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신규교사 나누리_4월 01

by 릴리포레relifore

“누리쌤 사진 기사님한테 연락 좀 맡아서 해줄래? 7시 반에 출발 한다고. 나 지금 이거 프린트 맡기러 가.”

수진쌤이 아이들에게 줄 수학여행 안내 책자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알았다고 말하자 수진쌤은 곧 연구실을 나갔다.

“월요일 아침부터 정신없지? 내일 수학여행이라서 그래. 어째 이번에는 날짜가 잘못 잡힌 거 같애. 4월 초에 수학여행 가는 학교 잘 없는데. 꽃은 좀 폈으려나.”

연구실 소파에 앉아 있는 부장님이 말을 마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이들 안전지도 할 ppt 파일 학교 메신저로 보낼게요. 그리고 나선생. 단체 출장 나이스에 결재 올리는 거 잊지 말고.”

“아, 네.”

부장님 옆에 앉아 있는 이쌤 말에 나는 교무수첩을 펴서 오늘 칸에 할 일을 적기 시작했다. 아이들 안전지도, 단체 출장 달기. 아, 수진쌤 부탁도 있었지? 사진기사님한테 연락하기. 적는 것을 마친 나는 볼펜 뚜껑과 교무수첩을 차례로 닫으며 일어섰다.

“저는 사진기사님한테 전화하러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우리도 이제 아침자습 시간이니 일어 서자.”

내 말에 부장님과 이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자기 앞에 놓인 수첩과 필요한 자료들을 챙겨 연구실을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사진기사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기사님. 내일 출발이 7시반이라고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기사님과의 통화는 곧 끝났고, 시계를 보니 8시 40분이 되어 있었다. 얼른 교실에 가서 아침 자습을 지도해야할 시간이다. 나는 부리나케 연구실을 나가 교실로 향했다.


수학여행으로 한껏 들떠있는 아이들은 오늘따라 더욱 내 말을 안 들었고, 나는 진이 빠진 상태로 급식실에 앉아 황태국을 입에 떠 넣었다. 4교시 수업이 끝났는데 이미 하교 시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목소리가 잠겼고, 머리는 아파왔다. 내 옆에 이열로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아이들은 하나 둘 나에게 급식판 검사를 받고 자리를 떠났다.

“지원이는 채소는 하나도 손을 안 댔네? 얼른 몇 개만이라도 먹고 가.”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원이는 다시 자리에 앉아 먹기 싫은 표정으로 오이를 하나 집어 입으로 밀어넣었다. 귀엽기도 하고, 안됐기도 한 마음으로 일그러지는 지원이의 표정을 보고 있는데 동환이가 나에게 소리쳤다.

“쌤. 민태 하나도 안 먹고 다 버리고 갔어요. 쌤한테 검사도 안 받고!”

“민태? 알겠어. 선생님이 이따 이야기할게.”

나는 동환이에게 대답을 해주고, 오이를 하나 먹고 검사 받으러 온 지원이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지원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교실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지원아! 뛰지 말고 걸어가야지!”

내가 소리쳐 봐야 이미 늦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한다. 반찬을 집어 먹는 사이 사이에도 아이들이 나에게 검사를 받고, 질문을 한다. 하나, 둘 우리 반의 자리에 빈 자리가 늘어나기 시작하고 좀 더 지나니 동환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깨끗이 잘 먹었네? 잘했어.”
동환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하자 동환이가 씨익, 웃어 보였다. 요즘 예전보다 부쩍 밝아지고 자신감이 늘어난 동환이의 모습이 순간순간 나에게 감동을 전해준다. 예전같으면 급식을 받고 얼마지나지 않아 나한테 검사를 받은 뒤 금세 운동장으로 향했을 동환이다. 얼른 나가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싶을 텐데도 요즘은 급식을 골고루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전에는 여러 번 되물어야 했는데 요즘은 나를 대할 때 목소리도 많이 커졌다. 그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증거겠지 싶어 나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은 순간마다 기쁨과 웃음을 준다. 교사로서 작은 보람이 느껴진다.


“5교시 시작 시간 잘 맞춰서 들어와야 해.”

