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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Dec 14. 2015

흑백필름 이야기_#4.

겪어보지 못했던 간격을 이야기하는.

  언젠가 아는 동생이 담배를 피우다 말했다. 

사람은 섬과 같아
서로 간에 멀리 떨어져 있고
섬의 가장 높은 곳에선 등대로 서로의 거리를 확인한대요.

   자신도 누군가 책에 쓴 구절을 인용했단다. 결국 그 출처는 찾지 못했지만, 무척 마음에 들어 지금까지도 손에 쥐고 있는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에 예민하고 날을 세우지만 내 곁에서 영영 멀어지는 일은 또 슬퍼한다. 맞물리는 백사장에 기겁하다 막상 닿지 않는 등대 불에 서러워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는 ‘여주인공 남편 찾기’라는 큰 틀을 밑에 놓고, 당시 사람들 간의 간격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드라마가 가지는 숫자가 너무 멀어 보여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시작된 드라마의 거리는 드라마 속 인물들이 서로 부대끼는 만큼 가까웠다. 다양한 세대가 드라마를 통해 목격한 간격으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이야기의 흡인력과 재미는 둘째다. 그 시절 사람 대 사람의 간격에 감동한다. 지금과 다른 섬과 섬 사이를 깨닫고 신기해하다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거리를 견주어본다.

가깝지만 먼.

  출퇴근길은 지금이나 그때나 옆 사람과의 간격이 내 의지와 무관한 시간이었다. 가야 하는 거리에 비례하여 각자의 무게를 온전히 쌓다 고된 하루의 끝에 서면 흐른 시간만큼 불어버린 등짐을 고쳐 맸다. 서로의 짐이 엉겨 붙을 정도의 낯선 이와의 간격에 숨이 막혔다. 어쩌다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출퇴근 지하철에 오르던 아이의 눈에 그때가 지금과 달라 보인 한 가지는 무료한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손에 들었던 물건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한 자리에 하나 걸러 반에 반을 접은 신문을 넘기는 손놀림이 흔했다. 그 옆자리는 팔짱을 낀 채 같은 면을 공유하던 사람들 차지. 내릴 땐 남을 이를 위해 선반 위나 자리에 내려놓고 빠져나갔다. 괜히 정감 있어 보이는 그 번잡하고 수고로운 풍경은 좋은 기억만 남기고 휘발된 추억을 머리에 얹었기에 생기는 착각일까? 더해진 감성의 값어치를 이성적으로 답을 내리기 어렵다. 

내 의지와 무관한 거리.

  보온밥솥에서 꺼내어 차리는 아버지의 늦은 저녁 식사나, 밤이 늦는 삼촌을 위해 할머니께서 넣어두시던 장롱 속 두 개의 밥공기는 같은 방향에서 동일한 크기로 작용한다. 단지 그 번거로움만큼 가까워 뵈는 그 사람과의 간격이 신기할 따름이다. 들인 시간만큼 더해진 무게가 거리를 기울게 하고 수고로운 만큼 더해진 마음이 그 위에 쌓였다. 이성적으로 풀어낼 수 없는 그 거리 공식이 나는 좋다. ‘응답하라 1988’ 속, 겪어보지 못했던 그 시절이 괜히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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