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노래.
“저 멀리 시대에 뒤처진 은하계 서쪽 소용돌이의 끝,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 변두리 지역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노란색 항성이 하나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라스 애덤스
만약 세상에 영원히 죽지 않는 예술가가 있다면, 불멸의 삶은 그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나는 주저 없이 답을 골랐다. 단언컨대 저주다. 그는 말라붙은 하천 바닥의 붕어처럼 살 거다. 진흙탕을 뒹굴며 괴로워하다 결국 예술가이기를 포기할 거다. 끝나지 않는 지옥을 선사한 신을 저주할 테지. 죽음은 서슬 퍼런 아름다움이자 삶과 예술을 위한 동기부여다. 죽음이 내뿜는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예술은 해소될 수 없는 갈증의 연꽃으로 피어난다. 그런데 죽음을 뺏겼다고? 영원토록? 뮤즈를 거세당한 예술가만큼 불쌍한 존재가 또 있을까 모르겠다.
조금 늦었지만, 내 소개를 하겠다. 세상에서 날 지칭하는 말은 많지만 대충 종합해보면 신(神)이라 불리는 존재와 비슷하다. 자신의 죽음만큼은 결정하지 못할 반푼이인 탓에, 전지전능한지까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신이란 거창한 이름보단 ‘예술’이란 집합체로 불리고 싶었다. 지금은 도면에 맞게 기계적으로 그리는 설계자 쪽에 가깝지만. 예술에 대한 탐욕스러운 용광로는 차게 식은 지 오래다.
순백의 검푸른 캔버스와 처음 마주했던 순간만큼은 잊을 수 없는 첫사랑과 같다. 그때는 무엇을 그리든 반짝반짝 빛났다. 심장과도 같이 붉게 타오르는 항성들과 영혼처럼 빛나던 은하계. 가끔씩 찾아오는 고독과 짝을 맞춘 블랙홀 등등. 나는 내가 그리는 우주 그 자체였다. 추상화가 질릴 땐 자화상을 그렸다. 나와 닮은 피조물을 그려보는 재미가 꽤 그럴싸했다. 그들 역시 또 하나의 우주로 표현되는 붓터치가 좋았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도 점차 시들어갔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일이 점점 힘에 부쳤다. 당신도 겪어본 적이 있는가? 가장 사랑했던 무언가를 세상 그 무엇보다 증오하게 되어버린 심정을? 그런데 그 무언가와 영영 헤어질 수 없는 채, 매 순간 마주해야 하는 곤욕스러움을?
나는 생각했다. 스스로 그리기 힘들다면, 빌리면 되지 않을까? 나를 닮은 아이들은 죽음 속에서 피어나는 생이다. 나의 화폭에서는 티끌처럼 미미하나, 저마다의 의미를 품은 들꽃 같은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초상화를 그려보는 일도 괜찮지 않을까? 소재는 이미 차고 넘친다. 지구라 불리는 행성 하나 만에서도 무수한 소우주들이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있으니까. 나는 그들이 찬란히 빛나는 순간만을 담아 나의 우주에 기록해보기로 했다.
영신은 편의점 앞 벤치에 걸터앉았다. 한숨이 밤하늘 공기와 부딪혀 산산이 흩어졌다. 오늘은 나쁘지 않다. 나쁘진 않은데. 딱 그 정도라 고달픈 하루다. 품에서 전자 담배를 꺼냈다. 손가락으로 담배를 톡톡 건드리니 노란 불이 들어온다. 오늘까진 피울 수 있겠으나 내일도 담배를 태우고 싶다면 잊지 말고 충전하란 소리다. 살다 살다 담배에까지 쓸데없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 혀를 끌끌 차며 한 모금 깊게 빨았다. 숨이 배꼽 근처까지 닿자 뜬금없이 왼쪽 손목 부근이 저릿했다. 고사리 삶는 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입 밖으로 천천히 흩어지는 담배 연기는 은하수와 같았다. 길가에 세워진 오토바이 헤드라이트가 깜빡거리며 은하수를 물들였다.