동환이는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한 뒤 급식실을 빠져 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반 급식 자리에 나만 앉아 있다. 얼른 먹고 양치하고 수업 준비하러 가야겠다. 서둘러 입에 남은 밥을 떠 넣고 있는데 수진쌤이 곁에 다가와서 말했다.

“누리쌤. 미안한데 우리 견학시간 때문에 출발을 8시에 해야 될 것 같아. 기사님한테 다시 전화드려줘. 점심시간에 수학여행 안내자료 제본 끝내서 5교시 전에 줄테니까 아이들 하교 전에 나눠주고 안전지도도 해주고. 이정석이 ppt 보냈지?”

네, 라고 대답하자마자 수진쌤은 고맙다고 말하고 내 옆을 떠났다. 나도 얼른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식판을 정리하고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으니 수진쌤과 이쌤이 제본한 자료를 한 아름 안고 연구실로 들어왔다. 나는 서둘러 입을 헹궈내고 수진쌤을 도와 자료를 책상위로 옮겼다.

“수진쌤 저 부르시지 그랬어요.”

“아냐. 이쌤이 도와줘서 괜찮아. 이거 누리쌤반 자료.”

수진쌤이 우리반 명 수 만큼의 자료를 나에게 넘겨 주었다.

“벌써 점심시간 끝이네. 얼른 교실로 가야겠다. 부장님 반 꺼는 내가 교실 가면서 전해 주고 갈게. 참, 누리쌤 전화 드렸어?”

“네, 아까 연구실 오면서 전화 다시 드렸어요.”
“고마워. 그럼 이따 애들 하교하고 회의시간에 봐.”
수진쌤은 자신의 반 것과 부장님 반의 안내자료를 챙기기 시작했고, 이쌤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자료를 챙겨 교실로 향했다. 오늘 정말 정신없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수업의 끝 무렵, 수학여행의 전반적인 안내와 안전지도 시간을 가졌다. 선배들이 조언해준 대로 ppt를 활용하고 안내자료도 나누어 줬다.

“안내자료 안에는 우리 일정, 준비물도 나와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갈 곳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적혀 있으니 가기 전에 다시 읽어 보도록 해요. 방금 선생님이 안전에 대해 설명한 것 꼭 기억하고 내일 아침...”

아이들에게 알림장을 쓰면서 마지막 설명과 당부의 말을 하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교실 앞 문이 빼꼼 열렸다. 조금 열린 틈으로 수진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선생님. 잠시만.”

수진쌤의 말에 나는 아이들에게 알림장을 마저 적으라고 한 뒤 교실 밖으로 나갔다.

“미안해. 누리쌤. 다시 출발 시간 정정해야겠어. 7시반으로. 아, 오늘 왜이렇게 정신이 없지? 업체들이랑 교장, 교감 선생님이랑 계속 이야기 하다보니 이렇게 됐네. 아이들 하교 전이니 다시 공지 부탁하고. 참, 사진기사님한테도 운동장으로 7시반 전에 오시라고 연락 부탁해. 나는 우리 반 하교 지도하러 그럼.”

“네. 알겠습니다. 쌤.”

“미안해. 계속 일 시켜서.”

수진쌤이 미안하다는 듯 어깨를 두드려 주고 자신의 교실로 갔다. 아이들과 사진기사님한테 재공지 할 것. 머릿속의 체크리스트에 해야 할 일이 추가되었다. 나는 잊지 않으려 교실 문을 열자 마자 아이들한테 말했다.

“지금 변경된 사실인데 내일 출발이 7시반으로 바뀌었어요. 7시반까지 운동장에 줄 서 있기.알림장 지금 수정할테니까 다시 적어요.”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아, 귀찮아.”

“지우개 좀 빌려줘.”

“다시 적어야 돼요?”

교실 여기 저기에서 쏟아지듯 나오는 말들. 나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민재야, 당연히 다시 적어야지. 안 적고 잊어버려서 8시에 오면 교장 선생님하고 교무실에서 2박 3일간 공부하면 돼. 다들 다시 적으세요. 선생님도 지금 알림장 수정해서 홈페이지에 올려둘 거니까.”

아이들이 다시 연필을 들고 알림장을 적는 소리가 들린다.

“다 쓴 사람은 나와서 검사 받아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이 달려 나와 교사용 책상 옆에 줄을 섰다. 나는 맨 앞에 선 민재의 알림장부터 확인을 시작한다.


