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chrome blues Dec 31. 2020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 속 상상이 현실 속 위로가 되어줄 때.

   우리 가슴속에는 저마다의 피로 회복제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일상이 매번 아름답고 평화롭다면 참 좋겠으나, 고난과 역경을 뚫고 지나쳐야 할 때도 참 많기 때문이죠. 어떨 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발목을 붙잡고, 종종 미친듯한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생깁니다. 그러다 혼자 힘으로 벅찬 경우를 만난다면 비타민C처럼 우리를 위로해줄 ‘좌절 극복법’을 찾게 되고요.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어린아이 배를 어루만져주는 따스한 손길처럼.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 고요해진 마음으로 침대에 눕게 해 줄 방법들 말입니다.  


   좌절 극복법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제 친구 중 누구는 수다로 푼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갓 돌이 지난 아이 사진으로 충분하다고 하거든요. 맛있는 음식이라던가 적당한 음주, 가무, 운동, 노래, 취미 활동, 잠 등등. 어릴 때 끼고 살던 애착 인형처럼 제각기 다른 모습입니다.  


   저는 정말 힘들 때면 영화를 봅니다. 그냥 영화관에 가는 건 아니에요. 살짝 어둡고 고요한 방,  소파 한 편에 앉아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꺼내 듭니다. 힘들 때 꺼내보는 리스트가 정해져 있어서요. 처방전 마냥 저마다의 태그도 붙어 있습니다. #난가끔눈물을흘린다 라던가, #뿌셔뿌셔, #좌절금지 처럼 말이죠.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태그는 #희망 #용기 #여행 입니다. 살면서 몇 번을 꺼내봤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낡고 헤진 ‘최애’ 영화 중 하나이지요. 


   라이프 잡지 사진 현상 부서에서 일하는 월터 미티. 십 년 넘게 어두운 현상실에서 일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냅니다. 무기력한 일상을 채우는 건 오로지 망상뿐입니다. 별다른 취미도 없고 여행 한 번 가보지 않은 월터에게는 상상 속 세계가 현실에서 채우지 못할 사랑, 용기 등을 해소하는 창구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이프 지 폐간을 위해 전설적인 사진가가 보내온 표지 사진이 분실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필름 사진이라 원본도 없는 상황. 당장 회사에서 쫓겨나게 생길 월터는 전화도 없이 오지를 떠도는 사진가를 찾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뉴욕 밖을 떠나본 적 없는 월터. 무작정 비행기 표를 끊고 생애 첫 모험에 나서죠. 처음에는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모습뿐이지만. 사건에 휘말릴수록 점차 상상 속 자신이 현실이 되어갑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에서 [이미지 출처: 구글]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그 자체로도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가득 들어찬 영화입니다. 여행, 사진, 필름 카메라, 라이프 잡지, 스케이트 보드. 그리고 데이빗 보위의 노래 ‘Space oddity’까지. 처음 봤을 땐 제가 좋아하는 것들 투성이라서 좋아하다 못해 당황스러울 정도였죠. 심지어 저 역시 망상에 가까운 상상에 빠져들 때가 많은 사람이라 더더욱 몰입되었기도 했고요.  


   실제로도 정말 좋아하는 잡지사에서 일하는, 나랑 똑 닮은 주인공. 그리고 사진작가를 뒤쫓는단 핑계로 온갖 모험을 떠나는 장면들. 영화를 보며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뺏을 순 없으니 자세히 묘사하진 않겠습니다만, 다양한 장면들과 삶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 영화와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 등등. 보는 내내 행복할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혹자는 앞선 설명이 너무 주관적이라 호불호가 갈려 보인다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연히 제 몸에 잘 맞아떨어질 뿐, 잘 만들어진 기성복이 맞습니다. 우선 시종일관 무겁지 않고 위트 있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지 않게 해 주죠. 심지어 당장 회사에서 잘리게 생겼는데도 막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에요. 영화배우 벤 스틸러가 주연과 감독을 모두 맡았기 때문입니다. 짐 캐리, 아담 샌들러, 벤 스틸러. 모두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코미디 배우입니다. 너무 무겁진 않으나 감동적이고, 시종일관 위트 있으나 눈살 찌푸려질 정도는 아닌 연기. 남녀노소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들을 많이 찍었죠. 불편하지 않게 후루룩 보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져 있습니다. 


   가끔씩 B급 감성이라던가 유치할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랑스럽죠. 악역 비스무리한 사람도 짓궂다 뿐이지 정말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영화 속에서 너무 웃음만 강요하지도 않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목을 메지도 않습니다. 현실을 사는 지금 우리가 정말 소중하고 대단하다는 결론까지 자연스레 도달합니다. 


   결론적으로 관심사가 겹친다면 저처럼 풍덩 빠져들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는 힘을 품고 있단 얘기입니다. 


   2020년의 우린 참 많은 걸 잃었고, 작년까지의 삶이 희미해질 정도로 달라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타의에 의해 무기력한 시간을 보냅니다. 여행이라던가 취미는 물론, 일상과도 멀어졌죠. 그런 우리에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많은 위로의 말들이 되어 지친 마음을 감싸 안아줄 겁니다. 가라앉았던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한결 가벼워집니다. 용기와 꿈, 희망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겠죠. 광활한 대자연을 통해 얻는 여행 대리만족은 덤이고요. 그렇기에 2020년 12월 31일. 마지막의 마지막에 앞서 이 글을 보실 여러분께 두말 않고 월터를 추천합니다. 


   힘들고 지칠 때 북돋아주고. 여행이 고플 때 그리움을 적셔줄 수 있는 영화. 기분 좋은 마음으로 영화 속 노래들을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생긴 여유가 반가울 마음 반창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였습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에서 [이미지 출처: 구글]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책일기] 라이프 3.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