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부리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짤막한 일본 여행 중 교토의 붉은 밤거리에 취했던 날이었다. 한껏 흥이 오른 기분만큼이나 필름 카메라 셔터도 멈출 줄 몰랐다. 겨우 오후 다섯 시가 지나자마자 속절없이 져버리는 교토의 낮이 아쉬워질 만큼. 샛노란 빛이 검붉게 잦아들던 그 짧은 시간도 놓치기 아까워하며 청수사의 밤거리를 필름에 흠뻑 적셨다. 처음으로 디지털카메라 없이, 오로지 필름 카메라에만 의지해 떠나본 여행이었기에 찍어놓은 사진들에 설렘은 배가 되었다. 찍히는 결과물을 알 길이 없기에 더더욱 찍는 행위 자체와 흐르는 풍경, 그 순간들에만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차갑게 식은 밤공기에 정신이 들어서야 오사카에 있는 숙소로 넘어왔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이 아쉬워 골목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시장 거리에 번뜩이는 간판들에 사로잡혔다. 여지없이 목에 걸린 카메라를 잡고 필름 레버를 감는데 거의 끝에 닿아 멈추어 돌아오질 않는다. 필름이 마지막 장에 닿은 모양이었다. 아주 조금만 더 감으면 한 장 더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욕심을 부려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툭'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
낚싯줄이 끊기는 느낌을 뒤로하고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필름이 끊어지는 순간 조금의 여지없이 모든 것이 무색해지다, 아직도 여행은 하루하고 반나절이나 남았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지금 카메라를 열어 끊긴 필름을 꺼낸다면 이후 일정 동안 다시 사진을 찍을 순 있겠지만 방금 전까지 담아온 교토의 풍경은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사그라 들것이다. 반대로 서른여섯 장만큼의 교토가 아쉽다면 내일의 모든 순간들을 포기해야만 하고. 길거리에 멍하니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필름을 끊어먹은 게 이번까지 두 번째였다. 한 번은 지금, 또 한 번은 홍콩. 공교롭게도 해외에 나가 있을 때, 사진 찍는 것에 특히나 홀려있을 때였다. 지금 이 순간의 구도와 풍경이 흘러버리는 게 무서워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릴 때마다 여지없이, 무언가에 홀려 부리는 욕심이 이성에 앞설 때 찾아왔다. 사실 그보다 문제는 동네 마실을 다니다 같은 상황에 처해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그럴 땐 늘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 아슬아슬한 성공의 추억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필요하지 않은 때에만 새겨졌다.
언제나 욕심이 문제다.
‘한 번만, 이번만큼은, 저번에도 괜찮았으니까.’
라는 마음이 더 큰 것을 잃게 만든다.
홍콩 때는 한 롤만큼의 추억을 잘라내고 새로운 추억을 담았다. 이번에는 고심 끝에 뜯긴 필름이 담긴 채로 카메라를 한국까지 가져왔다. 그탓에 더 이상의 필름을 찍지 못했지만, 충무로 근처의 현상소에 카메라를 맡겨 필름을 꺼냈고 결과물을 보지 못했으면 아쉬울 뻔 한 사진들도 몇 장인가 건졌다. 앞으로 올 기회를 포기하고 얻은 어제의 결과지만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후회와는 별개의 마음으로.
교토의 밤을 추억하며, 세 번째 실수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100’만큼의 결과에 요행으로 ‘1’을 얹으려다 모두를 잃어본 경험은 두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기에. 조금만 무리하면 한 장 더 남길 수 있을 것 같더라도 과감히 포기하고 있다. 내 나름의 ‘보험금’ 같은 느낌으로. 평생 볼 수 없는 한롤의 홍콩과 담아내지도 못한 하루의 오사카를 통해 배운 교훈이었다. 순간에 홀려 모든 것을 잃지 말자는.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날의 교토는 내 실력을 탓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홀릴만했기에.
매우 비싼 값을 치렀으며, 더 이상은 치르지 않을 작정인 교토의 가르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