“내일 나는 삼만원 가져와야지.”

“완전 재밌겠다.”

“장기자랑 준비 마무리 할 거니까 오늘 남아서 연습하고 가자.”

“내일 아침 7시 반까지 어떻게 오지? 늦잠 잘 것 같은데.”

민재의 뒤에 선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계속 내 귀에 꽂히고 있다.

“자, 조용 조용!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은 제일 뒤로 보낼거에요. 그리고 아까 선생님이 설명한 대로 내일 돈 많이 가져오거나 비싼 물건 가져와서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최대한 가져오지 않도록 하세요.”

나는 일어서서 아이들을 다시 지도했다. 목이 다시 아파와서 책상 위에 놓인 500ml 생수병의 반쯤 담긴 물을 한 번에 마셨다. 그리고는 다음에 줄을 선 혜민이부터 알림장 검사를 다시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동환이까지 나는 출발 시간을 잘 적었는지 유심히 살펴보며 알림장을 검사하고 하교를 시키자 그제야 조용해진 교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일어서 기지개를 켰다. 수학여행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그나저나 오늘 교실은 왜 이렇게 더러운 거야. 아이들이 떠나가고 텅빈 교실에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책상, 삐뚤삐뚤 놓인 의자들, 곳곳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우~ 정말! 할 일도 많은데...”

내 입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지만 어쩔 수 없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청소를 하기 위해 책상 줄부터 맞추기 시작한다. 내가 안하면 누가 하랴, 라는 마음을 가지고. 빗자루를 들어 1모둠 바닥부터 쓸기 시작한다. 그때 앞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가 들렸다.


“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이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선생. 출장 아직 안 올렸어? 교무부장님한테 전화 왔던데. 6학년 출장 안 올리냐고.”

“아.”

그제야 생각난 잊어버리고 있던 해야할 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잊어 버렸어요. 얼른 올릴게요.”
이쌤은 곧 문을 닫았고, 나는 빗자루를 내려 놓고 부리나케 컴퓨터 앞으로 달려왔다. 인터넷을 켜고 즐겨찾기 해둔 나이스 주소로 접속했다. 로그인을 마치고 출장탭을 눌렀다. 그런데 출장을 어떻게 달지? 생각해보니 해본 적이 없는 업무였다. 나는 전화기로 손을 뻗다가 생각을 바꾸어 앞문으로 나가 이쌤 교실로 향했다. 말로 들어서는 알 수 없을 것 같아 실제로 컴퓨터 화면을 보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진쌤은 오늘 너무 바쁠 것 같고 저번에 배워보니 이쌤이 그래도 일은 잘 가르쳐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4반 앞문에 멈춰서 노크를 했다. 들어오라는 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이쌤이 눈에 들어왔다.

“왜?”

“아, 저... 출장을 어떻게 달아야 하는 지 몰라서요.”

“해본 적 없어?”

“출장을 아직 한번도 안 가봐서...”

“그냥 내가 달게. 그럼.”

감흥없이 말을 마친 이쌤은 수화기를 들고 세자리 번호를 눌렀다.

“아, 교무부장님. 출장 제가 올릴게요.”

“죄송합니다.”

죄송한 게 맞나, 라는 물음에 결론이 나기도 전에 내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이 이미 빠져나왔다. 힐끗 나를 쳐다보며 이쌤이 괜찮아, 라고 말하고 나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4반을 나왔다. 괜히 여기로 찾아왔어. 수진쌤이나 부장님한테 물어볼 걸. 교실로 돌아가며 후회를 해봤지만 이미 늦었다. 이쌤한테 분명 나는 일 못하는 애로 찍혀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이쌤이 괜찮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여서 더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다. 학년업무라서 내가 해야 되는 일이 맞으니 귀찮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겠지. 그래도 그냥 잘 가르쳐 주면 안 되나? 얼마나 걸린다고! 나도 종 잡을 수 없는 내 마음이 다시 널뛰기를 시작했다. 늘 좋게 생각해 보려 했다가 나쁜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아, 몰라. 일단 교실부터 마저 치우자.

앞 문을 열자마자 드러난 난장판 교실에 어지러운 마음 속 스위치를 꺼 버렸다.

