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누크, 오뜨레 비치
하루 종일 바다를 보고 있는 일은 지루하다.
파도는 종일 울렁되고 태양은 너무 뜨겁다.
나는 수영을 조금 할 줄 알지만
바다는 전혀 조금이지 않다.
나에게는 끝도 없는 우주와 다르지 않다.
*오뜨레 비치는 캄보디아의 남단 시하누크의 비치 중 하나이다. 대형 리조트들이 소유한 비치에 비하면 초라할 수도 있는 한적한 비치이다.
이날의 하늘은 잔잔했다. 이날의 오뜨레 비치는 잔잔했다.
새해의 첫날이었다.
한동안 읽히지 않던 책을 챙겨 들고 비치로 나왔다.
10시, 아침을 먹기엔 늦였고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비치의자에 앉아 패션 프룻(passion fruit) 스무디를 시켰다.
바다는 점점 푸른빛을 띠고 사람들은 각자 수영복을 챙겨 입고 바다에 모였다.
모두가 바다를 보러 이 곳에 온 사람들이다.
하늘에 몸을 담그려는 사람들이다.
이곳은 여행객들이 찾기에는 쉽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정오가 되기 전에 빈 비치의자는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바다와 하루를 온전히 보내기로 했다.
바다와 마주 앉아,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보내는 일.
책 한 권과 아이폰에 저장해 놓은 음악들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바다를 앞에 두고 절대 바다로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저 바라 볼 것이다.
자기 전에 한두 페이지라도 읽으려고 내 머리맡엔 서넛 권의 책이 항상 쌓여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진도가 나아간 책을 가져왔다. < 담론 -신영복> 비치의자에 누워 책을 펼쳐 드니, 아, 바다에서 읽은 만한 책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
그래도 이미 반이상 읽었으므로 오늘 하루 집중한다면 끝내고 갈 작정이다.
브런치로 점심을 해결하고 나니 햇살은 내 머리 위로 올라 왔다.
파라솔 그늘 아래서 <담론>을 자장가 삼아 잠에 빠져 든다.
지루하기만 하던 공자, 맹자, 노자...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는 건 나이가 들어서 인지,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어서인지 모르겠으나 점심 이후 햇살 아래 책 읽기는 잠에게 양보하기로 한다.
해는 조금 더 기울어지고 내 발등이 익어가기 시작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바다는 여전히 반짝이고 이제 곧 폭발할 것처럼 태양은 끓어오른다. 내 앞 비치의자에 누운 남자는 등이 타오르고 있는데도 잘만 잔다.
당장 바다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어설픈 욕망을 접어두고 맥주를 시키려 했으나 잠으로 시간을 다 보내고 싶진 않아 참았다.
바다가 태양빛을 부수기 시작한다. 바스락 잘 마른 파도가 모래사장 위로, 내 발가락 사이로 부서지며 흩날린다.
너무 많은 태양의 파편들이 흩날리는 때엔 내 눈으로 쏟아져 들어와 잠시 눈을 멀게 하기도 한다. 그것은 얼굴을 지푸리게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순간들을 기억해 내어 결국 울음을 쏟게 만드는 궁극의 순간이다.
태양은 바다로 몸을 던질 준비를 한다.
태양이 바닷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설익은 달이 얼굴을 내민다.
모래사장에 하나둘 별들이 켜지는 시간.
오늘의 태양과 작별을 하고 돌아 앉아 맥주를 마셨다.
다 끝내지 못한 책과 설익은 달을 안주 삼아.
바다에서의 하루는 아무 일 없이 조용히 태양과 함께 바다로 몸을 던졌다.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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