 당황했어. 하하하. 내가 괜히 엮어서 미안해. 그래. 여섯 살 차이. 좀 그렇지? 주변에 파릇파릇한 어린 남자들도 많을 텐데. 누리쌤 미안해... 그치만 나처럼 여기 저기에서 잔소리 듣기 전에 얼른 연애라도 해. 이 나이 되어보니 그 놈이 다 그 놈이다? 그리고 괜히 눈만 높아져.”

수진쌤이 장난기 다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작게 웃으며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야, 너 그만 마셔.”

이쌤이 내 술잔을 확 빼앗아 갔다.


“뭐야 너?”

수진쌤이 이쌤의 행동에 놀란 듯 바라보았고, 나도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았다.

“아니~ 방금 토하고 온 애가 또 마시잖아. 그러다 여기서 토한다니까? 그럼 누가 치워. 여기 알바는 무슨 죄냐고.”

이쌤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내 술잔을 앞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너. 내일 수업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마셔야 되는 거야. 아무도 술 안 주는데 자기 컨디션은 자기가 챙겨야지. 여기가 대학교인줄 알면 오산이야. 대학생때야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안 들어가도 내 학점만 책임지만 되지만, 너는 이제 선생이고 너네반 애들을 책임져야 하는 거야. 프로의식을 좀 가지라고.”

갑자기 매섭게 돌변한 이쌤이 입을 닫자 분위기가 금세 차가워졌다. ‘내가 프로의식이 없다고? 진짜 웃기시는 소리하시네. 나도 내가 알아서 내 컨디션 관리 한다고요!’, 라고 머릿속으로는 다다다 쏘아 붙이고 있었지만 현실 속에서 나는 그저 네네네, 하는 신규 교사일 뿐이었다. 교직은 상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동료 관계라고 교육학에서 배웠는데. 이쌤도 수진쌤도 따지고 보면 나랑 동료 교사일뿐인데 왜 말을 못해? 결국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할 애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괜히 너 때문에 분위기 안 좋아졌잖아. 얘가 이래. 잘 나가다가... 꼭 틀에 박힌 소릴. 내가 둘이 잘해보라고 한 거 누리쌤 진짜 미안하다. 잊어버려~”

수진쌤은 자신의 잔에 남아 있는 술잔을 입에다 털어 넣었다.

“벌주로 다 마셨다. 이제 집에나 가자. 나 내일 소개팅 있단 말이야. 얼굴 더 붓기 전에 들어가야 겠어. 야, 여기 옷.”

수진쌤이 이쌤에게 옷을 다시 돌려주며 일어섰다. 그 모습에 나도 짐을 챙겨 주섬주섬 일어섰고, 이쌤은 잔에 남아 있는 술을 마저 한 모금 마시고 몸을 일으켰다.


“2차는 내가 낸다!”

수진쌤이 계산대로 재빠르게 걸어갔고, 이쌤은 그걸 말리다가 수진쌤한테 제지당한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두 선생님한테로 걸어갔다.

“잘 먹었습니다.”

막내가 가장 잘 해야하는 일 중에 하나를 실천한다. 주변에서 들어봐도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잘 하는 것이 최고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나는 여기서 택시타고 갈거야. 이정석이 누리쌤 데려다 줘. 집 근처니까. 아, 택시!”

수진쌤은 마침 다가오는 택시에 손을 뻗어 세우고는 차 문을 열었다.

“누리쌤 잘 가. 이정석! 누리쌤 잘 데려다 줘. 밤길 위험하니까.”

수진쌤은 손을 흔들며 차 안으로 들어갔고, 곧 문이 닫힌 택시는 우리가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출발했다. 나는 막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인사를 했고, 고개를 들어보니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이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쟤는 늘 저렇게 지 맘대로 끝을 낸다니까? 술버릇이 안 좋아. 아주 안 좋아... 가자. 우리는 택시 타기 애매하니까 그냥 걸어가자. 너 집이 형신아파트랬지?”

“네.”

“그럼 이쪽으로 가는 게 더 빨라. 가자.”

나는 이쌤이 알려준 방향으로 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걸어가는데 갑자기 수진쌤의 말이 떠올랐다.

‘여 선생일 때 더 심하게 기준을 세워서 본다고... 이런데서 술먹고 밖에서 뻗어 있는 걸 학부모라도 봐봐. 내일 심하게 얼굴 따가울거야. 아니다. 요샌 그 전에 SNS가 시끄럽겠지?’

