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를 빼놓고 넘어가면 서운하니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매우 뻔하지만, 그만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십 대 때의 대학과 이십 대의 취업, 그리고 삼십 대에는 결혼이 대표적이다. 가을 전어마냥 제철이 되면 너 나할 것 없이 안부를 묻는다. 가깝게는 부모님을 포함한 일가친척부터 멀기로는 회사 동료라던가 슈퍼 주인 등등, 다양도 하시지. 우리 집은 사실 듣는 장본인보단 부모님께서 피곤하시다. 본인은 그런 얘기에 쉽게 마음이 긁히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전법을 써먹은 덕택 이리라. ‘너는 짖으세요. 전 제 갈 길 가렵니다’ 식의 육두문자 섞인 마이웨이 전략에도 익숙하고. 근데 질문자들이 참 못된 사람들인 게 당사자만 괴롭히지 않는다. 본인 반응이 시들먹하면 자꾸 애먼 부모님을 찔러댄다. 부모님께선 애초에 아들이 괴팍하다는 걸 아시고 일정 부분 포기하신 듯 하나, 남들의 걱정 섞인 오지랖에는 늘 친절히 답변하신다. 이럴 때마다 발생하는 부모님의 감정 노동이 죄송하다. 진심이다. 장본인보다 부모님을 들들 볶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맞추어 살 순 없지. 어쩔 수 없다.
부모님께선 늘 답답해하셨다. 결과적으로 아들이 고른 선택지들은 언제나 가시밭길에 유별났으니까. 재수생일 때는 연애 사업에 빠져 두 번째 수능도 말아먹었다. 솔직히 이건 정말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쪽이 전적으로 잘못했다. 애초에 썸의 싹이라던가 여지를 만들었음 안되었는데, 그땐 눈먼 짐승이라 그런 걸 몰랐다. 굳이 연애를 해야겠음 들키지나 말던가, 칠칠치 못하게 그걸 또 들켜 부모님과 엄청 싸웠다. 싸웠다기 보단 부모님께서 늘 져주셨지. 다신 없을 사랑처럼 굴다 결국 일 년도 채우지 못했을 땐 어이없어하셨고. 그 당시 아들은 마음속 작은 아이가 말하는 소리에 몰두했다. 본능적으로, 짐승처럼 살았다. 좋으니깐 사귀고 그게 아니라 헤어졌다.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입장에선 부모님은 살아있는 부처시다. 이런 속 터지는 아들내미가 뭐가 좋다 품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나라면 복장 터져 진즉에 호적에서 파버렸을 텐데. 눈 까뒤집고 대들던 어린 짐승을 말이다.
취업 얘기만으로도 책 한 권 나오지. 다만 취업은 이야기 핵심에서 벗어나니 여기에선 짧게 줄여야겠다. 망친 수능 점수로 그럭저럭 갈만한 곳에 들어갔는데, 결국 학부 전공을 살리지 않았다. 다행히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나 일반적인 경우보단 삼사 년 늦었다. 괜히 가방끈만 길어졌고, 취업의 고배는 중독자가 될 정도로 많이 마셨다. 요샌 전보다 몇 배는 더 취업문이 더 좁아졌다고들 하니 감히 비빌 구석이 있을까 싶지만 말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얘기가 삼십 대의 ‘결혼’ 이야기되시겠다. 결국 안부 인사를 받는 나이에 안착했다. 당신들께서도 슬슬 조바심이 나시는지 은근슬쩍 물어보시고는 하지만, 집에서는 아들의 연애나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일이 불문율이다. 재수 때 연애를 포함하여 이십 대 초반 연애사업으로 불같이 싸웠던 탓이다. 사실 이 부분만큼은 부모님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 앞서 말했듯 재수 때 연애는 잘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좀 다르지 않은가? 그들과 당장 결혼하겠다는 얘기도 아니고 그냥 좋아서 만났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싫으셨는지 모르겠다. 정신 못 차리고 사는 아들이 꼴 보기 싫어 옆에 있는 친구 마저 마뜩잖으셨던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글로 정리해보는 김에 좀 더 자세히 써보고 싶지만 정말 몰라서 쓸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 당시 부모님과 그의 아들은 원수 지간처럼 싸우고 서로 미워했단 거다. 아들과 따로 살지 않았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었을 정도로 틀어졌을 만큼 말이다.
