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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May 27. 2019

주니어 직장인의 트라우마.

신입이 경력이 없어 문제라니요?

혹시 그 친구 어때요?


   타 부서 동료의 뜬금없는 질문에 무엇이 어떤지를 반문하였다. 동료가 말한 ‘그 친구’는 동료 부서에 배정되어 수습 기간을 밟고 있는 신입이었고, ‘어떻냐’의 의미는 업무 능력이나 배우는 속도 등의 전반적인 부분이란다. 신입 직무 교육 중 한 두 꼭지를 맡고 있는 게 나라서 물어보았고. 굳이 의견을 말해주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부담스럽기도 하여 적당히 얼버무렸다. 아직 본인 앞가림하기에 바빠 다른 사람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일 자체도 어불성설이고. 묻는 의도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은데, 알 것 같아서라도 더더욱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꼬드길수록 능글맞게 빠져나왔다. ‘수고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웃으며 자리를 벗어났지만 마음 한 구석은 복잡해져 버렸다. 그가 ‘무례해서’ 라거나 ‘틀려서’가 아니라 이해는 되어서. 이해가 되는 마음 자체가 서글퍼서. 


   조금은 본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IT회사의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보통은 서비스 기획을 하는 편인데 필요에 따라 사업 영역도 다룬다. 창의적인 쪽은 타고나질 못해 데이터를 지향한다. 통계 분석이나 머신 러닝 같은 영역을 얕게나마 다룰 줄 알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개발은 비개발자 치고는 조금 할 줄 아는 정도인데 UX와 관련된 대학원을 나왔음에도 디자인 쪽은 내가 봐도 영 아니다. 딱 그 정도의, 회사를 다닌다면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평범한 기획자다. 조금 더 과거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공대 출신임에도 ‘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사실 꿈을 찾기 전까지는 전공에 적응을 못하는 중이었고 남들 다하는 대외활동이나 공모전을 따라 하다 보니 ‘기획’ 쪽 일이 좋았다. 그때부터 ‘기획자’의 꿈을 가졌다. 그 이후로 ‘기획’ 직무가 박힌 회사 명함을 갖는데 삼사 년, 그 후 최소한의 ‘기획자’ 요구 조건에 부합되는데 또 일이 년 정도는 더 소요되었다. 


파란 불이 들어오기만을 오래도록 기다려왔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학생 때 꿈꾸던 ‘기획자’는 사실 기획자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이었지.
물론 기획자와 스티브 잡스 사이의 차이점을 아는 데만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획자로서의 첫 직장은 스타트업이었다. 본인의 의사보다는 갈 수 있는 곳이 그 회사뿐이었다. 몇 회차의 취업 시즌 동안 족히 몇 백번의 지원서를 쓰고 지웠다. 그중 몇십 군데의 회사에서 인적성 검사나 1차 면접을 볼 수 있었고, 또 그중 몇 곳은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모조리 불합격 통보. 결과적으로는 전패. 면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XX 씨는 기술 면접 때 피드백도 그렇고 수상 경력도 좋은데 기획 경력 자체는 없으시네요.’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내 옆이나 옆 옆에는 꼭 회사를 다니다 온 면접자가 있었으니까. 길든 짧든, 어느 규모이든 간에 회사에서 쌓은, ‘진짜’ 경력이 있는.  


면접도 횟수를 거듭해갈수록 은근히 기세 싸움임을 체득한다.
기세에서 한 번 밀리면 회복하기 어렵다.
나 같은 눌변이라면 더더욱. 


   사실 즉시 전력이 되어줄 동료가 필요한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경력이 전무한 기획자는 부담스러워했다. 같이 커보자는 성장 가능성에 베팅을 해주었다. 그마저도 지인의 추천으로 겨우 겨우. 물론 경력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수 있다. 학점도 좋지 않고 영어 점수는 최저 조건보다 조금 위 어딘가에 위치한다. 면접 때 많이 떠는 편이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기획자 소양에 마이너스 점수를 받았을 가능성도 크다. 지원서만 보아서는 당최 이 친구가 기획 업무에 맞는지 알 수 없기도 하고. 그래도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열심히 일했다. 일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획 체계 자체가 잡혀있지 않던 곳이라 작은 일 하나에도 어둠 속에서 헤매어야 했다. 지하철 막차를 타기 위해 사무실을 뛰쳐나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기획자로서의 첫 발을 뗄 수 있었단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되던 시절이었다. 


