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컷 망상러의 비애.
망상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바보같이 또 저지른다. 남의 텃밭에 허락 없이 네 잎 클로버를 심었다가 새싹이 돋기도 전에 울면서 갈아엎는다. 이놈의 '행복 회로'가 시도 때도 없이 동작하는 탓이다. 당장 글쓰기만 해도 그렇다. 매번 지금의 실력을 인정하고 순응하자 다짐한다. 허나 조금만 방심하면 잡생각이 숟가락을 얹는다. 솔직히 내가 쓴 글이지만 이번만큼은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씹는 맛이 더해진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주제인 데다 너무 진지하지도, 가볍지도 않게 흐름을 잘 탔다. ‘티브이에 나오는 눈만 크고 허여멀건 애들은 별로야. 우리 손주가 최고지’라고 말씀해주시는 할머니의 고슴도치 사랑에는 더 이상 속지 않기로 했으면서. 이번의 ‘내 새끼’만큼은 아기 고슴도치가 아니라 믿어본다. 아니, 틀림없이 이쁘다. 이 정도면 대박이지. 이 아이가 내 꿈의 서막이 되어줄 게다. 어느 날 우연히 글을 퍼간 커뮤니티에서 폭발적 공감과 호응을 얻어 유명세를 탈 수도 있다. 혹은 퇴근길에 읽은 문장이 도통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어느 홍보 담당자께서 콘텐츠 의뢰를 맡길 수도 있고. 첫 단추만 꿰어지면 어떻게든 장밋빛 미래를 향해 꼬리에 꼬리를 물 거다. 이미 김칫국에 볼록한 배를 문지르며, 출간 작가의 마음으로 글을 업로드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있었던 적도 없는 날개가 꺾인 양 아파하며 며칠 동안 이불을 찬다. 수백 번, 수천 번 되뇌었던 주문을 외우며 일상으로 돌아온다.
망상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상상 속 모습이 진짜라 착각하며 살았던 적도 있다. 실제로 되고 싶던 꿈과 소망이니 너무나 달콤하여 깨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원하던 일들이 순식간에 마법처럼 이루어지며, 상상의 나래에서는 마냥 행복할 수 있으니까.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 수 있으니까. 애절하고 비련한 이 시대의 아이콘.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비운의 천재. 시대의 흐름을 타고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화려하게 피어날 풍운아. 모든 사건과 상대의 작은 몸짓 하나도 나를 향해 의미를 품었단 과대망상을 품곤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온실 속 화초와 같은 상상만으로는 성취감을 채울 수 없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지다. 머릿속의 성취는 공갈빵이라 입맛만 다시다 끝난다. 내가 남들에게 무관심하듯, 세상 역시 나에게 관심이 없다. 망상은 고장 난 신호등이니까. 그래도 명색은 신호등이라 절대로 파란 불이 켜질 리 없다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고장은 나있다. 언제쯤 파란 신호가 들어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고장 난 신호등만 쳐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다간 피가 말라 죽기에 딱 좋다. 'b컷 사진'만 찍어대도 언젠가 한 장 정도는 얻어걸려 주리라 믿어보는 심보처럼.
어째서 망상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기나긴 성장 과정은 빼먹고 염치없이 성공만 바랄까? 언제나 정의가 승리하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정의로운 한 시간 반짜리 영화에서 주인공의 노력과 연습의 과정은 언제나 빨리 감긴다. 기껏해야 삼십 초가량 보여주다 지는 석양에 날아 차기를 하며 악당과 싸울 준비가 되었음을 온 세상에 선포한다. 사부님께선 뒷짐을 지고 계시거나 하늘 위 흐릿한 잔상으로 남아계신 채 고개를 끄덕거리고 흐뭇해하신다. 영화 밖에서의 성장에는 '간주 점프'를 지원하지 않음에도 매번 버튼을 찾는다. 처절한 노력의 맛보단 요행이 달콤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간신히 안다. 나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삼십 분만에 압축하여 성장한, 영화 속 ‘아이언맨’이 아니다. 나는 ‘슈퍼잡초맨’이다. 어느 노래 속 가사와 같은 슈퍼잡초맨이어야 한다. 망상과 상상으로 지은 집들이 번번이 짓밟힐 때마다 좌절하곤 하지만. 죽지 않는다. 애초에 램프의 요정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단번에 이루어줄 수 없는 소망만 꿈꿔왔었으니까. 음악, 글, 공부하지 않는 천재. 저절로 그려진 학점. 말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사랑까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 개연성인 사람이면서. 말도 안 되는 스토리 전개를 혐오하면서. 자기소개서는 별 한 개도 아까워할만한 내용을 바랐다.
어차피 나는 꿈을 먹고살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인간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으로 굴더라도 몽상가 소리를 들을 사람이다. 지금보다 철이 들어도 철없단 소리를 들을게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감독님께 혼나지 않을 정도로 스토리 구성이 쫀쫀하고 현실적인 대본을 써가야겠다. 망상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주연인 영화 속 한 장면에 불과하다. 망상은 새벽녘에 맺힌 이슬처럼 고결하고 아름답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이슬만으로는 내리쬐는 현실의 햇살을 버텨낼 재간이 없다. 물론 응달에서 이슬만 마시며 이끼처럼 사는 삶도 의미 있을 수 있다. 이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 귀여운 구석이 있으니까. 하지만 눈을 찡그리며 돋보기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이쁜 구석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진짜 꿈이니까. 핑계의 껍질을 거두고 폭풍 같은 현실, 혹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망망대해에 갇힌 돛단배의 일상과 부딪혀야 한다. 내 이름은 슈퍼잡초맨. 죽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