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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Jun 16. 2016

흑백필름 이야기_#9.

보다 솔직한 이야기.

  우연히 서울 한복판을 걷다 마주친 ‘삼각맨숀’이란 옛날 방식의 페인트칠이 눈에 띄어 발걸음을 멈추었다. 한 눈에 봐도 주위를 둘러싼 빌딩들과 비교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 삼각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삼각맨숀인지, 혹은 건물의 형태가 삼각형이라 그런지, 혹은 둘 다여서 인지 모를 이름과 건물 구조의 상관관계에 아연해졌다. 잠깐 둘러보고 디지털카메라를 꺼내어 몇 장 찍어보니 광각렌즈가 건물 구조를 담아내기 좋아 아끼고 있던 흑백 필름을 카메라에 걸었다. 

삼각형의 하늘.


  자리에 서서 들뜬 마음으로 필름을 걸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께서 손 안의 카메라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며 지나치셨다. 순간적으로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당신께서 물으셨다.


다 낡은 건물, 뭐가 좋아 찍어요?


  덤덤한 당신의 말투로 단숨에 발가벗겨진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 머리와 가슴 언저리에서 나오는 말 그대로 답했다.


그냥, 이뻐서요.


  겸연쩍게 웃는 나를 보시며 같이 한번 웃고 지나치시는 당신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여전히 벗겨진 몸으로 카메라 셔터를 당겼다. 맘에 드는 사진이 찍혔으리라 직감했고 결과물을 받아본 후로도 역시 그랬지만, 마음 한 구석이 묘했다.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며 나름의 이유와 순간을 담으려 노력했던 순간들이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겸연쩍은 웃음으로 찍었던 첫 장.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혹은 남의 사진을 보고 글을 읽으면서. 나의 것에도 나름의 이유와 나만의 주제를 찾으려 노력했다. 실제로 원하던 순간을 담아내는 그 시간이 아니더라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예상 질문을 준비하는 면접자의 마음으로. 


  대비되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받았던 질문은 본질을 꿰뚫었고 대답은 나왔다. '그냥'. 너무 좋아서. 정말 하고 싶고 마음이 끌려서. 사실 그거면 되었는데. 전부이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유에 사족을 덧대었다. 

솔직하고 덤덤하게.


  원하는 일에 또 다른 이유를 더하지 않더라도, ‘그냥 좋아서’라는 덤덤한 이유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가 되도록. 보다 담백한 사진과 글을 발라내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 날의 질문을 가슴에 걸고 어깨에 힘을 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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