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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들에게 예술을

하비에르예수회학교 미술수업

by 히은

미술실 앞 보드에 학생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을 둘러보던 중 눈에 띄는 그림을 발견했다. 원근감을 살려 수채화로 그린 사원(앙코르와트의 일부)의 그림이었다. 그림에 있는 학년을 보니 6학년 학생의 그림이다. 작년에 6학년이면 올해 7학년이 되었을 테니 내 수업에 들어올 것이다. 나는 이번에 한 학기 동안 중학교 7, 8, 9학년의 미술수업을 맡았다. 캄보디아에 입국한 지 일주일 만에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열심히 준비한 첫 수업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새 학기의 학생들은 어설픈 선생님의 첫 수업에서 순순히 말을 들어 줄리 없었다. 낯선 환경에서 어설픈 언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나는 쉽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생각보다 더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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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캄보디아를 떠난 지 8년 정도 지났다. 그래도 코로나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캄보디아를 방문했었다. <하비에르예수회학교>의 미술수업을 부탁받았을 때 걱정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컸다. 한국에선 종종 강의를 하지만 캄보디아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신부님은 미대를 지망하는 졸업생 00을 보조 교사로 붙여 주겠다고 했다. 대신 그 친구를 <Royal University of Fine Arts> 디자인과에 보내 위해 실기시험(데생)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중학생들의 수업이 끝나면 둘이 미술실에 남아 연필 데생을 연습했다. 00은 성실한 친구였고 실기시험에 당당히 붙었다.


보통의 캄보디아 학교에서는 미술, 음악수업이 없다. 00은 초등학교 때부터 <하비에르예수회학교>에서 미술수업을 받았고 자신의 진로를 미술로 정했다. 어쩌면 캄보디아의 학생들에게 예술이라는 분야는 새로운 길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미술 수업 시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나는 사춘기 아이들의 에너지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화도 냈다가 달래다가 정신없이 한 시간이 간다.

"저는 그림을 잘 못 그려요."라고 말하는 친구에게는 더욱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손이 야물지 못해 종이 접기가 어설픈 학생에게는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완성하도록 격려했다.

잘 그리고 잘 만드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 과정에서 느끼고 즐기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다.

이제는 미술실에 들어오면 오늘은 무엇을 만드는지, 그리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는 학생들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고흐나 미켈란젤로를 몰라도 학생들은 이미 예술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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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교복과 노랑 꽃


2024년 10월부터 2월까지 하비에르예수회학교에서 지냈다. 적응할 새도 없이 한 학기가 빠르게 지나갔다. 마지막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인사하니 "언제 다시 돌아오나요?"라고 물어본다. 그래도 "다시 올게"라고 인사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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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팩을 활용한 판화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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