다음날 아침, 평소와는 다르게 새벽부터 일어난 나는 서둘러 씻고 짐을 챙겨 학교로 향했다. 오는 와중에 ‘가스 밸브는 잠궜는 지, 냉장고 문은 제대로 닫은 건지’와 같은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시 어지럽혔다. 다 잘 해 놓았을 거라고 일단은 나를 믿어보기로 하며 걸음을 재촉해 운동장으로 들어왔다. 손목 시계를 보니 7시 10분. 어제 퇴근 시간, 수진쌤이 부탁한대로 먼저 보건실에 들러 비상약을 챙기기로 했다. 보건선생님에게 비상약을 받아 나와 조회대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나를 발견한 우리 반 아이들이 하나 둘씩 내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껏 멋을 부린 아이도 보이고, 평소와는 다르게 모자를 쓴 아이, 새 가방을 맨 아이도 눈에 띄었다. 교사인 나는 머릿 속 오늘 해야할 일 들에 치어 정신이 없지만 아이들은 마냥 즐거운 것 같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반장 종호가 아이들을 줄 세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렇게 듬직한 반장이 되었는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나보다. 그 사이 부장님과 수진쌤, 이쌤이 반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아이들을 배웅하기 위해 어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 우리반 어머니들을 발견하고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선생님 2박 3일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요새 사건 사고가 하도 많아서 걱정에 잠을 설쳤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걱정마시라고, 잘 다녀오겠다고 말을 했다.


“6학년 선생님들!”

급하게 부장님이 부르는 소리에 어머니들과 인사를 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각 반 인원체크 다 했어요?”

“저희 반은 다 왔습니다.”

부장님의 물음에 제일 빨리 대답하는 이쌤. 오늘은 파란색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베이지색 면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옆에 아직 한 명이 안 왔어요, 라고 대답하는 수진쌤은 평소 패셔니스타라는 학교 내 별명에 걸맞게 베이지색 치노팬츠에 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선글라스도 잊지 않은 수진쌤. 체험학습 복장도 저렇게 세련되게 입을 수 있다니, 쓸데없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부장님의 질문이 나에게 날아들었다.

“나선생 반은?”

“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종호야~”

“선생님 다 왔어요!”

눈치 빠른 종호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필요한 대답을 전해주었다. 평소에도 수업의 여러 장면에서 버벅대는 나를 구해주는 종호. 그 동안의 마음을 모아 종호에게 고맙다고 소리쳤다. 부장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교감선생님께서 교장선생님 모시고 내려오시면, 간단하게 말씀 듣고 버스 승차하기로 합시다. 버스 승차할때도 아이가 아직 안 왔으면 수진쌤은 나한테 알려주고. 비상약은 챙겼나?”

“네, 여기요.”

나는 어깨에 매고 있는 비상약 가방을 부장님께 보여주었다.

“함께 갈 각 반 부담임 선생님들은 저 뒤에 다 오신 것 같고. 사진기사님은?”

“어제 누리쌤이 전화했을 거에요. 아, 부장님. 저희반 아이 왔네요. 다 왔습니다.”

“오케이.”

부장님은 이제 줄을 세우자고 말하고 서둘러 자신의 반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때 중대한 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기사님한테 다시 빨라진 시간을 재공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진쌤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누리쌤. 평소답지 않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네? 하하하. 무섭게스리... 무슨 일 있어?”

“저... 기사님한테 출발시간 다시 빨라진 것 말씀 드리는 걸 까먹었어요...”

“뭐?”

수진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옆에 서 있는 이쌤도 놀란 표정은 마찬가지였다. 수진쌤이 뭐라고 말할지를 생각하는 사이 이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누리. 너 정말... 어째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얼른 다시 전화해!”
주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작은 목소리였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이쌤은 나를 향하던 차가운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로 돌아갔다.

“이미 벌어진 걸 어떡하겠어... 교장 선생님 말씀 듣는 동안에 전화해. 누리쌤. 내가 2반까지 줄 세워 놓을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나자고 잘 말씀드려봐.”

수진쌤은 우리반과 자신의 반 아이들을 줄 세우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교감선생님과 함께 교장선생님이 등장했다. 나는 재빨리 아이들 뒤로 가 기사님한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생각지 못한 실수에 심장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

“여보세요. 네, 선생님.”