혹시 나랑 이쌤이 이렇게 나란히 걸어가는 걸 학부모나 학생이 보면 어떡하지? 에이, 그럴 리 없을 거야. 이렇게 어두운데 누가 우릴 주목하겠어? 나는 비밀연애를 하는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코트의 깃을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길을 걸었다. 다행이 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웨엥~”

갑자기 나타난 오토바이에 깜짝 놀란 나는 나도 모르게 이쌤 곁에 바짝 붙었다. 길이 너무 조용해서 오토바이의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안쪽으로 걸어.”

이쌤이 나와 자리를 바꾸어 걷기 시작한다. 그래도 여자라고 배려해 준 건가? 아까는 그렇게 쏘아붙이더니. 이 사람의 진짜 인간성은 어느 쪽일까. 매번 급변하는 통에 추측을 할 수가 없다. 물론 내가 추측을 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게 고요한 길을 얼마간 걷다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다 왔다, 고 생각하고 있는 순간 다시 속이 뒤엉키는 느낌이 들었다.

“우웁!”


여기서 이러면 안되는데... 이거야 말로 얼마전 난리였던 떡실신녀 사건처럼 SNS에 두고두고 회자될 아파트 구토녀 되는 상황? 제발 참자, 누리야. 집이 코 앞에다가 이쌤도 있고... 제발. 여기서는...


“우웩~”

그러나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가. 결국 나는 아파트 담벼락을 잡고 토하고 말았다. 하필 이런 꼴을 이 사람한테 보이다니. 수진쌤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토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쌤이 그냥 돌아서서 집으로 갔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를 했다. 그러나 지금 이쌤이 내 등을 두드리는 걸 보면 그 기도는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몇 번을 게워낸 뒤 창피해서 도저히 고개를 못들고 있는데 이쌤이 등을 두드리는 것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너 진짜 학기초부터 여러 모습 보여준다. 버라이어티 나누리네, 진짜. 이제 좀 괜찮아?”

아, 진짜 창피해. 대충 입을 닦고 일어선 나는 가방에서 서둘러 휴지를 찾았다. 몇 장 뽑아들어 입을 가리며 이쌤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창피해도 일단은 괜찮은 척 하자. 아무렇지 않은 척 하자.

“여러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저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게요. 감사했습니다.”
다른 것 보다도 너무 창피해서 더 이상 같이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이쌤한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재빨리 뒤를 돌았다.


“잠깐만.”

아, 또 왜.

잔뜩 울상을 짓던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 이쌤을 바라보았다. 물론 찡그린 표정은 바로 관리된 표정으로 바꾸고. 그러자 이쌤이 가방에서 숙취해소용 드링크를 꺼내 나한테 내밀었다.

“내가 마시려고 산 건데... 니가 더 필요한 것 같다.”

이 상황은 뭐지? 이걸 받아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멀뚱하게 서 있었다.

“받아. 팔 떨어져.”

“아... 감사합니다.”

이쌤의 재촉에 얼떨결에 드링크를 받아 들었다.


“저번 회식한 다음날 지갑 털렸잖아? 내일은 정신 차리라고... 난 그럼 간다.”

말을 마친 이쌤은 곧 돌아서서 자신의 길을 가기 시작했고, 나는 손에 덜렁 남겨진 드링크와 걸어가는 이쌤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인사를 못했네? 나는 이쌤의 뒷모습에 대고 인사를 했다.

“저... 바래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이것도! 감사해요.”


내 인사를 들었는지 이쌤은 멀어져가며 알았다는 듯이 한 손을 들어보였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아파트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면서 이쌤이 준 드링크병의 뚜껑을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저 사람 의외로 착한 사람인건가? 나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시고는 뚜껑을 닫았다.

근데 이거 맛이 왜 이래. 아, 맛 없어... 원래 이게 이 맛이었나? 혹시 이쌤 나 싫다고 여기에 독 탄 거 아냐?

별 쓸데 없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아직 술이 다 깨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다가 다시 아까의 ‘아파트 구토녀’ 사건이 떠오른다. 아, 진짜 창피해. 집에 가서 이불 킥을 수백 번 할 것 같다.


그래도! 뭐 어쨌든! 오늘은 3월 31일! 그렇게 교사로 재탄생한 나누리의 첫 삼월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교사로는 무사히 한 달이 지나갔다, 다행히!

이전 05화<연재소설> 신규교사 나누리_3월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