안심이 되더라도. 안개가 자욱한 어둠 속을 걷는 듯했었다.


   일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던 즈음,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해 사정이 어려워진 회사에서 잘렸다. 비개발자는 모두 감축 대상이었다. 다른 이들은 내보내더라도 XX 씨와 만큼은 계속 가고 싶었다는 대표의 말이 진심이었든 아니든. 그렇게 결별 후 회사는 회사대로 살아남았고, 나는 운 좋게도 훨씬 큰 규모의 대우도 좋고 소위 ‘워라밸’도 괜찮은 회사에 금방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마침 스타트업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와 거의 유사한 분야에서, 즉시 전력이 되어줄 기획자를 찾고 있던 회사로서는 내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종 면접장에서 늘 부러워하던, 진짜 경력이 있던 상대의 입장이 되어 합격했다.  


   입사한 뒤의 환경도 좋았다. ‘주니어 기획자’인 나에게는 더더욱. 그동안은 체계도 사수도 레퍼런스도 없어 늘 대학교 과제나 공모전을 하는 기분이었다. 입사 후 몇 개월 동안 배웠던 ‘일하는 방법’이 몇 년치의 경험보다 소중했다. 물론 그 몇 년치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고,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할 입장이지만. 그 이후로는 최소한 회사 업무를 하는 느낌으로 일하고 있다. ‘1인’의 몫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하겠다던 본인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요지는 회사나 동료 입장에서야 당연히 경력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을 채용하고 싶겠지만, ‘기획’ 업무처럼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분야는 대체 어디서 경험하고 와야 하는 말이다. 학교에서 전공으로 익히고 올 수 있는 개발이나 디자인 분야도 결국 회사에 와서 훨씬 많이 배우거나 새로 배워야 한다고 토로하는데 하물며 기획 같은 분야는. 기본 소양으로 공모전이나 대외 활동을 통해 알아서 배워와야 하는 걸까. 그마저도 진짜 경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신기루와 같은 무언가를 위해. 실무적이거나 동료 되는 입장에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여유가 있어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진짜 당장의 인력이 부족해서 채용 공고를 올리는데 (최소한 지금 회사의 경우에는) 가르쳐서 배치하기에는 그동안의 '러닝 커브'와 교육을 위한 업무 과중을 무시할 수 없다. 나만 해도 몇 시간 안 되는 직무 교육 지원에 볼맨 소리를 하고 있으니.  


내가 걷는 이 길이.


   나 같은 톱니바퀴는 이런 일들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배울 기회만 주어진다면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를 텐데. 그 기회 자체를 주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배우는 태도’라던가 ‘방식’등의 문제라면 확실히 선을 그어 말할 수 있겠지만. ‘얼마만큼 배우고 와야 하는가’의 문제라면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많이 배우고 오면 올수록 좋겠지만, 그 최소 조건은 무엇이고, ‘성장 가능성’이라 일컬어지는 ‘덕목’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책정해야 할까. 누군가에게 '기회'를 준다는 표현 자체가 맞긴 한 걸까.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라던, 한 예능 프로의 대사를 보고 웃을 수 없기로는 직장을 갈구하던 그때에도, 그토록 원하던 ‘기획자’ 명함을 가지게 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때에는 당시 심정을 대변해주는 블랙 코미디로 받아들여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해지기라도 했었지만. 매일같이 ‘기획자’로서의 직업 수명을 고민하고, 강박적으로 방향성을 찾아가려는 지금에서는. 본인을 겨냥한 말로 마음에 꽂혀 씁쓸해지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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