전화가 연결이 되고 나는 자초지종을 빠르게 설명했다. 그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덧붙였다. 기사님의 당황한 목소리가 다시 나의 귀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택시타고 다음 휴게소로 가 있을게요. 거기서 만나야 할 것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전화는 곧 끊어졌고, 나는 눈이 마주친 수진쌤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죄송해요, 라고 작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수진쌤은 고개를 끄덕이고, 부장님에게 조용히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부장님이 알겠다고 말하면서 뒤에 서 있는 나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켜서 나는 또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해요, 라는 말과 함께. 그러다 이쌤과 눈이 마주쳤다. 또 죄송하다는 입 모양과 함께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러나 고개를 드니 이쌤은 그 자리에 없었다. 4반부터 버스를 타러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우리반으로 돌아가며 아이들 수를 세었다. 종호가 전해준 대로 다행히 전원이 모여 있었다.

“얘들아, 이제 버스로 이동할 거야. 앞에부터 선생님 잘 따라와!”
나는 서둘러 대열의 맨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인솔해 3반의 뒤를 따라갔다. 교문에 서 있는 학부모들이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해주었고, 나는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아이들이 모두 버스에 타고 나는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안전벨트 착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버스 맨 앞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며 말을 시작했다.

“멀미 하는 친구들 멀미약 다 먹었지?”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의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저는 먹었어요.”

“저는 멀미 안해요.”

“저는 붙였어요!”

“얘는 5학년때 토했대요.”

늘 내가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다지 영양가 없는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나온다. 버스 안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잘했어요. 혹시 가는 동안 멀미를 한다거나 화장실이 급하다거나 선생님한테 할 말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말하세요. 그리고 가는 동안은 절대로 안전벨트를 풀거나 이동하면 안 됩니다! 알았죠?”
아이들이 일제히 네!, 라고 대답했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내 옆에는 우리 반 부담임으로 함께 동행 하는 영어 전담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이제야 영어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수진쌤 말에 의하면 영어 선생님은 수진쌤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은 사람 좋은 언니라고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웃으며 영어선생님이 말해주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 버스 기사님이 아이들의 인원을 체크하는 질문을 물어왔고, 나는 출발하셔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해야 한다는 말을 했고, 기사님은 다행히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차창 밖으로 아이들을 배웅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보였고, 아이들이 손을 흔드는 동안 버스가 출발했다. 부디 다음 휴게소에서 기사님과 무사히 조우하기를 바라며 창의 커튼을 닫았다.

“이번 수학여행 무사히 끝나겠죠? 처음이라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이 되네요.”

나의 말에 영어 선생님이 푸근한 미소를 지어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시 조금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나의 예감은 또 현실로 다가왔다. 사진기사님과 무사히 만나서 포스코 견학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국립 경주 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여자 아이들이 나에게 다급하게 다가와 지수가 이상하다고 말해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갑자기 횡설수설하며 자신들을 잘 못알아 본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선생님들이 있는 곳에 지수를 데리고 와보라고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수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깜짝 놀랄 만큼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하는 지수. 나를 친구대하 듯 툭툭치며 반말을 하고, 교감선생님까지도 알아보지 못했다.

“얘, 언제부터 이랬어? 왜 그렇게 된 건지 몰라?”

나는 지수와 친한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조금씩 이상해지더니 좀 전부터 저희를 못 알아봤어요.”
“오는 버스에서 멀미 패치를 하나 더 붙인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거 하나 붙이는 건데 얘는 두 개나 붙였어요.”

“뭐?”

“진짜 그것 때문일 수 있어. 나 얼마 전에 뉴스에서 본 것 같아.”
수진쌤의 말에 나는 서둘러 지수의 귀 아래를 확인했다. 정말 왼쪽, 오른쪽에 두 개나 붙이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멀미 패치를 제거하고 지수에게 내가 누군지 물었다.

“너? 내 친구.”

지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한지수, 정신 차려. 나 못 알아보겠어? 작년 담임이잖아.”
수진쌤이 지수의 등을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아, 왜 때려!”

