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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Sep 07. 2019

[단편소설] 애이불비

죽은 그녀에게서 답장이 없다.

애이불비(哀而不悲): [명사]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함.


   그녀가 죽은 지 사십 구 일이 지났다. 그녀의 죽음 이후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라 사십구재도 지나칠 뻔했다. 집 안 공기가 끈적하다. 냉매가 잔뜩 빠진 에어컨 바람이 늙은 개의 날숨처럼 불쾌한 탓이다. 문득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시원찮은 에어컨 밑일지라도 그녀가 손을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눈을 감는다. 늑대 한 마리가 얼굴을 들이밀고 이빨을 드러낸다. 천장에 핀 곰팡내가 코끝을 스친다. 윙윙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만이 악몽 같은 현실의 이정표다. 순간 현기증이 난 탓에 주저앉고 싶었지만, 억지로라도 몸을 밖으로 밀어냈다.


   그녀는 자신을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옷을 만들거나 웹페이지를 다루는 등의, 평범한 쪽이 아니라 그림자를 디자인한다고 했다. 그림자 모양새를 가다듬어 주는 단순 업무부터 염색 같은 고난도 작업까지. 사실 업계에서 꽤 잘 나가는 편이란 말도 굳이 덧붙였다. 그림자를 교체하는 작업만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 아무나가 아닌 사람 중 한 명이 본인이기 때문이란다.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나에게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싶으면, 그냥 성형외과 의사라고 생각하세요. 맘에 들지 않는 곳을 다독여 주는 건 그들이나 나나 똑같으니까.”


   세상에 이런 직업도 있었다니. 그녀는 어떻게 알음알음 전화로 연락해온 손님의 예약만 받는다고 했다. 혼자서 하는 일인데다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다 보니 사는 곳이 곧 작업실이었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손님들이 전화 문의는 꺼리길래 예약 사이트를 오픈하기로 마음먹었단다. 인터넷을 뒤져 일을 맡길 사람을 찾았고, 홈페이지 제작을 부업으로 하던 내 연락처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녀는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을 던지는 사람이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그녀에게 끌렸다. 목소리는 민들레 홑 씨처럼 간질간질한데 끝이 약간 허스키하여 힘이 있었다. 말수가 적다고 생각했는데, 알아갈수록 말이 없지만은 않은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되어 좋았다.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기는 손가락은 선이 고움에도 무언가 고양이 앞발같이 귀여웠다. 웃을 때 참 눈이 예쁜 사람이었다. 수면의 일렁임은 점차 커졌지만, 정작 그녀는 호수의 떨림 따윈 관심 없어 보였다. 일로 만난 사이와 호감 중간 정도의, 딱 그 지점일 거라 어렴풋이 가늠해보곤 했다.  


“그거 알아요? 그림자에도 싯가란 개념이 있다는 거?”


“뭐 횟집도 아니고. 그쪽 업계도 부르는 게 값이에요? 세금도 안 낼 거면서?”  


“우리도 그렇게까지 직업의식이 없진 않거든요? 나름 사명감도 있고. 근데 그림자를 아예 바꿔치기해 주는 일만큼은 싯가로 받아요.”


“왜요? 할 줄 아는 사람이 몇 명 없어서?”


“그것도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닌데, 모양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거든요. 사실 그림자에는 그 주인의 혼이 담겨요. 그림자가 바뀌면 내면도 바뀌죠. 유리컵 모양이 그 속에 담길 물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처럼?”


“그럼 손님마다 원하는 생김새도 다르겠네요?’


“당연하죠. 그리고 이쪽도 나름 유행이란 게 있거든요. 사실 싯가인 이유에는 유행도 한몫하죠. 횟집에 싯가가 왜 있겠어요? 제철이고 맛있는 애들은 부르는 게 값이라 그런 거죠. 그림자도 똑같아요.”  


“그럼 그 동넨 요새 뭐가 제철이에요?”


“늑대요. 사실 늑대는 업계에서 스테디셀러기도 한 데다 유행까지 타버렸죠.”  


   영리하지만 영악하진 않은 늑대. 강인함과 용기의 상징. 단 한 마리의 짝과 연을 맺는 순애보. 집단생활에도, 고독한 혼자만의 삶에도 어울리는 유일무이한 동물. 늑대를 찾는 손님들의 사연은 저마다 다르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곱씹다 보면 요즘 세상에 어울리는 사람은 ‘사람 같은 사람’이 아니라 ‘늑대 같은 사람’ 쪽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녀가 죽기 전날 밤, 그녀에게 고백했다. 분명, 그녀에 대한 감정은 ‘싫지 않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싫지 않음이 피어나 꽃이 되고, 또 그 향기에 취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지경까지 와버렸다. 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홈페이지 진척 상황 같은 시답잖은 이유를 대어 그녀를 만났다. 대화에 잠깐 정적이 찾아왔을 무렵, 사실 그쪽을 좋아한단 말을 덤덤히 전했다. 고백을 끝으로 정적이 밤안개처럼 깔렸다. 해무(海霧)에 셔츠가 흠뻑 젖고 나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 일로 만난 사이에서는 관계를 발전시키지 않아요. 그림자를 만지다 보면 그들의 내면과 지나치게 가까워지거든요.”


“나도 일로 만난 사이는 맞는데, 그쪽 일 때문은 아니잖아요. 내 일 때문에 만난 거지.”


