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으로 사는 ‘소심인’씨의 사정.
“나, 순례자의 길에 가려고.”
“응? 스페인?”
“응. 산티아고.”
“갑자기? 언제 가게?”
“6월 초에?”
“얼마나? 그럼 회사는?”
“관두려고. 대충 한 달쯤? 파리 in, 바르셀로나 out으로 가려고.”
“아 진짜? 그때 가면 축구 직관은 못하고 오겠다. 아쉽네. 그래도 바르셀로나까지 가면 메시는 보고 와야 될 텐데.”
축구로 어설프게 화제를 돌리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J의 선언에 적잖이 놀랬다. 본인이 말한 6월 초까지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사표를 던진 뒤 한 달간 순례자 길을 돌고 올 거란다. 물론 J는 나름대로 즉흥적이지 않은 결정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좀 더 이유를 캐물어보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고, 의미가 없단다. 회사도 재미없고. 어설픈 반문이나 훈계조로 반대하기보단 매서울 6월 스페인 햇볕을 걱정해주기로 했다. 친구의 인생이라서기 보다는 그에게 공감하니까. 단지 그가 나보다 용기 있는 것뿐이니까. 사실 J의 말에 회사 이야기부터 꺼내버린, 속물스러운 노예근성에 진절머리가 나 더더욱 토를 달 수 없었다.
서른 살을 넘고 보니 J처럼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지 고민하는 친구들이 늘었다. 회사나 일에 대한 고민이라던가, 근본적으로 이번 생애에 대한 반성 등이 이유였다. 주변보다 취업 자체가 늦은 편이라 정작 스스로는 한 눈 팔 겨를이 없었지만 말이다. 이 쪽은 이제야 만 삼 년을 꽉 채웠다. 심지어 한 직장에서 삼 년도 아니라 더더욱 딴 곳을 쳐다볼 정신이 없었지. (전 직장이 어려워져서 권고사직당했다. 집에 불이 나면 고가의 귀금속은 들고 나오기 마련인데, 난 두고 나온 밥상이었지.) 대부분 짧게는 사오 년, 길게는 십 년 가까이 일한 친구들이 많은데 연차가 쌓일수록 시야도 넓어지는 모양이다. J도 대충 오 년 정도 일했을 거다.
J와 술잔을 기울이다 문득 말뿐이었던, 허나 당시에는 진심 가득했던 다짐들이 떠올랐다. 락스타의 꿈은커녕 기타나 음악은 취미로도 내려놓은 지 오래다. 한 장밖에 구하지 못했던 2002년 월드컵 티켓을 8년 뒤 남아공 월드컵 때 두 장으로 보답하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대한민국의 첫 승리를 혼자 보고 온, 중학생 아들의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지만. 누군가에게 변치 않겠다 다짐했던 사랑의 언어들도 지금 보니 다 새빨간 거짓말. 당시에는 모두 진심이었다. 진심이었을 거다. 지나고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했을 뿐이다. 여행도 그렇다. 입으로야 늘 떠나고 싶다고, 한 달쯤 외국에 나갔다 오면 여한이 없겠다 되뇌곤 한다. 실제로도 그러고 싶다고 생각하며, 여행도 자주 떠난다. 다만 딱 회사에서 허락하는 연차 선에서 한정된 이야기이며, 한 달 정도의 장기 계획은 언감생심이다. ‘회사를 관둘 순 없으니까’, ‘한 달 나가 살 돈은 이제 모아봐야지’등의 핑계를 의식 한편에 쌓아두고 살다 필요할 때가 오면 습관적으로 꺼내 든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열심히 살지 않는다거나 거짓된 삶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다. 분명 그랬던 시절도 있기는 했었으나 지금은 나름 최선을 다해 살고, 내뱉은 말은 최대한 지키려 한다. 단지 J의 다짐을 통해, 말에서 끝날 수밖에 없었던 후회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소시민’으로 사는 지금의 ‘소심인’ 처지가 약간 서글퍼졌다. 그나마 사진이나 글쓰기 정도는 취미라는 이름 하에 붙들고 있는 소심인이지. 원래보다 더 그럴듯한 의역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8마일’의 대사가 떠올랐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사실 영화 속 에미넴의 처지처럼 최악의 상황도 아닐뿐더러, 개인적으로는 되려 만족도 높은 삶을 살고 있어 배부른 넋두리에 불과하다. 조금은 감상적으로 변해버리고만 의식의 흐름을 보니 친구와 맞댄 술잔이 얼추 주량에 도달했는가 보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 날개도 채 펴보지 못하고 박제된 꿈들에 눈길이 닿는 순간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지만 입 안이 씁쓸해지는 것은 왜일까? 만약 십 년, 이십 년 전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그들이 소중하게 적어놓은 꿈들을 외면하고 살아온 서른 세살과 마주친다면 어떤 표정을 지어줄까? ‘그래도… 형, 혹은 미래의 나야. 그동안 수고했어.’란 말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살면서 손에 꼽힐 정도로 눈물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과거와 오늘의 나 모두가 부둥켜안고 우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런 이야기를 건네받고 싶다.
친구의 ‘순례자 길’을 응원했다. 돌아오는 발걸음도 환대해 주었지. ‘소심인’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다. J는 걷는 내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단다. 지금 느끼는 결핍을 해소하고 왔단다. 여전히 모르겠지만,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J는 한국에 들어온 뒤 금세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서너 달 고생하긴 했지만 얼마 전 새 직장도 구했다. 출국 전부터 나름 계획을 세우고 갔던 터라 지금은 여행 유튜버 꿈나무 이기도 하지. 가장 중요한 변화는 J의 모태 솔로 탈출이다. 걷고 온다더니 썸도 타고 왔다. 옆에서 그렇게 도와주려 애써도 못하던 탈출이었는데, 혼자 알아서 어떻게 하고 왔단다.
그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과 비교해 진정 달라졌다 생각할까? 최소한 옆에서 보았을 땐, 여전히 변함없는 친구이나 냄새와 색깔이 달라졌다. 첫 번째 허물을 벗은 뒤, 좀 더 단단한 냄새가 난다. 전보다 윤기 나는 사람이 되었다. 비슷하지만 전혀 달라진, 두 번째의 삶인 거다. J를 보고 있자니, 이 생애의 두 번째 삶은 언제쯤 찾아올지 궁금하다. 서른셋, 첫 번째 삶도 정신없고 갈 길이 구만리지만 말이다. 그래도 별 일없이 살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언젠가 찾아올 이 생애의 두 번째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