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chrome blues Apr 11. 2016

흑백필름 이야기_#8.

커피 한 잔의 무게.

 냉장고 문을 연다. 서늘한 불빛에 차갑게 식은 유리병을 꺼내어 든다. 샷 잔에 가득 채우고 컵에 옮긴다. 커다란 얼음 한 덩이가 검붉은 바다에 떠오른다. 적당히 식은 온도에 한 모금. 내려앉았던 셔터가 비로소 올라가고 빛이 스민다. 하루가 시작된다.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일상은 습관처럼 몸에 익었다. 이제는 커피 없이는 몸이 먼저 파업할 정도로. 굳게 닫힌 셔터는 커피로 예열해야만 비로소 가벼워진다. 예열 시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독에 가까운 예찬론이지만 도저히 끊을 자신도, 방법도 생각나질 않는다. 애초에 끊을 마음도 없거니와.


 돈을 주고 마시던 커피값이 아쉬워 시작한 캡슐 커피를 선두로 원하던 맛이 나질 않아 금방 때려치운 프렌치 프레스, 어설픈 손놀림으로 내리던 드립 커피를 지나 이제는 더치커피를 내려마시는 단계까지 와버렸다. 원래 차갑게 식은 커피를 좋아해 더치커피에 꽤나 오래 정착 중이다. 인스턴트 식으로 캡슐을 즐기다 프렌치 프레스, 드립 커피로 방식을 바꾸면서부터 원두에도 욕심이 생겨 직접 갈아 쓰는 단계까지 이르렀고. 설마 직접 원두를 볶는 날까진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얼마 전 인터넷에서 커피나무를 키워 마시는 사람의 게시글을 보고 멋있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니 방심해선 안될 일이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맛과 분위기 모두 더할 나위 없지만, 욕심에는 끝이 없다.

처음에는 잠을 쫓기 위해 마셨다. 사실 그보다 이전에는 멋있어 보이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나중에 정말로 에스프레소를 좋아하게 되었을 즈음에는 화선지에 떨어진 먹물처럼 커피에 스며들었다. 아침에 드립을 내리는 시간이나 더치커피를 준비하는 그 잠깐부터 마지막 모금을 마시는 시간까지. ‘커피’란 단어로 묶이고 소중해졌다. 하나의 의식처럼. 음악의 전주처럼.


 사실 인간이 커피를 알고, 또 소중하게 여긴 시간은 오래되었다. 정확한 시기를 짚어낼 수는 없지만 양을 치는 목동들과 수도승들이 정신을 맑게 하고자 마시기 시작했단다. 정확히 하자면 그때는 커피 열매를 먹는 방식이었다고 알려지지만. 유럽에서 음료로 마시던 초콜릿이 지금에 와서는 고체로 먹는 방식이란 점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쳐 무언가 아이러니하다. 이런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약 백여 년 전. 처음으로 커피를 접했다고 알려지는 고종 황제께서 국내에서 최초로 커피에 취미를 들이신 분이라 알려진다. 


고요하게 (靜),
내다보다 (觀).


 ‘조용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 이란 의미를 가진 정관헌은 덕수궁에 거처하신 고종께서 커피를 마시던 공간이었다. 동서양 건축 양식이 한 몸에 엉키며 앞을 튼 공간에 앉아 커피를 음미하셨을 황제께선 어떠셨을까? 동서양이 얽힌 세상 시름을 커피 한잔에 녹여내셨을지, 혹은 습관처럼 들이키셨을지는 모르지만. 가슴에 들어차면 신경 쓰이는 마음이 사람의 것이므로. 커피 한 잔의 무게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덕수궁에 위치한 정관헌은 동서양의 건축 양식이 한데 어우러졌다데 의미가 있다.

 커피의 호불호를 논하는 문장은 아니다. 커피 예찬은 더더욱 아니고. 사람의 마음은 크기가 한정되어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연인이 말하는 사랑은 주관적이나 사람이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선호적 감정과 기호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무한대의 번호를 가진 버킷리스트는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하듯 모든 물건을 담을 수 없다. 같은 행위라도 하는 사람에 따라 담아지는 크기가 다르다. 대상에 느끼는 마음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기에. 커피 한 잔의 무게 역시 사람마다 다르며 그 무게 차에서 의미가 온다. 사람의 숨에 담기는 ‘21g의 무게’를 지탱하는 그만큼의 온도에서. 

햇빛이 들어찬 정관헌에서 보는 풍경은 시간에 무관하도록 내려 앉는다.

 커피 한 모금에 고요히 내다보던 한 세기 전의 풍경에 기대어 햇빛을 받는다. 저마다의 무게로 내린 커피 한 잔을 가늠한다. 성별과 지위와 상관없는 그 무게에 잠기어. 정관헌을 빠져나오며 괜스레 카페를 찾았듯, 내일 아침도 자리에 일어나 냉장고 문부터 열며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될 것이다’ 란 표현에 좀 더 무게가 실린, 그렇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흑백필름 이야기_#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