“그쵸. 그래서 좀 애매하네요. 솔직히 저도 당신이 싫진 않아 더 애매하고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네요. 괜찮죠? 바로 얘기 못 해줘서 미안해요. 너무 길게 끌진 않을게요.”


“아뇨, 괜찮아요.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요.”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해요’라니. 좋아하는 여자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저따위라니. 돌이킬 수 없단 사실을 알았다면, 마지막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아니,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기회의 신은 앞 통수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뒤통수에는 없다고 한다. 그 탓에 준비 없이 신을 맞이한 사람은 지나쳐버린 기회를 잡을 수 없단다. 난 그때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당장 그녀가 죽을 거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며칠 동안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다, 경찰로부터 부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참고인 조사차 경찰서에 방문하란다. 살인 사건의 가능성도 있단다. 멍해졌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화살처럼 날아와 꽂혔다. 과녁에서 새어 나온 피가 가슴팍을 적셨다. 언제 몇 시쯤 경찰서를 방문하겠노라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었던 담배가 생각났다. 눈물이 나오면 울기로 마음먹었는데 막상 눈물은 나오질 않았다.  


“일로 만난 사이였습니다.”


   그녀와의 관계를 묻는 형사의 질문에 간결하게 답했다. 시신은 그녀의 손님이 최초로 발견했다고 한다. 약속한 시각이 한참 지나도록 초인종에 답이 없었다. 답답한 나머지 문손잡이를 한 번 돌려보았는데 잠겨 있지 않았고, 바닥에 쓰러진 그녀를 발견했단다. 담당 형사는 ‘그림자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어 최초 신고자의 방문 의도를 납득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그를 피의자로 의심했단다. 하지만 참고인으로 확보한 과거 손님들의 진술이 워낙 일관되니, 최소한의 의혹은 풀린 듯 보였다. 나는 작업 중이던 홈페이지를 보여준 다음, 사망 추정 시간 당시의 행적을 더듬어 알리바이를 입증했다.   


“그런데 왜 단순 사망 사고가 아니라 살인 사건이라 단정하고 수사를 진행하셨는지요?”


“그렇잖아요. 여자 혼자 살던 집 문이 잠겨있지 않고, 집주인은 죽어있었으니깐. 현장도 약간 석연찮고. 사실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살인부터 의심했을 거요.”


   형사는 단순 사망 사고로 사건을 종결시켜야 하는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보였다. 자신의 판단이 맞았음을 인정받고 싶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참고인에게 해줘도 될 말과 안 될 말 구분 없이 전부 쏟아냈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흔적이 시신 발밑에 있었다니깐. 마치 개와 같은 형체가 불에 타 눌어붙은 것처럼.”  


“개요?”


“뭐, 시베리안허스키나 그런 류로? 처음엔 개가 타 죽은 자국이나 뭐 아무튼 그런 쪽으로 생각했는데. 근데 막상 확인해보니 바닥 무늬 같길래 사건에서는 배제했었죠. 근데...”


   잠시 주저하듯 말꼬리를 늘리던 형사는 말을 이어갔다. 죽은 그녀의 모습이 무언가 이질적이라 자연사 같지 않았다고 했다. 현장과 동떨어진 모습이었는데, 처음에는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최초 신고자도 그렇고 다들 자꾸만 그림자, 그림자 거리니 문득 떠올랐다고 한다. 죽은 그녀의 모습에는 마치 그림자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약간 소름 돋았다는 대목을 끝으로, 형사는 매우 사무적으로 변했다. 혹시 몇 번 더 연락이 갈 수도 있으니 전화기는 꺼놓지 말란다. 문전박대당하는 기분으로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그날 이후 매일같이 그녀가 꿈에 나온다. 그녀는 무엇에 홀린 듯 문을 잠그는 것도 잊는다. 커다란 서랍을 뒤져 돌돌 말린 그림자를 꺼내 든다. 늑대의 그림자다. 옆으로 손을 뻗어 커다란 가위를 집어 든다. 발끝에서부터 그림자를 서걱서걱 잘라낸다. 붉은 실과 바늘을 꺼내 그녀와 늑대를 이어 붙인다. 안 그래도 창백하던 피부가 종잇장처럼 새하얘진다. 순간 늑대의 그림자가 살아 움직인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지고 늑대가 공간을 채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널브러진 그녀의 그림자를 남김없이 먹어 치운다. 뒷발에 기운 실이 걸리적거렸는지 이빨로 물어뜯는다. 움찔거리며 등에 덮인 검은 허물을 벗자 회색 늑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를 한 번 쳐다보곤 커튼 뒤로 자취를 감춘다.」

  

  오늘은 그녀가 꿈에 나오지 않았다. 사십구재가 되던 날이었다. 이제는 꿈에서조차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걸까? 회사에는 아프단 핑계를 대고 그녀와 만났던 카페로 향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멍하니 앉아, 그동안 해본 적 없던 질문들을 던졌다.  


   그녀는 왜 죽었을까? 그림자를 바꾸다가? 왜 하필 늑대의 그림자였을까? 나 때문에?  


   아니다. 이 질문부터 해야겠다. 그녀의 죽음이 애초에 나란 사람과 관계가 있을까? 꿈속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건 맞긴 하고? 어떻게든 그녀와 나 사이에 인연이 있었다 믿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혹시라도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그녀는 나에게 뭐라 답해주었을까?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땀으로 범벅인 허물을 벗지도 않은 채 곧바로 침대로 향했다. 눈을 감았다. 오늘까진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아니, 이제는 꾸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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