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또 그렇게.
‘봄날은 간다’는 말을 싫어한다. 코끝이 찡한 문장이라. ‘그래도 봄날은 온다’는 말도 싫다. 쓸데없이 희망적이라. 봄 자체는 그 무엇보다 좋아한다. 그 찬란한 햇살로 모든 게 표현되는 기쁨을. 어깨에 와 닿는 따스함을.
그냥 봄이 오고 가는 길목이,
하염없는 기다림과 아쉬움이,
그 낱말들이 싫을 뿐.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선조들의 염원에서조차. 봄은 그 자체로 사람을 녹인다. 그렇기에 더더욱. 고개 너머로 오실 날만을 기대하고 마중 보내야만 하는 햇살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말들이 마뜩잖다. 단순한 기다림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만 같아서. 결국 떠나는 그대를 붙잡을 수 없어서.
작년은 나도, 우리도. 유난히 힘들었다. 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개인적으로는 일 년 내도록 ‘나’를 소개하는 문장들을 짓던 시간들이 끝나질 않았다. 밤을 지새우던 글짓기는. 취미가 아니라 일의 연속이었다. 거듭되는 자기부정에 춥고 서럽던 시절이 광장에 부대낀 체온에 위로받을 즈음이 되어서야. 작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뿌리를 내렸다.
무언가를 생각해내고 계획하는 사람
꿈을 꾼 지 오 년을 넘기고서야. ‘기획자’란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주변의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결국 닿았다. 누구보다 전문적이어야 하나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라. 받게 되었더라도 부담스러운 명함이지만. 그래도 왔다. 무언가를 피워내고, 기대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봄과 같은 기획자가 되고 싶단 포부와 함께.
아직은 새벽 공기가 어색한 출근길에서. 봄을 마중 나온 꽃봉오리를 보았다. 털 옷깃을 곧추세운 목련의 행렬.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서. 그래도 봄날은 왔다.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새 생명을 틔울 것이고. 그 광경을 보는 우리를 기대시키고, 또 가겠지만. 그래도 왔다.
손에 쥐어진 명함에 꽃봉오리가 터져 나온 것처럼. 겨울이 지나 봄날이 온 것처럼. 유난히 긴 2016년의 터널을 지나친 길목에서.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래도. 결국은 봄날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