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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Apr 28. 2017

흑백필름 이야기_#12.

평생을 추억하는 집.

  집은 그리움이다. 할아버지께서 계신 선산을 찾다 보면 그리움이 몰려와 당신의 생가까지 찾는다. 당신께서 그곳을 나와 사신지 엄청나게 오래되었음에도 관리가 잘되었으며 세월이 녹아 반질반질하게 길이든 나무 바닥이 인상적인 생가에는, 당신의 처음과 끝을 오롯이 담아낸 추억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의 생가에서 당신을 그리워할 만한 추억이 없어 막연하다. 이곳에선 당신과의 추억이 없어 해소되는 감정이 없다. 사실 ‘할아버지 댁’이라고 하면 나에게는 당신의 생가보단 당신께서 마지막까지 사셨던 아파트기 때문에. 기억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당신께서 계시던 곳은 몇십 년 동안 그곳이었기에. 당신의 생가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당신의 생가와 마찬가지인 곳이다. 당신을 가장 그리워할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군가의 추억이 깊게 간직되었을.


  가끔은 아파트인게 아쉽다. ‘생가’란 개념은 남의 소유로 넘어가지 않는 이상 계속 그곳에 남아 있을 것이란 막연한 안도감이 있는 반면, ‘아파트’는 떠나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있다. 당신이 그리울 때라던가,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땐. 당신이 앉아 계시던 소파에 앉아 할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다, 몇 년인가 나도 같이 살았던 방 소파에 누워 등허리에 익은 감촉도 느끼다 돌아오면 되었지만. 몇 년이나 더 이렇게 추억해볼 수 있을까 싶어 서글플 때도 많다.


서울 삼각맨숀. 이 공간은 얼마나 더 오래될 수 있을까.

  집은 삶이지만 감정은 추억이다. 집에 대한 추억과 집에서 함께한 사람들과의 추억을 집을 통해 투영하는 것인지는 별개다. 이런저런 핑계로 자주 들르지 못하다 한 번씩 본가에 찾아뵈면 그렇게 잠을 많이 잘 수가 없다. 평소에도 잠이 많은 편이기는 한데 본가에서는 밥만 먹으면, TV를 보다가 등등. 틈만 나면 졸고, 잠이 쏟아진다. 피곤하지 않고 개운한데도 눈꺼풀이 무겁다. 아버지께서는 원래 나가 살다 집에 들어오면 긴장이 풀려 다 그런 거라며 허허롭게 웃으신다. 주체 못 할 정도로 쏟아지는 나른함은. 집이 편해서일까 당신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안심이 되어서일까?


  이사를 했다. 자취를 하며 혼자 나온 뒤 두 번째 이사, 세 번째 나만의 공간이다. 첫 번째 집은 침대에 누워 자전거를 껴안고 자야 할 정도로 좁은 방 수준이었고 두 번째는 최소한 자전거는 옆에 놓고 살 정도는 될 원룸이었으며, 지금은 자전거와 각방을 써도 될 정도다. 말로는 필요 없는 짐을 버리며 ‘미니멀 라이프’를 꿈꾼다고는 하는데 이삿짐을 싸 보면 그 작은 집에서 물건들이 이만큼이나 나오나 싶을 정도로 늘 한 짐이다. 과거의 ‘무소유’와 현대의 ‘미니멀 라이프’는 동일한 맥락이나 지키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기억이 사그라든 공허함.


  아직 정리가 덜된 짐들을 지켜보며 더더욱 아쉬운 것은. 짐의 부피와는 상관없이 이전 집들의 추억은 없었다는 점이다. 아직은 ‘내 공간’에 애정이 생겨본 적이 없다. 집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이 잠이라 그런 건지, 혼자만의 공간이기 때문인지. 집에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추억도, 시간도 없었다. 당신들의 공간만큼의 추억이 나만의 공간에는 없다.


당신들이 그리워질 때의 난. 
나의 공간에서 무엇을 추억해야 할까? 
포장을 뜯지 않은 짐들 사이에서 순간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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