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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Jul 24. 2019

너 자신을 알라.

쓰이지 못한 유서를 추억하며.

 나는 27살에 죽고 싶었다. 27살에 맞이하는 달콤한 죽음이 꿈이었다. 중, 고등학생 때 끝냈어야 할 허무맹랑함이 꽤 오래갔는데,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27살 클럽’이라는 비공식 모임 때문이었다. 클럽의 가입 조건은 단순했다. 

첫째, 27살에 어떤 식으로든 생을 마감할 것.
둘째, 어떠한 예술 분야에서든 27살 전에 성공할 것. 


  만약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 가입된 멤버는 더 이상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게 되었다. 그들의 존재와 이름 자체가 전설이자 시대의 아이콘이요, ‘마스터 피스’가 되었다. 로버트 존슨, 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처럼. 나도 그들 중 한 명이 되고 싶었다. 가장 화려하고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스러지고 싶었다.


 학창 시절 커트 코베인은 나의 전부였다. ‘Nirvana’라는 밴드의 리더이자 ‘그런지’의 대표 주자. 상처 입은 짐승이 울부짖는듯한 목소리와 기타 선율을 가졌던 뮤지션. 자기 음악과 딸을 사랑했던 순수하고 선한 사람. 내가 되고 싶던 그 자체였다. 비록 그와 유일한 공통점은 왼손잡이용 기타를 사용한다는 점뿐이었지만. 나는 ‘정 음악을 하고 싶다면 대학 가서 하라’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였던 용기 없는 사람이었다. 대학 입학 후에는 비참한 현실과 마주했다. 한낱 동아리 내에서도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던 ‘절대음감’ 보유자들과 작곡, 작사 능력자들. 그 앞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커트 코베인 따라쟁이’ 뿐이었다. ‘꾸며짐’밖에 없던 ‘취미반’이었다. 결국 이삼 년 짧고 굵게 고통받다 기타를 손에서 놓았고,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마치 혼자 상상으로 고백하고, 차인 찌질이의 어설픈 짝사랑 말로처럼. 그래도 그때 두 가지는 배웠다. 


첫째, 나는 절대 커트 코베인이 될 수 없다.
둘째, 나는 어떤 분야에서도 27살에 죽어도 되는 천재가 아니다.


누군가의 버려진 꿈.


 나는 꽤나 비겁한 사람이라 많은 시간을 허투루 낭비했다. 천재가 아니라고 인정할 용기가 없어 어떤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 누구도 노력 없이 성공할 수 없단 사실은 알지만, 아둥바둥의 끝에 마주할 평범함이 무서웠다. 그래도 26살쯤부터는 억지로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 년 내에 모든 조건에 맞춘 뒤, 죽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줄탁동시(啐啄同時)’의 고사성어처럼 알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를 도와주는 사건들도 발생해 주었고. 별생각 없이 시작했던 대외 활동의 스케일이 커진 바람에, 10개월 동안 한 프로젝트만을 위해 노력하고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너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꾸밈으로 가득 차 있어 믿을 수 없다던 송곳 같던 말들도 있었다. 그 덕분에 알을 깨고 나왔다. 비록 남들은 이미 날고 있거나 날기 위한 힘찬 날갯짓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이해하고 인지하는 능력만큼은 끝내주게 발달할 수 있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함께.


 평범함을 인정하고 나니, 평범하게 살기도 쉽지 않으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대신 그동안 해온 깜냥은 있어, 언제나 큰 꿈을 꾸며 이를 입 밖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얼굴이 두꺼워졌다. 글은 하루키나 정찬 작가님만큼. 사진이라면 유진 스미스나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마이클 케나 정도로. 목표가 너무 크면 지레 지치고 포기하게 될 수도 있지만, 한 번 마음에 품은 일은 어지간해선 물고 늘어지는 성격이라 문제 될 건 없었다. 버린 시간만큼 스스로에 엄격해진 대신, 타인에게는 상냥해졌다. 협업이 중요해진 요즘 ‘소프트 스킬’이라는 덕목이 주목받는데, 덕분에 회사에서 ‘불통의 아이콘들과도 일이 되게 만드는 기획자’란 소리를 듣고 있다. 본인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원하는 바를 쟁취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특별히 의도하거나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평가받는다면. 이야말로 재능이라면 재능이겠다.


 최근에도 ‘우주소년’이라던가 ‘4차원’ 같은 이야기를 듣곤 한다. 말하는 상대는 선의일 수도, 있는 그대로의 감상평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가시처럼 박히는 말이다. 내가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것을 바라며 헛된 꿈을 꾸어왔던 시간을 자책하게 된다. 평생에 걸쳐 이루기도 힘든 일들을, 손에 꼽을 몇 명만 해내었던 성공이 나에게도 있기를 희망했다. 이제는 피울 수 없는 꽃봉오리를 잘라내었으며, 잘라냄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잘라낸 가지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는 점도. 지금은 막 새순이 돋아난 화분을 키우고 있다. 언제쯤 피어날지 알 수 없으며, 이번에도 꽃봉오리인 채 남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다행이지 않은가? 죽기 딱 좋은 나이를 27살을 생각한 덕분에, 화분을 갈아엎고 새로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시간 정도는 번 듯하여서.




해당 게시글은 공대생의 심야서재, 일과삶 작가님께서 운영하시는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과정을 들으며 작성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worknlife/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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