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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Feb 29. 2016

흑백필름 이야기_#7.

2월 29일에 머물지 않는 삶.

  2월 29일은 어제와 다른 톱니에 맞물려 돌아갔다.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갔음에도. 1,460일의 낙엽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들꽃이나 특별하게 여기도록 불려질 이름이 없다. 오랜만의 등장이라도 긴장한 기색 없는 베테랑의 연기처럼. 감쪽같이 어제를 재연하고 내일로 대사를 넘긴다.


  윤년은 매우 일상적이다 못해 달력이 아니라면 감쪽같이 속을 하루다. 공휴일처럼 붉은 글씨로  기념되지 않아 일상적이다. 생일처럼 평일마저 특별하게 만드는 동그라미도 갖지 못한다. 십 년은 족히 흙을 하늘 삼아 덮고 자는 매미도 몇 주간은 저무는 해를 보다 가는데 오늘의 시간은 정해진 그대로다. 그럼에도 오늘에 야속하지 않은 이유는 4년에 한 번 추가되는 시간이나 4년을 지탱하는 하루라는 평범함에 있다. 1,460일이 무너지고 어그러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단 하루의 힘. 1,460일을 만드는 1,461일이다. 지극히 평범하여 더할 바 없이 특별하지 않은 얼굴들이라도 머쓱하지 않도록. 어제와 똑같은 오늘에 역설적으로 일상적인.

다를바 없이 저무는 하루더라도.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가는 재주가 부러운 이야기꾼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본연의 맛에 솜씨 좋게 치는 소박한 간이 일품이다. 무던히 읽히고 부담스럽지는 않으나 끼니마다 기억나는 이야기. 집밥 같은 글이 좋다. 몇 년 만에 가게를 찾는 오늘이라도 전과 같은 맛을 기대하게 하는 주인장의 손맛처럼. 매번 쓰는 글의 입맛이 바로 이렇길 바란다.

친구들과의 다를바 없는 하루가 소중하게 여겨지는 그 날에 도달해서는.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 없는 사람의 글쓰기는 유화 작업과 같다. 지나간 길에 붓을 덧대어 색을 발하고 질감을 낸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 해야 가까스로 읽힐만한 글이 된다. 그 사이 몇십 번은 족히 담금질을 거듭한다. 무쇠의 불순물을 거두어내 단단해지도록. 표현에 과장을 덜고 불필요한 살은 발라낸다. 그럼에도 입에 넣고 씹는 맛은 더할 나위 없도록 고뇌한다.

충분히 감성적인 하루에 감정적이지 않도록.

  글쓰기에 앞선 사진도, 그 덤덤한 맛이 나기를 늘 기도한다. 이미 필름 그 자체로 충분한 감성에 더 많은 감정을 소비하지 않도록. 디지털 사진이라면 과하지 않은 보정으로, 눈에 보이는 정도의 색감과 대비를 가지도록. 좋고 나쁘고를 떠나 개인의 소망이 그곳에 닿았기에 출사표를 내민 취미 아닌 취미이자, 매일같이 마음에 새기어 넣는 생의 다짐이다. 빨간 날이 아니라면 표현 못할 하루를 살지 않길 바라는.


평범하게 살기란 평범하지 않다던 아버지의 말씀이 해 질 녘에 닿아 떠오른다. 

덤덤하게 포장을 더하지 않는 글을, 사진을, 하루를. 

오늘도 어제와 같은 시간을 덧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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