지수는 수진쌤의 등을 세게 후려쳤다. 수진쌤이 얼얼한 등을 매만지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대응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교직 경력 중에 한번도 경험해 본적 없는 일이다. 나선생. 일단 패치도 제거했고, 우리 이제 숙소로 갈 거니까 일단 잘 챙겨서 데려가자. 그리고 나서도 차도가 없으면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지 뭐. 그렇게 하는 게 낫겠죠? 교감선생님.”

“그러게. 그런 게 나을 것 같네요.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

교감선생님이 걱정이 가득 어린 얼굴로 말했다. 주변의 선생님들도 지수의 상태를 걱정 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지수의 상태가 너무 달라져서 놀란 것도 사실이지만,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어떡하지? 다른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지수도 걱정되고. 패닉에 빠지는 것 같았다.


“나선생님. 일단 2반 아이들은 내가 인솔해서 차에 태울게요. 선생님은 지수만 신경 쓰는 게 일단 나을 것 같아요.”

옆에서 계속 횡설수설하고 있는 지수의 손을 붙잡고 있는데 영어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모둠별로 박물관을 관람하고 있는 아이들과 만날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부탁 좀 드릴게요. 제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식은땀이 나는 이마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부탁을 했다. 영어 선생님은 약속된 장소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시작했고, 나는 지수의 손을 잡고 차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아이들을 인솔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때 걱정이 되었는지 교감선생님이 나와 지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 친하게 지내자.”

갑자기 지수가 교감선생님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엥? 이건 또 뭐지? 교감선생님을 친구로 착각한 건가.

“아, 죄송합니다. 교감선생님. 제가 잘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 그래요.”

당황한 교감선생님에게서 지수의 손을 빼내어 다시 잡고, 나는 지수를 데리고 차쪽으로 걸어갔다. 교감선생님은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지수에게 여긴 어디야, 나는 누구야, 등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지수는 ‘여긴 학원, 너는 친구 진희.’라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이를 어쩌면 좋지? 너무 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침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우리 학교 버스들이 주차되어 있는 곳에 다다르자, 차 앞에 서 있던 우리 반 담당 기사님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먼저 차에 올랐다. 지수를 내 옆에 앉혀서 안전벨트를 해 놓고 나는 서둘러 휴대폰으로 지수 상태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영어 선생님이 감사하게도 우리 반 아이들을 책임져 주고 있는 사이 나는 지수를 데리고 여교사가 쓰는 방으로 올라왔다. 다른 선생님들도 반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수는 여전히 초점없는 눈으로 횡설수설하고 있었고 부장님이 들어오자 반갑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엄마, 라고 부르며. 부장님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능숙하게 엄마인 듯 대응을 해주었다.

“어쩌죠?”

“상태가 안 좋아지네. 아무래도 병원에...”

부장님 품에 안겨있는 지수를 보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터졌다. 그때마침 이쌤과 수진쌤이 들어왔다. 둘은 부장님과 지수를 그리고 울고 있는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뒤로 돌아섰다. 손 부채질을 해가며 눈물을 말려보려고 애썼다.


“힘들지...”

수진쌤이 가만히 나를 안아주었다.

“죄송해요... 왜 계속 일이 생기는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누리. 내가 사장님한테 태워달라고 말할테니까 나랑 같이 병원에 가자.”

이쌤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뒤돌아서서 이쌤을 바라보았고 부장님이 곧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나는 여기 책임질테니 이선생이 병원쪽을 좀 다녀와줘. 이선생 반은 부담임이 체육선생님인가?”

“네.”

“체육선생님한테 내가 잘 말해 놓을테니 걱정말고 어서 다녀와.”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부장님과 수진쌤의 말에 나는 대충 눈물을 닦고 지수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쌤은 먼저 나가서 차를 대기 시킨다고 말한 뒤 방을 나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참, 나선생.”

부장님의 부름에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병원 가서 지수 부모님한테 연락 드려.”

부장님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다시 지수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싫어, 안 갈 거야. 학원가기 싫어!”

복도를 잘 걸어가던 지수는 계단 앞에서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학원 아니야. 우리 다른 데 갈 거야.”
“다른 데 어디?”

“너 좋아 하는데.”

병원간다고 말할 수 없었던 나는 임기응변식 대답을 했다. 그제야 지수의 눈빛이 반짝 빛나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현태네 가자.”

