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결혼식.

형 장가보내기 대작전!

by Monochrome blues
너도 알지? 우리 결혼식 사회는 무조건 너라는거.


내 나이 서른셋, 처음으로 결혼식 사회를 맡았다. 그래, 알고는 있었다. 그와 그녀가 결혼한다면 결혼식 사회는 무조건 나여야 함을 말이다. 그는 대학 동기다. 삼수를 한 그는 한 살 많은 형이다. 대학교 OT 때 처음 본 그가 ‘너무나도 사랑하고 아끼는 형’이 되는데 한 달이면 충분했다. 따뜻한 데다 착하고 훈훈하며 노래까지 끝내주었으니까. 까칠하고 가시 돋친 재수생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지. 굳이 단점을 꼽자면 다소 작은 키인데, 그거라도 없었음 너무나도 완벽한 탓에 되려 멀리하거나 질투했을 사람이다. 우리는 남자들 예닐곱 명씩 우르르 몰려다녔는데, 그 안에서도 형은 암묵적 리더였다. 카리스마보단 따뜻함으로 나그네 외투를 벗기는 태양 같은 사내지.


7_2.JPG 태양같이 빛나고 따뜻한 사람.


그는 유독 이성에게 숫기가 없었다. 부끄럼쟁이론 이쪽도 지지 않는데, 형은 그 어려운 승리를 쟁취해냈다. 용기 없는 사람은 아닌데 매번 발그레했다. 원래 ‘남의 연애사에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가 철칙이라 소개팅 주선은 절대 하지 않는데, 이 사람에게만큼은 가치관을 꺾어도 아쉽지 않았다. 당시 만나던 친구에게 부탁해 소개팅을 잡았다. 원래는 여자 친구가 생길 때까지 주선해 줄 작정이었는데 첫 번째 분과 잘되었다. 그리고 꽤 오래 만난 그녀와 결혼까지 한단다. 그러니 네가 결혼식 사회를 맡으라는 거다. 결혼식 사회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와 그녀는 동시에 주선자 이름을 외쳤단다. 빼려야 뺄 수 있겠지만 형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 없었다. 아니, 하고 싶었다. 애초에 피할 생각이 없었을뿐더러 그와 그녀의 앞길을 축복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니까. 심지어 청첩장도 첫 번째로 주었단 말이다. 뒤에는 손편지까지 써서 주었지. 예의 상 조금 생각해보겠다 튕겼지만 다음날 바로 결혼식 사회를 맡겠다고 했다. 예비 결혼식 사회자로서 유일한 후회는 지금이 첫 번째라는 점이었다. 이번이 생애 두 번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맡기로 한 날 부터 긴장하진 않았을 테니깐.


누군가의 삶에서 중요하게 기록될 한 페이지를 본인 손으로 넘겨주는 자리다. 심지어, 너무 좋아하는 사람의 새 시작이니 절대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름 한 달 전쯤부터 몸 관리에 돌입했다. 아마 취준생 시절, 면접 시즌 때도 이렇게 준비하진 않았을 거다. 생각해보니 웃겼다. 그땐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형의 결혼식에 몇 배는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니깐. 연전연패하던 취준생의 찌질함이 떠올라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서먹서먹한 아들과 아버지 사이가 다 그렇듯 아버지께 대소사를 일일이 보고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도움을 청했다. 젊으셨을 땐 사회로, 중년엔 주례로 결혼식장을 많이 다니신 당신이다. 분명히 맛깔난 멘트를 품고 있으실 거라 믿었다. 당신께서는 아들 전화에 약간 놀라신 눈치셨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아들내미가 웬일로 살갑게 삶의 지혜를 여쭈어 오니 말이다.


물론 모든 게 계획대로 되면 인생이 아니지. 결혼식 열흘 전쯤 출근길이 으슬으슬했다. 다시 올라가 외투를 챙겨 오기엔 시간이 촉박해 버텼더니 귀신같이 감기가 찾아왔다. 목이 붓고 열이 나며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 아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기침은 없다는 점. 하지만 스트레스는 최고점에 달했다. 진짜 딱 한 번 춥게 다녔다고 공든 탑이 무너지다니. 내가 이러려고 술도 끊고 규칙적으로 일찍 자며, 삼시 세 끼 잘 챙겨 먹었나 싶어 우울했다. 이러다간 당일까지 낫지 않겠다 싶어 아껴두던 연차까지 써먹었다. 직장인이라면 알 거다. 피 같은 연차를 남을 위해 쓴다는 말의 의미를. 형을 위해 몇 발 남지 않은 총알을 썼다. 그 와중에 아프고 짜증 난 탓에 울면서 대본을 외우고, 입에 붙는 단어로 대본을 끊임없이 수정했다.


기적처럼 결혼식 당일, 컨디션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우리 할머니 표현 상, 거렁뱅이같은 옷을 좋아하는 손자인데 이 날을 위해 큰맘 먹고 지른 정장도 옷장에서 꺼냈다. 비장한 결의로 넥타이를 매고 머리도 바짝 힘주었다. 제갈량이 출사표를 던지고 출정하던 심정이 이랬을 거다. 한 시간 반 전에 도착한 식장에서 다른 결혼식 진행 과정을 보며 식장 구조라던가 신랑 신부 동선을 파악했다. 몰라보게 멋있어진 신랑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게도 떨림이 멎었다. 어디서 흘러나온 자신감인진 모르겠으나 사회를 망칠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다만 신부를 보면 다시 긴장할까 봐 대기실을 찾진 않았다. 우황청심환을 챙겨 먹고 사회 단상에 섰다. 첫마디를 떼는데 약간 주저하다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렇게 스물두 살이던 형을 서른넷에 장가보냈다.


1503456990.jpg 따뜻한 사람, 따뜻한 출발.


냉정하게 그 날의 성적을 매기자면, 100점 만점에 93점을 주겠다. 첫 번째 사회라 흐름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데서 3점을 뺏고, 겸손해 보이고 싶어 4점은 그냥 깎아보았다. 솔직히 자화자찬하는 얘기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잘했다. 다신 이보다 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서로 헐뜯고 물어뜯기 좋아하는 대학교 친구들도 이 날만큼은 사회자의 유능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단다. 십 년 넘게 알고 지낸 악마들이 오늘처럼 순한 양 모드로 좋은 말만 해주는 건 처음 봤다. 그래 이 정도면 난 할 만큼 했다. 동생이 해줄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제부턴 그와 그녀의 차례다.


잘 살자,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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