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추억.
인생이 한 폭의 유화라면, 경험은 캔버스에 덧댄 물감의 색과 질감이다. 유화는 한 겹의 물감으로 완성되는 법이 없다. 수없이 덧대어 이전에 그려진 색채와 붓 터치를 반영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명암과 채도를 그려낼 수 있다. 불투명한 채색 방식으로 이전의 과정들을 완전히 덮어버릴 수도 있긴 하나, 그동안 칠해진 두께나 질감만큼은 그림에 드러난다. 소실된 줄로만 알았던 고흐의 그림을 다른 작품에 덮인 채로 찾아냈던 적도 있었으니. 덧대어 그리고 애써 숨기더라도 과거의 흔적은 현재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어떤 식으로든, 원하든 원치 않든.
지금은 원하는 색을 골라 본인 방식대로 칠하는 중이지만, 어렸을 때는 남들이 골라준 색깔로 곧잘 칠했었다. 그 당시 썼던 물감 중 대부분은 그 위에 덧대어진 색들로 인해 자취를 찾기 힘들어졌지만, 강렬하게 남아 영향을 준 경험들도 있다. 할아버지의 꿈과 고심이 담기었던 색채가 그렇다. 당신께서는 오로지 당신 캔버스만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셨던 중이었을 수 있으나 손주는 그 순간이 퍽 맘에 들었다. 당신의 캔버스가 채 마르기 전 자신의 것을 갖다 댔다. 데칼코마니처럼 당신의 색채와 질감을 나눠 가졌다. 의식하지 못하였으나,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때 그려졌던 내용이 나의 뿌리다.
나는 당신의 첫 번째였다. 첫 손주였고, 꽤 오랫동안 유일했다. ‘유일한 손주’ 타이틀이 사라진 뒤로도 당신께선 나를 아끼셨다. 둘이 나가면 막둥이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당신과 닮기도 했고. 당신께서는 여행을 참 좋아하셔서 고사리 같은 손을 붙잡고 다니는 발걸음도 즐기셨다. 어찌하여 그런 로망을 품으셨는지 모르겠으나 손주와 함께 하는 여행을 최종 목표 중 하나로 삼으셨다. 유치원 때는 본인이 직접 가까운 곳을 데리고 다니셨으며, 초등학교 삼 학년 즈음부터는 경상남도로 이사한 손주와 당신 사이에 위치한 곳들을 여행지로 삼기 시작하셨다. 각자 홀로 출발해 목적지에서 만날 수 있도록. 처음에는 손주가 살던 근방에서 시작하여 횟수를 거듭해갈수록 점차 둘 사이의 중간까지 도달할 수 있게 손주 쪽 이동 거리를 늘리셨다. 그렇게 몇 번의 국내 여행을 채운 뒤, 해외로 발을 돌렸다.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 정도. 손주가 고등학생이 되면서는 공부 핑계로 당신과의 외유에 마침표가 찍혔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할아버지의 꿈 역시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고.
가끔 할아버지 댁에 들르면, 주인 없이 홀로 남겨진 방에 들어간다. 문을 열면 그 방 주인 사진이 손주를 반긴다. 당신께선 커다란 필름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자연경관을 벗 삼아 자세를 취하고 계신다. 은은한 미소를 띠신 채 손주를 바라보신다. 가끔은 그 사진이 거울 같을 때가 있다. 당신 손을 붙잡고 다니던 여행 그 자체가 마음에 들어차 버렸다. 여행 없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삶의 태도 역시 여행과 닿아있다. 묵묵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고 끊임없이 생각한다. 목에 걸린 카메라마저도. 기억하실지 모르겠으나, 사진 속 그 카메라가 내 손에 닿았던 첫 번째였다. 당신 손을 붙잡고 다니던 작은 아이가 찍었던 첫 번째 사진. 이제는 나만의 카메라를 들고 여행에 나서지만, 창고 속에 잠자던 카메라는 내가 물려받았다. 평소에는 그보다 작은 필름 카메라를 애용하지만. 카메라 파인더 속 작은 창문을 바라보던 당신의 시선은 나에게도 있다. 여행이 아닌 카메라 쪽은 당신께서도 예상치 못한 결과일 수 있으나. 인제 와서 모르시겠다고 하실 수는 없겠지.
그림 그리는 일은 참 어렵다. 풍성한 곱슬머리의 ‘밥 로스’ 아저씨께서는 TV 속에서 그림을 그리실 때마다 ‘참 쉽죠?’란 말을 연발하셨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서 입안에 머무는 말은 ‘저게 돼?’였다. 뚝딱뚝딱 붓칠 몇 번이면 산이건 바다건 캔버스에 쉽사리 펼쳐지곤 했다. 아쉽게도 내 인생에 걸친 딱 하나의 작품에는 뚝딱뚝딱이 통하질 않는다. 그럼에도 조바심 내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려진 색채와 그림을 믿기 때문이다. 그 밑에 깔린 당신의 색채를 믿고 있다. 나만의 캔버스에는 바닷가 풍경이 그려지고 있다. 꽤나 뜨겁던 날의 오후 햇살은 저만치 흘러가버린 썰물을 비춘다. 갓 잡아 올린 생선 비늘처럼 반짝인다. 발이 묶인 낡은 목선은 갯벌에 몸이 박혀 기울어 있다. 내 인생을 바쳐 그리는 유화 속 풍경은. 당신 손을 붙잡고 함께 거닐다 찍었던, 이제는 나의 것이 된 당신의 카메라로 찍었던. 생애 첫 번째 사진과 닮아있다.
해당 게시글은 공대생의 심야서재, 일과삶 작가님께서 운영하시는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과정을 들으며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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