“현태?”

현태라면 우리 반 남자 아이의 이름이 아닌가?

“너 현태 좋아해?”

계단을 내려가면서 친구처럼 물었다.

“야.”

순간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지수. 나는 깜짝 놀라 왜, 라고 되물었다.

“너는 가장 친한 친구가 그걸 모르냐?”

아, 지금 이 순간 나는 지수의 가장 친한 친구인가보다.

“미... 미안.”
나는 멋쩍게 사과를 하고 지수를 데리고 일층으로 내려왔다. 때마침 주차되어 있는 차와 그 옆에 서 있는 이쌤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정말 이쌤이 구세주 같은 느낌이다.

“고맙습니다.”

이쌤에게 인사를 하자 이쌤이 어서 타라고 뒷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현태네 간다고 지수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함께 차에 올랐다. 사장님은 대충 이쌤에게 설명을 들었는지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는 묻지 않았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내 입에서 한숨이 빠져나왔다.

“야, 한숨 쉬지 마. 너 그리고 파마 해. 파마하는 게 더 예뻐.”

지수의 말에 차 안의 세 사람이 얼어 붙었다. 백미러로 당황한 두 남자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래, 지금... 나는 친구지. 친구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래, 알겠어. 집에 가면 파마할게.”

나는 지수에게 대답했다. 아, 머리야.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두통에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선생님이 더 몸 안 좋아 보여요. 창백한게.”
운전을 하고 있는 숙소 사장님이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그리고 운전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드려야죠. 여기서 제일 큰 병원 응급실로 갈게요.”

“네, 감사합니다.”

바짝 말라있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대답했다. 백미러를 통해 보니 이쌤이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너무 걱정마. 괜찮을거야.”

“네...”

제발 그렇게 되길 빌고 또 빌었다.


응급실에서 지수는 수액을 맞으며 자고 있다. 병원 입구에서부터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지수를 억지로 끌고 들어온 이쌤과 나는 일련의 치료가 끝나고 녹초가 된 채 지수의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병원 의사의 말로는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다. 패치를 적정 용량보다 많이 붙여 환각상태가 왔다고 했고, 소변으로 성분이 배출되면 나아질 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보통 24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덧붙였다. 일단은 마음이 놓였다.

“오늘 감사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부모님께 전화부터 드려.”

“아, 맞다!”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응급실 복도로 나왔다. 휴대폰에서 지수 어머니의 번호를 찾아 통화 연결버튼을 눌렀다.

“아, 지수 어머니.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 있나요, 선생님?”

불안한 목소리였다. 수학여행지에서 갑작스럽게 걸려온 교사의 전화는 받는 학부모에게 불안감을 주겠지...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그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걔는 왜 하나를 더 붙여서... 아무튼 고생 많으셨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바로 내려갈게요. 가서 상태보고 데리고 올라오든지 해야겠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제가 문자로 숙소 주소 보내드릴게요. 오시면 연락주세요.”

“네, 이따 뵙겠습니다.”


지수 어머니와의 통화가 곧 끝나고 나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피곤한지 이쌤은 침대 끝에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이쌤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러자 학교 발령 받은 후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좋은 것 보다 안 좋은 사건 중심으로. 지수 사건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 힘든 일만 일어나는 건지... 내가 부족해서 저지른 실수도 많고, 예기치 않은 사건도 많았다. 다 이렇게 적응하는 거겠지... TV 드라마 속 신입사원들은 다 사고를 치잖아? 잘 하고 있는 거야. 잘... 아무리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려 해도 좋게 생각되지 않는다. 오늘만 해도 사진기사님을 놓고 올 뻔하지 않나, 교감선생님 교직 경력에서도 일어난 적 없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나. 내가 일을 못하는 건가. 운이 나쁜 건가. 아, 모르겠다. 지금은 어서 지수의 상태가 좋아졌으면. 입 밖으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손가락을 들어 눈물을 닦아 내었다.


“나도 신규 때 일 많이 쳤어. 물론 멀미약 사건은 없지만... 아, 농담. 기운 내라.”

말을 마친 이쌤이 내 머리 위에 잠시 손을 올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응급실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난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게.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순간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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