영신은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나왔다. 차갑게 식은 캔을 쥐고 있자니 목이 탔다. 문득 눈으로 맥주를 마신단 콘셉트의 TV 광고가 생각났다. CM송을 흥얼거려 보았지만 생각보다 흥은 나지 않았다. 한때는 영신의 삶에도 차가운 맥주 같은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철 지난 맥주 광고마냥 김이 빠져버린 지 오래지만. 열대야가 저물어가는 밤에 마시는 맥주는 차고 달았다.
영신은 기타리스트였다. 기타리스트로 살다 가고 싶었다. 신의 롤모델이었던 커트 코베인은 이렇게 말했다. 서서히 사라질 바에는 한꺼번에 불타버리는 게 낫다고. 영신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남들을 밝게 비출 별까진 아니더라도, 배를 곯는 한이 있더라도. 음악을 하다 죽고 싶었다. 비록 죽을 자리를 보지 못하고 달려드는 불나방의 생애이더라도.
보증금 300에 월세 15만 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에서부터, 영신은 커트 코베인을 꿈꿨다. 그의 노래를 카피하고 긴 생머리를 노랗게 물들였다. 영신은 자신의 왼손 기타에 ‘프란시스’란 이름도 주었다. 커트 코베인이 너무나 사랑했던 딸의 이름을 기타에 붙인다면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하지 않겠나 싶어서.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반지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카피캣. 구닥다리 따라쟁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그런 기타리스트.
영신은 이 빌어 처먹을 세상이 싫었다. 세상은 원하지도 않던 삶을 억지로 쥐어주었다. 그래 놓고선 아무것도 가지지 말란다. 사무치게 원하는 단 하나의 꿈조차 이룰 수 없는 굴레를 씌었다. 인생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단 진리를 언제쯤 깨달았을까. 아득하다, 염병할. 블랙홀처럼 비어버린 맥주캔을 구겼다. 개 같은 커트 코베인, 씨발 같은 프란시스. 던져버린 맥주캔이 바닥에 부딪혀 낑낑대는 소리만이 신이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음악의 전부였다.
영신은 벤치에 머리를 기댄 채 입안에 머무는 코드를 흥얼거렸다. 커트 코베인의 노래, ‘Rape me’와 비슷한 것 같다. 아니다. 다르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다. 영신의 삶 속에 음악이란 종착역은 깨끗이 지워버린 지 오래니까. 뒤늦게 흘러가버린 사랑을 잡기 위해 정신을 차린 것도, 염소처럼 고꾸라진 늙은 노모의 등허리 때문도 아니다. 지쳤다. 이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술기운과 담배연기에 취해 붉게 물든 코드를 흥얼거렸다.
회색빛 은하수가 눈에서부터 멀어져 간다. 불꽃처럼 살다 가진 못해도 담뱃불 정도론 빛나고 싶었는데. 지금은 담배 연기보다도 희미하게 숨죽여 살고 있구나. 영신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담배연기가 걷히자 어슴푸레한 별빛들이 보인다. 영신은 의미 없는 자신의 생애가 참으로 가여웠다.
나는 나의 아이가 가장 밝게 빛나던 순간을 캔버스에 담았다. 이번의 아이는 절망에 한껏 젖어있었지만 아름다웠다. 본인은 자신이 조금 전 무엇을 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스러지겠지만. 나는 아이가 뿜어낸 반짝거림을 빌렸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순간일지라도. 어디선가는 샛노란 보석과 같이 빛날 수 있도록 그려 넣었다.
나를 닮은 아이야. 네가 담아낸 순간이 저 머나먼 우주 한구석에 또 들어차는구나. 네가 깨닫지 못한 지금 이 순간이 밤하늘에 별처럼 박혔구나. 나만큼은 너를 기억 하마. 너의 생애에서는 서랍 속에 머물다 간 꿈일지라 해도. 나만큼은 너의 이름으로 불리는 찬란함으로써 영원히 기억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