결국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화해해야 했기에 곪아 터진 상처를 어떻게든 봉합할 필요가 있었다. 당신들과 나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는 전쟁터 참상을 하나하나 복구하는 건 포기했다. 그보단 갈아엎고 새로 시작하는 쪽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서로의 상처와 시체가 가득한 공간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버렸다. 옳은 방법이었는진 알 수 없다. 다만 서로가 합의했으며 결과만 보았을 땐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대신 부모님께선 의식적으로 아들의 연애사나 결혼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셨으며, 아들은 다시는 부모님께 여자 친구를 소개하지 않았다. 최고의 해결책은 아니나 그때는 그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2019년 하반기를 시작으로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하기 시작했다. 삼, 사 년 전 아예 일찍 한 친구를 제외한다면 이제야 청첩장을 돌리고들 있다. 그들 앞에 서있자니 세상에 홀로 미아가 된 기분이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데 혼자만 흐리멍덩하다. 막연하게 ‘이 사람이 너무 좋다, 계속 함께 하고 싶다’란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결혼까지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다. 대체 어떻게 하면 누군가와 결혼하겠다는 확신이 생기는지 도통 모르겠다. 어릴 때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거나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그런 마음이 생길 줄 알았다. 근데 그렇지가 않더라. 서른 살이 넘어서도 여전히 말이다. 모르겠다. 확신을 가지겠다는 마음부터가 욕심인 걸까?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던지는 공식 질문이 있다. ‘언제 처음으로 그 사람과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까?’이다. 예비 신랑들은 하나 같이 얘기한다. ‘무언가 확실한 계기가 있다기 보단, 이 사람과는 계속 함께할 수 있을 것 같고 계속 같이 있고 싶어서 그렇답니다.’라고. 언젠가부터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려 노력했고, 그러한 사람과 연애하게 되어 결혼까지 이어졌다는 대답도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입을 모아 자연스레 결혼까지 골인했단다. 너무 모범 답안만 듣다 보니 어디서 도청되고 있다던가 신랑 수업 때 미리 받은 답안을 외웠나 싶을 정도다. 그 정도 이유면 충분히 결혼할 수 있는 건데도 괜히 물어본 사람만 비뚤어져 간다.
가끔씩은 스스로가 너무 재는 사람 같을 때도 있고, 반대로 아무 생각 없는 사람 같을 때도 있다. 어떨 땐 너무 지레 겁먹나 싶을 때도 있지. 결혼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왜 이렇게 고슴도치 가시를 한껏 세우는 건가 싶다. 누군가와 평생 함께 한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겁난다. 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싫진 않으며, 언젠간 막연히 하고 싶단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다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태도로 결혼까지 해도 괜찮을까’란 생각만큼은 버릴 수가 없다. 최소한 지금의 ‘나 홀로 라이프’보단 결혼이 더 좋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이런 방어적인 태도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놓쳐버린 적이 있었을까 봐, 혹은 그렇게 마지막 기회를 흘려보낸 걸까 봐 무서울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할머니께선 언제 결혼할 사람을 데려올 거냐 몇 년 전부터 물으신다. 아무리 되바라지고 까칠한 사람이라 해도 할머니께 만큼은 순진무구하고 어린양이 될 수밖에 없다.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여자들에게 영 인기 없어 그렇다 웃어넘긴다. 그럴 때마다 당신께선 ‘우리 손주가 어디가 어떻냐고, 어디 하자 한 군데 없는데 알아보는 사람 없냐’며 속상해하시지. ‘죄송해요, 당신께만 그렇게 보여요. 생각보다 하자 많은 인간이랍니다.’란 대답은 언제나 속으로 삼킨다. 할머니께선 손주 며느리 보는 일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시는데, 들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재로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남들의 안부 인사는 뭐 하나 쉽지 않다. 누구나 별 일없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애초에 그렇게들 물어보지 않겠지. 앞의 두 가지는 어찌어찌 넘겼으나, 결혼 안부까지 해결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참에 나만의 회피 답안을 정해두었다.
‘대학도 취업도 남들보다 늦었는데 결혼이라고 뭐 빠르겠어요. 할 때 되면 하겠지만, 서른셋엔 아마 힘들지 싶습니다. 혹시 서른다섯을 넘겨서도 지 혼자 잘난 맛에 살고 있다면, 쟨 혼자 평생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