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면 개고생’과 ‘고생도 사서 한다’ 그 사이 언저리.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할아버지 댁 창고방과, 우리 집 베란다 구석을 뒤질 때마다 피어오르던 궁금증입니다. 접이식 의자라던가 코펠, 버너, 머리에 쓰는 라이트 등등. 캠핑 도구로 보이는 장비들이 참 많았는데요. 왜 우리 가족은 캠핑 한 번 안 가나 싶었어요. 굳이 여쭤보진 않았지만 늘 의문이었습니다. 장비까지 있는데? 굳이 왜? 앞집의 꼴뚜기 녀석은 동네 하천가로, 만화가게 용팔이 녀석은 지리산 자락으로 갔다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동네에 오직 하나 저만 남았던 건데. 개봉 박두할 것 같진 않아 보였거든요.
소싯적 어머니께선 설악산 종주를 하고 텐트 치고 주무셨단 이야기도. 아버지께선 안면도 즈음을 주름잡으셨다던 이야기도 뭔가 생소했어요. 말만 들어선, 부모님과도 캠핑 꽤나 다닐 법도 한데 한 번도 해보지 않았거든요. 제가 가놓고 까먹은 게 아니라면 말이죠. 캠핑 비슷한 추억이라면 어렸을 적 큰아버지 댁과 함께했던, 요새로 따지면 차박 비슷한 경험뿐이랍니다.
드문드문 생각나던 꼬마의 추억입니다. 강원도 근처였을 거예요. 큰아버지 갤로퍼로 떠났던 여행이었어요. 뒷트렁크에서 누워가던 기억이 있네요. 깊은 밤 속에서 어묵탕을 끓여먹던 생각도 나요. 뭔가 이거 저거 먹었지 싶은데 정확히 기억나는 건 어묵탕 하나네요. 추운 날 온몸을 녹이던 어묵 국물이 아주 그럴싸했거든요.
그때 딱 한 번 이후론 캠핑과 인연이 없었답니다. 괜히 언제 한 번 쓸 것 같아 원터치 텐트 같은걸 사놨던 적은 있었는데 한 번도 쓰지 않았더랬죠. 캠핑 도구는 비싸고 짐을 싣고 다닐 차도 없고. 여행은 참 좋아하지만 호텔 침구가 좋지 굳이 노숙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아마 캠핑은 제 인생에 없는 단어지 싶었어요.
코로나로 인해 그나마 수혜를 본 종목이 있다면 캠핑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요? 해외여행은 못 가고 사람 많은 곳을 싫고 맑은 공기가 그립고. 자연스레 캠핑이 생각나죠. OB맥주라던가 카페 이벤트 선물만 봐도 캠핑용품이 부쩍 늘었고요. 트럭을 개조한 캠핑카도 자동차 회사에서 정식으로 출시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포터 위에 미사일 발사대만 올리면 전쟁 무기, 컨테이너만 올리면 캠핑카가 될 거라고 했었는데. 농담이 실제가 되는 역사를 보면 요새 캠핑 인기가 실감 납니다.
저 역시 올해 딱 한 번 캠핑을 나가 보았습니다. 부쩍 용품을 사모은 회사 동료들과 하룻밤이었죠. 저를 포함해 세 사람이 가진 도구를 합치니 얼추 그럴싸해 보였거든요. 사실 전 깍두기에 가까웠습니다. 이쪽은 요리 도구 없이 소위 ‘차박’에 가깝게 멍 때릴 정도만의 도구만 갖고 있거든요. 자고 오기보단 적당히 하천가에서 몇 시간 있다 올 만큼 딱 그 정도요.
바닷가 근처 캠핑장에 자리를 잡았답니다. 장정 넷이 낑낑거리며 타프와 텐트를 치고 장보고 간걸로 요리를 해 먹었죠. 각자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닭꼬치를 구워 먹고, 나중엔 동료 한 명이 바지락 술찜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요. 뭔가 손도 많이 가고 이 고생해야 싶지만 감성적이고 재밌었답니다. 사람을 피하다 보니 요런 일도 해보는구나 싶어 하며 말이에요. 자갈바닥에 등허리를 아파하고. 이상하리만치 발목만 벌레들에게 뜯겨 벌겋게 부어올라도 말이죠.
그래도 말입니다. 그렇게 한 번 해보고 나니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져온 물음표가 느낌표로 변했습니다. 부모님께선 소싯적에 충분히 해보고 힘드셔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실 수도 있겠단 생각이요. 낭만 있긴 하지만 그 단어 하나에 포기해야 할 것들이 엄청 많지 않겠어요? 더구나 꼬마였던 전 지금 모습은 상상 못 할 정도로 약하고 잔병치레에 시달렸으니깐. 저라도 굳이 병약한 아이를 달고 다니며 캠핑하러 다니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 후로도 캠핑 냄새나는 일들을 종종 하곤 있지만 철저히 혼자 다니고 있답니다. 사람을 피해 다니고 싶은 게 크다 보니 함께 하고픈 생각이 안 들어서 말입니다. 차에도 뭐든지 하나씩만 태우고 다녀요. 의자도 하나, 담요와 침낭도 딱 하나씩. 사실 두 개씩 넣고 다닐 만큼 크지도 않을뿐더러 혼자 찌그러져 누우면 끝이니깐요. 자고 오기보단 하천가에 몇 시간 앉다 눕다 하다 오길 좋아하죠. 흘러가는 물도 하염없이 쳐다보고 음악 좀 듣고 책 좀 읽고. 글도 좀 끄적거리다. 그러고 다시 집에 갈 채비를 하는 거죠.
사실 캠핑이 체질은 아닌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평소 카페에서 하던 일 그대로 하다 오는 정도니 말이에요. 한동안 카페에 가기 꺼려질 때 자주 그러고 왔네요. 심지어 밖에서 커피 내릴 도구들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는 거죠. 저에게 캠핑은 딱 그 정도. 네 시간, 많아야 반나절. 그 정도면 족한 소소한 유희랍니다.
글을 쓰다 보니 갤로퍼에서 먹던 어묵탕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그때의 꼬마는 다 컸으니까 혼자 해 먹어야겠어요. 이제는 어른이니까. 청하 한 잔도 곁들이고 말입니다. 혹시나 걱정하실까 사족을 달자면, 술 마실 거니 밖에서 마시진 않을 거예요. 캠핑을 소재로 한, 요즘 시작한 예능을 틀어놓고 편히 앉아 홀짝일 겁니다. 제 이상형인 분이 나오시는 장면에선 보다 집중해가며. 캠핑 기분 내며 소파에 기대어 편안히 볼 거랍니다. 저에게는 딱 그 정도 선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