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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Jan 29. 2016

컬러필름 이야기_#2.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길을 걷다 무언가 마음에 든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낸다.
방금과 같은 구도가 아니라 조금 아쉽다.
조금만 기다리면 좀 더 나아질까 기다려 본다.
결국 성에 차지 않아 셔터를 누르지 못한다.
혹은 아쉬움에 마뜩잖게 눌렀다 여지없이 후회한다. 


  ‘장고 끝에 악수 난다.’는 속담은 바둑에서 유래되었다. 깊어진 고민 끝에 한 가지 작은 생각에 사로잡혀 버리면 무언가에 홀린 듯 평소라면 전혀 두지 않을 곳에 수를 둠을 뜻하는데, 실제 대국에서도 오랜 고민 끝에 어이없는 돌을 놓는 경우가 많아 생긴 말이란다. 바둑은 삼라만상을 담는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졌기에 실제 삶에서의 실수와 후회도 대국과 같이 벌어진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순간을 기다려도 구도는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필름 사진은 0과 1의 숫자만으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빛의 색채를 지닌다. 이 감각에 반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디지털과 다른 의미를 찾는다. 여기서부터 필름은 딜레마를 가진다. 오랜 고민을 품는 대국의 시작. 디지털 사진과 필름 사진에 쉽고 어려운 차이는 없다. 그럼에도 필름만의 딜레마가 생기는 이유는 '한정성'에서 찾아야 한다. 필름 수는 디지털처럼 몇백 장, 몇천 장의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찍은 순간도 바로 확인할 수도. 필름 가격에 현상비를 더하면 이 역시 만만치 않은  기회비용이다. 

진득하게 피어나는 필름만의 색감.

  그래서일까? 디지털과 필름 모두 동일한 방식에 렌즈도 같이 공유하는데도 결과물의 만족도는 여지없다. 색감은 비할 바 없이 필름이 좋으나 구도 쪽이 문제다. 이러한 아쉬움은 정물보다 순간을 담을 때 더욱 커진다. 늘 애매하다. 한 장 한 장 정성이 과하다. 흘러넘친 만큼 망설임으로 치환된다. 

여지껏 찍은 피사체 중 가장 마음대로 되지 않던 너의 자태.

  사진은 삶의 균형을 요구한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고 가벼운 몸짓은 작은 바람에 중심을 잃는다. 오랜 고민은 끊을 때를 놓치고 방점을 제때 찍지 못해 생긴다. 놓친 새는 다시 찾아오지 않듯이. 오늘도 사진을 찍고, 현상하며 아쉬움 끝에 다짐한다. 오늘은 조금 더 빠르게 심호흡을 해본다. 주저하지 말자 되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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