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차려먹다 보면 하루가 다 가있네.
식사와 사료의 차이를 아십니까?
언젠가 한 예능 프로에서 본 질문입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는 건 사료고, 대접하거나 챙겨 먹는 건 식사다’가 답이 되는 주된 골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곁을 지키며 함께 즐기거나 사랑을 먹는 것. 그게 식사라고 합니다. 대하는 태도에 달렸단 말이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식사가 될 수도 사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반대로 달걀을 풀어넣은 라면 한 봉일 지라도 식사가 될 수 있답니다. 발터 벤야민이란 철학가 양반이 하신 말씀이라는데. 사진 때문에 잠깐 이 분 글을 읽은 적이 있긴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만. 정확히 문장으로 풀어쓸 자신은 없어, 어려운 얘기는 직접 찾아보는 센스를 발휘하였음 하네요.
저에게 요리는 식사를 위한 과정입니다. 배달, 인터넷 서비스 등을 통해 집에서 팔도 맛집 투어도 가능한 요즘 같은 세상에서. 요리는 대충 때우기 위한 수단으로는 너무 비효율적 이거든요. 라면에 햇반, 레토르트 음식을 돌려먹는 일을 요리에서 뺀다면 말입니다. 배달 음식이 비싸고 물린단 편견이 있죠. 반만 맞는 말이에요. 저 같은 1인 가정, 혹은 자취생에게 요리는 사 먹는 일보다 사치스러운 방식이거든요.
배달 음식보다 해 먹는 음식이 가성비로써 우위에 놓이려면 두 가지를 지켜야 합니다. 첫째. 철저히 라면이나 레토르트 상품을 이용할 것. 둘째, 재료를 사서 쓰겠다면 매 끼 해 먹으면서 버리는 재료가 없도록 할 것. 요리 좀 해본 자취생 입장에서 먹을만한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한 소금, 간장, 고춧가루 같은 조미료에 파, 마늘, 양파는 있어야 합니다. 고기가 필요하면 돼지 뒷다리 살이 가성비가 좋죠. 조금 더 투자해보겠다면 된장, 고추장, 후추. 망한 요리도 되살리는 ‘이금기 표’ 굴소스까지 찬장에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이 정도도 없이 라면보다 나은 음식을 해낸다면 자취계의 미슐랭이라 칭해드리고 전 시무룩해져 있겠습니다.
저라고 당근이나 호박, 무 같은 재료를 쓰기 싫어 안 쓰는 게 아닙니다. 고기나 파, 양파까진 어떻게든 얼려두기라도 하지, 위의 재료는 얼리기도 애매하고 쉽게 상합니다. 일인분씩 해 먹는데 저런 재료를 살뜰히 쓰려면 정말 매번 써먹야 하거든요. 근데 아침은 귀찮아서 안 먹고 점심은 회사서 먹고. 저녁때 해 먹을까 말까인 상황에선 사치스러운 재료랍니다. 비싸기는 또 얼마나 비싸게요. 풀떼기가 따위가 감히 고기님보다 비싸다니. 말도 안 되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유난 떨 만큼 못쓸 재료는 아닙니다만 버리면 아까우니깐요.
그래도 자취생치곤 곧잘 음식을 해 먹는다 생각한답니다. 자랑 한 스푼 더하자면 꽤나 잘하고, 먹어줄 만합니다. 하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에게 요리는 이벤트였어요. 자취생에게 묻는 질문 리스트 삼사 번 정도에 꼽히는 게 요리 실력입니다. ‘평소에 음식은 좀 해 먹니?’부터 시작해서 ‘좀 하니’라던가, ‘잘하는 메뉴가 있니’ 등등. 이런 질문이 나오면 언제나 으쓱해지는 저였어요. 맛있는 걸 좋아하니 집에서도 그때 먹었던 맛을 떠올리며 종종 실력 발휘하곤 했으니깐요.
과거의 요리는 특별함이었어요. 가끔씩 누군가 초대하여 솜씨를 뽐내던 수단이었죠. 자신 있는 요리 셋을 꼽아보라면 오일 파스타, 갈비찜에 스테이크, 김치 찜 같은 아이들이 먼저 입에 오르내립니다. 보통 상대방은 의외란 표정으로 절 쳐다보죠. 나름 파격적인 리스트니깐요. 사실 양식을 좋아해서도 있지만, 일상이 아니라 가능한 대답이지요. 일회성으로, 문득 생각난다거나 손님 대접하기에도 좋은 일품요리 위주이니까요.
