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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Oct 20. 2021

세상 누구도 날 믿지 않는다면.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

   거짓말이 나쁜 건 모두 알지만, 살면서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은 찾을 수 없다. 달콤하기 때문이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정공법보다 쉽고 간편하다. 거짓말이란 불법 대출에 취하면 눈덩이 같은 이자를 내기 위해 또 다른 거짓을 고해야 함에도 말이다. 나도 그랬다. 억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했고,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을 지어냈다.   


    초등학교 2, 3학년 때쯤의 평범한 하굣길이었다. 같이 가던 친구가 슈퍼에 들러 라면을 샀는데, 뜬금없이 잔돈을 내밀며 가지라고 말했다. 대충 20원쯤이었을 거다. 카운터에서 낱개로 팔던 땅콩 캐러멜이 50원쯤 했는데 그걸 못 살 만큼의 푼돈이었으니까. 자기 것에 대한 욕심이 많던 녀석이 웬일이람. 굳이 받지 않을 이유가 없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반짝이는 동전이 아니라 자기 발목을 낚아챌 낚싯바늘 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잠시 후 집에 돌아와 옷을 벗어놓고 씻으러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어머니께서 찾으셨다.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이 나왔는데 이게 뭐냐 하셨다. 아들내미 옷가지를 정리하다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으셨나 보다.   


“그거 OO이가 줬어요.”  

“걔가 그걸 왜 주니?”  

“라면 사고 남았는데 저 가지라고 줬어요.”  


   불안한 침묵. 당신의 얼굴로 먹구름이 몰려든다. 손버릇이 나쁘다거나 양치기 소년이 아니었음에도 갑작스레 의심을 산 이유는 지금도 알 순 없다. 아무튼 마음이 먼가 까끌까끌해지셨는지 친구 집에 전화해보시겠단다. 흔쾌히 그러시라 했다. 의심에 대한 불쾌함보단 꿀릴 게 없단 의기양양함이 더 컸으니까. 그런데 재차 아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선 무언가 잘못되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유도되는.


“OO이가 준 적 없다잖니! 똑바로 말해. 어디서 난 거야?”  

“아니에요, 진짜 받았어요…”  

“근데 OO 이는 왜 아니라고 해!”  


   말문이 막혔다. 훔치지도 뺏지도 않았다. 그저 상대 호의를 받아들였을 뿐인데 자기는 베푼 적이 없단다. 귀신이 곡할 노릇. 용의자가 할 수 있는 말은 드라마 대장금의 대사,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하였사온대’처럼 ‘친구가 줬으니 줬다’ 뿐이었다. 순간 귓가로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난 도둑놈의 자식 키운 적 없다! 당장 나가!”  


  화난 아버지의 호통 소리. 팔목이 붙잡힌 작은 아이는 팬티에 러닝셔츠 걸친 채 아파트 복도로 쫓겨났다. 억울했다. 갑자기 이렇게 내쳐진다고? 옷가지라도 제대로 입었다면 친구 멱살을 붙잡고 부모님 앞에 꿇어 앉히겠으나 팬티 바람이라 그럴 수도 없다. 그저 복도에 멍하니 쭈그리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쯤 지났으려나. 엄한 표정으로 아버지가 나오셨다.   


“잘했어, 잘못했어?”  


   이젠 돈의 출처 따윈 상관없어졌다. 찰나의 고민 끝에 맞는 길보단 쉬운 길을 택했다. 잘못했다 대답한 뒤, 집에 들어와 반성문을 썼다. 하지도 않은 잘못을 거짓으로 고했다. 어디서 훔쳤는진 그럴싸하게 지어낼 자신이 없어 기억나지 않는다 얼버무린 뒤, 다신 그러지 않겠다며 용서를 구했다. 부모님께선 어설픈 진짜 거짓말을 보고 무어라 생각하셨으려나. 어쨌든 그렇게 가짜 도둑놈은 거짓 회개를 통해 용서받았다.  

제대로된 출구가 맞나요?


   지금이라면 절대 아니지만 그땐 그냥 그렇게 넘어가 다행이라 여겼다. 다만 그 후로 종종 힘든 일 앞에서 거짓말로 회피하는 버릇이 생겼고, 한번 젖은 습관을 몸에서 지우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누굴 원망하랴?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될 억울함을 모든 사람이 거짓말로 모면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돈을 주었던 친구와의 후일담을 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왜 거짓말했냐 따졌다. 그의 대답은 ‘무슨 얘기하는지 잘 모르겠다.’였다. 어안이 벙벙해졌으나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어제의 좀도둑이 오늘의 폭행범이 될 순 없으니까. 혼난 얘기를 꺼내기도 싫었고 말이다. 결국 ‘아, 그래?’라고 넘기며 구태여 더 따져 묻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는 자연스레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억울했지만,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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