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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Dec 31. 2015

흑백필름 이야기_#5.

지나가는 한 해를 현상해보며.

  사진은 순간의 미학이자 기회의 학문이다.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되 한번 찍은 시간은 씻어내지 못한다. 한번 담아낸 필름은 그걸로 끝이다. 찍힌 필름에 중첩하여 다시 촬영하더라도 이미 덮인 순간에 다음을 덧댈 뿐이다. 실수와 인연을 되돌릴 수 없듯이. 


중력과 사랑은 시간도 되돌릴 수 있다고 하나 중력은 개인의 힘으로 바뀌는 개념이 아니다.
사랑은 논외로 해두자.


  하루하루 모인 2015년의 사진이 완성을 앞두었다. 시작점에서 기대하고 원했던 구도로 31,536,000초 동안 노출시켰다. 현상을 앞둔 사진을 쳐다보니 내 의도와 영 딴 판이다. 정반대로 찍힌데다 많이 흔들렸다. 당황스럽고 당혹스럽지만 내가 행동한 그대로 찍힌 사진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진의 원리대로 흘렀을 뿐이다. 정한  노출값과 셔터 값. 렌즈를 들이민 방향 그대로. 사진에 담긴 의지는 셔터를 누른 사람에게서 온다.

사진은 시간을 담는다.

  사진을 찍어 본 사람은 모든 사진이 마음에 들어 찰 수 없음을 안다. 노출이 맞지 않거나 흔들리거나 기운다. 피사체나 풍경 자체가 별로일 때도 있다. 36장의 필름 한 롤 전부 건질 수 없다. 반 정도만 건져도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그렇다고 실력에 비례하지도 않는다. 필름 시대의 사진가는 좋은 사진이 찍혔다는 직감이 들면 다음 장은 노출 없이 검게 찍어 찾기 쉽도록 표시해두었다. 위대한 사진사 뒤에도 여지없이 놓인 수많은 B컷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내가 담은 장면 그대로.

  중요한 점은 몇 장을 건지는 지가 아니다. 멈추지 않고 셔터를 누르는 손에 있다. 전에 찍은 사진이 마음에 차지 않아 카메라를 손에 놓으면 거기서 끝이다. 그다음 사진은 없다. 다시 셔터를 눌러야만 다음 필름으로 넘어간다. 거기서부터 출발하고 배운다. 인생이 필름 한  롤이라면. 이 또한 사진의 이치를 따른다.

내가 결정한 후회는 시간과 함께 흘러 되돌리지 못한다.

   삶은 필름보다 이기적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에 노출된다. 셔터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올 해의 사진이 망쳤다고 다음 사진을 그만둘 수도 없다. 멈출 수 없기에 한숨으로 후회를 대신해 본다. 이번 사진에 찍힌 모습들과 행동, 후회들을 만져본다. 다음 사진을 위해 숨을 고른다. 다음 사진은 이번보다 맘에 들길 바라며 셔터에 손을 얹는 시늉을 해본다. 


필름 전부 좋은 사진을 담을 수 없다. 

안녕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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