근데 코로나 시대 속에서, 요리는 점점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두 번 사 먹을 거 한 번은 해 먹게 되는 요즘이라서요. 그러다 보니 갈수록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지금도 횟수로 따지면 엄청 해 먹진 않아요. 매일 같이도 아니고. 삼시세끼 중 많아야 한 번. 근데도 이리 번거롭고 맘에 안 드는 일 투성인데. 어머니께선 어찌 그리 매일같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셨을까요? 매번 정성스러운 일상이셨을 당신의 손끝이 떠오릅니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더랬죠. 코로나 때문에 식당도 그렇고 배달도 어떨지 모르니 어지간하면 해 먹던가 간편식 같은 거 돌려먹는 게 어떻겠냐고요. 마침 저도 그러려던 차였습니다. 사 먹기도 좀 그렇고 배달음식은 언젠가부터 물리기 시작했거든요. 라면, 레토르트도 매번 먹기엔 무리가 있으니 말입니다. 자연스레 흘러갔습니다. 회사에서 종종 재택근무를 시행한 덕택도 있습니다. 출근할 때 도시락도 챙겨갈 정신은 없으니 좋든 싫든 한 끼는 사 먹어야 하는데. 재택근무라면 집에 있을 시간이 상대적으로 더 많아졌단 소리니깐요.
처음 며칠간은 호기로웠습니다. 요리에 자신 있었으니깐요. 원래 할 줄 아는 요리들로 버텨보겠단 심산이었습니다. 근데 말이에요. 일주일도 안돼서 두 손 두발 들었어요. 파스타, 스테이크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매끼 해먹을 순 없겠더라고요. 느끼한 맛이 제일 먼저 질린단 걸 새삼 느꼈죠. 어쩔 수 없이 자연스레 자주 해 먹을 만한 한식 쪽으로 노선을 변경했답니다.
역시 한국 사람은 밥심입니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제육볶음, 미역국, 라볶이 등등. 우리 입맛에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먹으려면 이런 류 여야죠. 그중에서도 어쩌다 한 두 번 해보아서, 얼추 해볼 만하겠단 쪽을 주로 골랐어요. 덧붙이자면 다른 반찬이 그리 필요치 않으면서도 든든할만한 쪽이었죠.
근데 쉽지 않더라고요. 처음엔 좀 헤맸어요. 제육볶음이나 미역국은 첫 시도에서도 곧잘 해냈는데. 찌개류라던가 특히 떡볶이는! 엇비슷하게는 만들어도 디테일이 어렵더라고요. ‘먹을만하네’는 되어도 ‘맛있네!’ 나오기 까진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어요.
그래도 제가 맛집 다니길 좋아하니 맛있는 맛을 알겠더라고요. 물론 솜씨 좋은 어머니 손맛을 먹고 자란 덕택도 있겠죠. 살면서 처음 사보는 재료도 갈수록 늘어가곤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요리를 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점들이 있답니다. 제가 바보도 아니고, 평소부터 어머니께서 고생하시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었죠. 알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매번 해 먹을 요리를 떠올리고 만들다 보니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해내는 일 자체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합니다.
한두 끼는 어찌어찌해 먹을 수 있습니다. 근데 한 번 해 먹는데도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간단한 나물 하나 할래도 손질부터 데치고 무치고 하면 한 시간은 걸리더라고요. 퇴근하고 지친 몸에 이 악물고 밥해먹으면 시간은 훌쩍. 그대로 잠들고 싶은데 이렇게 잠들기 억울하네요. 아, 자기 전에 밀린 설거지도 해야죠. 이게 뭐람. 아무리 손에 익는다 하셔도 이게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라면. 그간 어머니의 고충이 실감 났습니다. 심지어 저처럼 찌개 하나 반찬 두 어 개 내놓으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게 매일매일 이셨던 거잖아요.
삼시 세 끼란 예능 프로그램이 생각났어요. 아침 해 먹고 나면 점심 먹을 때고, 점심해먹으면 또 저녁이고. 어영부영 해서 먹고 쉬다 보면 잘 때란 출연자들의 얘기가 거짓이 아니겠더라고요. 시간이 잘 갑니다. 배는 속절없이 고프고. 배달 음식의 유혹도 갈수록 달콤해지죠. 하지만 어머니 생각에 또 한 번 참아봅니다. 코로나 때문이라도 사료보단 식사를 택해봅니다. 이왕이면 안전하고 맛있는 한 끼 식사 대접한단 마음으로 오늘의 요리를 고민해보는 거죠.
오늘 저녁엔 또 무슨 음식을 해 먹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