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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Jan 06. 2016

컬러필름 이야기_#1.

필름 사진 첫 장의 의미.

  전 부치는 날, 어머니께서는 늘 신기해하신다. 우유에 딸려오는 요구르트에 더 눈독들이는 아들의 식성을. 어머니께서는 전을 다 부치시고 나서 남은 계란 물을 부쳐낸 자투리를 ‘숙제’라 부르시는데, 언제나 ‘숙제’를 전보다 기대하는 아들의 식성이 신기하신 모양이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숙제. 어머니께서는 아무 간도 되지 않은 그 밍밍한 것이 뭐가 좋으냐고 매번 물으신다. 숙제에 묘하게 얹힌 재료의 향과 그 애매한 맛이 좋아 맛이 재미있는데, 그 오묘한 경계를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어 대답은 매번 ‘그냥 좋아요’다. 


  김치의 꽁지 부분이 좋다. 어두육미라 하지만  그중에 제일은 생선 볼 살이다. 아무도 닭 목은 좋아하지 않아 너무 행복하다. 분명 본 메뉴에 딸려오는 격인데 그 자투리가 더 좋다. 김밥의 끄트머리나 참치 뱃살을 더 좋아하는 ‘일반적 자투리 선호도’보다 괴상망측하다. 본 품에 비해 한정되게 나오는 양이 매력적이기도 하거니와 원래와 조금 다르지만 같아 깊은 무언가가 있다. 맛도 느낌도 재미있다. 


  필름 한 롤은 대개 24장, 혹은 3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기에 필름을 끼우는데 숙달된 사람은 카메라에 끼우기 위한 여분도 알차게 아껴  한두 장은 족히 이득을 본다는데 이 손으로는 아직 딱 정해진  수밖에 채우질 못한다. 그나마도 정해진 수 대로 찍히면 좋으련만, 꼭 한 장씩은 내 손과 무관하게 가을 나무  까치밥 마냥 남겨놓아야 한다. 

까치밥같은 필름 첫 장은 낮과 밤이 무관하다.

  필름은 빛에 반응한다. 카메라 속 완벽한 어둠에서 준비하다 셔터에 맞춰 들어오는 빛을 받고 장면을 담아낸다. 카메라에 필름을 고정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필름을 빼어 끼워야 하는데, 그동안 빛에 노출된 필름은 새하얘진다. 새하얘진 일부는 꼭 첫 번째 사진과 이어진다. 많게는 사진의 반 이상 빛에 먹힌 채 찍힌다. 사진 자체로만 보면 실패작이다. 분명 실패인데 괴상망측함을 부르는 무언가의 맛을 담고 있다.

세로로 사진을 찍더라도 마찬가지.

  이미 빛을 먹고 들어와 새하얗다. 경계로 갈수록 타는듯한 경계를 그린다. 남은 부분만큼만 시선을 담는다. 의지와 우연이 만나는 순간. 우연에 따라 경계가 달라진다.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 온전히 종속된 부분과 한데 모여있어 의미가 생긴다. 의도대로 찍었으나 찍히지 않아 늘 새롭다. 

의지와 우연이 만나 또다른 매력을 담는다.

  ‘숙제’는 그 날 재료의 종류와 쓰고 남은 계란물의 양에 따라 그 맛이 미묘하게 다르다. 요리의 성공 여부와는 다른 괴상망측한 요소가 깔려 재미있다. 음식을 재미로 먹는다니 괴상망측한 일이다. 사진도 굳이 다를 바 없이 재미있다. 본 메뉴는 본 메뉴대로 맛있고, 자투리는 자투리대로 좋다. 아날로그의 색채와 감성이 디지털과 달라 생기는 일이지만, 필름 첫장만큼의 재미라 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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