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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Nov 26. 2015

흑백필름 이야기_#2.

나에게 전하는 말.

  한 때, 내가 좋아했던 작가의 한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렇게 눈꺼풀에 햇살이 닿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다고요.'  
'눈꺼풀은 햇볕을 쪼이는 일이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까 가끔 이렇게 해줄 필요가 있어요.'


   이 작가의 글 소재는 지극히 일상적인데, 그 표현이 매우 서정적이라 정말 좋아했었다. 사실 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저 구절이 포함된 소설이 아닌데, 유독 저 구절만은 따로 빼놓고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무언가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의 눈에 띄길 좋아하고 남들과 달라 보이길 바랬던 나는 저 구절이 참 좋았다. 그리고 그 구절을 단순히 좋아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종종 길을 걷다가 길 한복판에서 멍하니 눈을 감고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매우 의식적으로. 지금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무척이나 부끄러운 기억이 되겠다. 더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런 작위적인 행동이 남들 눈에 뻔히 들여다보이고 우스꽝스럽단 사실을 얼마 전에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감은 눈을 통해 느껴질 햇볕의 느낌.

  글들에 덧붙이는 사진을 담아내는, 내 필름 카메라는 RF 방식이다. 자동으로 포커스를 맞춰주는 요즘 카메라들과 달리 RF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찍고 싶은 피사체와의 거리를 맞춰 포커스를 맞추고, 렌즈에 달린 조리개로 셔터 스피드를 결정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RF 카메라는 아무래도 그 날의 날씨나 환경의 밝기에 맞춰 조리개를 조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카메라가 몸에 익은 뒤로, 나는 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평상시에 하늘을 쳐다보며 당장의 날씨를 확인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같더라도 다르게 담기는.

  하늘을 쳐다본다라는 점에서 소설 속 내용을  따라 한 행동이나 사진을 찍기 위해 한 행동이나, 그 행동 자체로는 매우 비슷한 모양새이다.  한쪽은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감고,  한쪽은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뜬 것이지만.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반복했던 행동 뒤에는 의미가 남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던 행동에는 어떠한 의미도 남지 않았다. 사람은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것에만 의식해서는 진솔하고 깊이 있는 말을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을 쳐다보며 눈을 감았던 내 행동이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못했던 것처럼. 이 뿐만 아니라 눈을 감고 하늘을 쳐다보듯, 잔뜩 꾸미고 가다듬었던 내 목소리로는 여태껏 누구의 마음도 사로잡았던 적이 없다.


  사실 이 글은 나를 뒤돌아보며 쓴, 이제 갓 글쓰기에 취미를 붙이려는 나를 위해 쓴 글이다. 이제 겨우 시작한 글에 벌써부터 남들 눈에 잘 보이고 싶고 많이 읽히기를 바라여 글에 잔뜩 힘을 주고 멋을 부리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서. 안타에 몸이 달아오른 타자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고 골 욕심 부리는 공격수가 찬 슛은 골대 위로 한참을 벗어난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지만, 직접 그 상황에 당면해보면 몸에 힘을 빼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한 사람이 내는 목소리의 울림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한껏 가다듬은 목소리와 손짓으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지만, 몸에 힘을 빼고 솔직한 내 심정을 담백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갈하게 글을 써 내려가고, 그 안에 솔직한 나의 말을 담아내는 과정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알면서도 하기 어려운 실천.

  남을 의식하는 행동에는 의미를 담을 수 없다. 포장된 말은 되려 너와 나 사이에 벽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보다 담백하게, 나의 말에 붙은 군살을 떼어내고 가볍게 만들고 싶다. 내 말을 꾸미지 않고 담담히 써 내려가고 싶다. 지금 쓰는 이 글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 내 삶의 태도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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