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이 경력이 없어 문제라니요?
혹시 그 친구 어때요?
타 부서 동료의 뜬금없는 질문에 무엇이 어떤지를 반문하였다. 동료가 말한 ‘그 친구’는 자기 부서에 배정되어 수습 기간을 밟고 있는 신입이었고, ‘어떻냐’의 의미는 일에 대한 능력이나 배우는 속도 등 전반적인 내용이란다. 신입 직무 교육 중 한 두 꼭지를 맡고 있는 사람이 나라서 물어보았단다. 굳이 의견을 말해주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부담스럽기도 하여 적당히 얼버무렸다. 아직 본인 앞가림도 하기에 바빠 내가 누구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일 자체도 어불성설이어 말이다. 묻는 의도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알 것 같아 더더욱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말을 듣기 위해 꼬드길수록 능글맞게 빠져나왔다. 결국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웃으며 자리를 벗어났지만 마음 한 구석은 복잡해졌다. 그가 무례하거나 틀려서가 아니라 이해는 되어서. 이해되는 마음 자체가 서글퍼서 말이다.
조금은 본인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IT회사의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보통은 서비스 기획을 하는 편인데 필요에 따라 사업 기획 영역도 다룬다. 창의적인 쪽은 타고나질 못해 데이터를 지향한다. 요새 자주 들리는 통계 분석이라던가 ‘빅 데이터’, ‘머신 러닝’ 같은 영역도 얕게나마 다룰 줄 알기도 하고. 딱 그 정도의, 회사를 다닌다면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직장인 A’다. 조금 더 과거 이야기를 해보자면 공대 출신임에도 ‘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사실 꿈을 찾기 전까지는 전공에 적응하지 못했다. 남들 다하는 대외활동이나 공모전을 따라 하다 보니 ‘기획’ 일이 좋았고, 그때부터 ‘기획자’의 꿈을 가졌다. 그 이후로 기획 직무란 명칭이 박힌 회사 명함을 갖는데 삼사 년, 그래도 최소한의 ‘기획자’ 요구 조건에 부합되는데 또 일이 년 정도는 더 소요되었다.
첫 직장은 기업 대상 솔루션을 개발하던 스타트업이었다.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갈 수 있는 곳이 거기뿐이었다. 몇 회 차의 취업 시즌 동안 족히 몇 백번의 지원서를 쓰고 지웠다. 모조리 불합격 통보, 결과적으로 전패였다. 최종 면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XX 씨는 1차 기술 면접 때 피드백도 그렇고 수상 경력도 다 좋은데 기획 경력 자체는 없으시네요.’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지. 옆이나 옆 옆에는 꼭 회사를 다니다 온 ‘중고 신입’이 있었으니까. 길든 짧든, 어느 규모이든 간에 회사에서 쌓은 ‘진짜’ 경력이 있는 사람 말이다. 사실 즉시 전력이 되어줄 동료가 필요한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경력이 전무한 기획자는 부담스러워했다. 그래도 한 번같이 커보자며 베팅해주었다. 그만큼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더더욱 열심히 일하고 배웠다. 체계가 덜 잡혀 있던 탓에 작은 일 하나에도 어둠 속에서 헤매어야 했고 야근은 일상이었지만, 기획자로서의 첫 발을 뗄 수 있었단 사실만으로 안심하던 시절이었다.
입사 일 년 차,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한 회사 사정 때문에 잘려나갔다. 비개발자는 모두 감축 대상이었다. ‘다른 이들은 내보내더라도 XX 씨와 만큼은 계속 가고 싶었다’는 대표의 말은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쇼미 더 머니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출연자가 프로듀서를 욕하며 카메라 밖으로 사라지던 악마의 편집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다음에 누군가와 만나다 헤어지더라도 ‘착한 사람 코스프레’는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급한 대로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든 것 치고는 두 달 만에 직장을 구했다. 운 좋게도 훨씬 큰 규모의 대우도 좋고 소위 ‘워라밸’도 괜찮은 회사에 합격했다. 마침 이전 회사에서 했던 일 그대로, 즉시 전력이 되어줄 기획자를 찾고 있던 회사로서는 이쪽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종 면접장에서 늘 부러워하던, 진짜 경력이 있던 상대의 입장이 되었지. 입사한 뒤의 환경도 좋았다. ‘주니어 기획자’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입사 후 몇 개월 동안 배웠던 ‘일하는 방법’이 몇 년치의 경험만큼 소중했다. 물론 맨 땅에 헤딩했던 경험이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주었으며,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할 입장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지금은 최소한 ‘일‘을 하고 있단 느낌으로 회사를 다닌다.
조금 하겠다던 이야기가 감정이 실려버린 탓에 길어져버렸다. 요지는 회사나 동료 입장에서는 경력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을 채용할 수 있다면야 가장 좋겠지만, ‘기획’ 업무처럼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분야는 대체 어디서 경험하고 와야 하는 것이란 말이다. 학교에서 전공으로 익히고 올 수 있는 개발이나 디자인 분야도 결국 회사에 와서 훨씬 많이 배우거나 새로 배워야 한다고 토로하는데 하물며 기획 같은 분야는 어찌해야 할까? 기본 소양으로 공모전이나 대외 활동을 통해 알아서 배워와야 하는 걸까. 그마저도 진짜 경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인 신기루와 같은 무언가를 위해서 말이다.
실무 입장도 이해는 간다. 여유가 있어서 사람을 뽑는게 아니라 진짜 당장의 인력이 부족해서 채용 공고를 올리는데, (최소한 지금 회사의 경우에는) 가르쳐서 배치하기에는 그동안의 수고로움과 본인의 업무 과중을 무시할 수 없다. 나만 해도 몇 시간 안 되는 직무 교육 지원 때문에 알게 모르게 볼맨 소리를 하고 있으니까.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굴 가르칠 여력이 있겠는가? 이왕이면 대충 업계 돌아가는 방식도 알고 몇 발 자국 담가본 사람과 일하기가 수월하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만 연봉의 딜레마도 한몫한다. 핏덩이 같은 신입과 제 몫을 다하는 자신의 월급이 얼마 차이 나지 않거나 역전 현상이라도 일어나면 속상할 수밖에. 아니, 배 아프다. 칠흑 같던 터널 속에서 춥고 배고팠던 기억이 선명한 사람마저 배가 아플락 말락 하니 말이다.
톱니바퀴로써는 이런 일들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이고 고쳐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배울 기회만 주어진다면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기회를 주는 일 자체가 말처럼 쉽지 않다. ‘배우는 태도’라던가 ‘방식’등의 문제라면 확실히 선을 그어 말할 수 있겠지만. ‘얼마만큼 배우고 와야 하는가’의 문제라면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다. 많이 배우고 오면 올수록 좋겠지만, 그 최소 조건은 무엇이고 ‘성장 가능성’이라 일컬어지는 ‘덕목’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책정해야 할까. 애초에 누구에게 기회를 준다는 표현이 맞긴 한 걸까?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라던 한 예능 프로의 대사를 보며 웃을 수 없기로는 직장을 갈구하던 그때에도, 그토록 원하던 ‘기획자’ 명함을 가지게 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때에는 당시 심정을 대변이라도 해주는 것 같은 블랙 코미디로 받아들여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해지기라도 했다. 지금은 매일같이 ‘기획자’로서의 직업 수명과 스스로의 안위 사이에서 소심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던 차라 괜히 마음에 꽂히는 말로 들려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