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취미라면 망상은 특기입니다.
아, 이번엔 될 거 같은데?
진짜 되면 어떡하지?
공모전 결과 발표가 일주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고, 고심 끝에 써둔 글을 정성스레 제출했던 일이 어제와 같은데.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괜스레 상큼한 맛이 당긴다. 아무래도 점심때 김치말이 국수를 먹어야 할 판이다. 기분 좋은 설렘에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분명 고백하건대, 처음에는 한결같이 참가에 의의를 둔다. 하지만 이맘때만 되면 꼭 이렇게 흘러가 버린다. 아래와 같이 엄청난 사족을 붙이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꾸준히 쓰는 걸 목표로 하는 사람이다. 공모전은 꾸준히 쓰기 위한 좋은 땔감이니 불을 꺼트리지 않는데 의의를 두자. 혹여나 만약에 좋은 결과가 있다면 그건 부수적인 감사함인 거다. 절대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 탈락했다 실망하거나 시무룩해 말고 최초의 목적을 잊지 말자.
사실 제출하고 나서도 저 마음은 변치 않는다.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차고 넘친다. 글밥 꽤나 먹은 이도, 정식으로 배운 이도 수두룩 하지. 심지어 세상엔 재능뿐만 아니라 글감마저 부자인 사람들도 엄청나고 말이다. 무수한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거나 범사에서도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프로 사냥꾼이 바로 그들이다. 그에 반해 이쪽은 평범한 삶의 소유자이자 애매한 발톱과 이빨을 지닌 맹수다. 살던 동네에선 나름 먹어주던 ‘글쓰기 골목대장’이었으나 전국구는커녕 큰 길가만 나가도 주눅 드는 서러움이 이젠 익숙할 지경이다.
늑대인 줄 알았으나 고양이인 삶. 고양이도 딴에는 육식 동물이긴 하나 다른 맹수와는 다른 생존 철학을 발휘해야 한다. 덩치가 클수록 한 번에 큰 먹잇감을 노린다. 큰 거 한 방에 모든 게 해소되므로 오래도록 굶주려도 살아갈만하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들에 비해 너무나 연약하고 귀여운 생명체다. 결국 시시때때로, 꾸준히 사냥하여 먹고살아야 한다. 그렇게 진화했다. 조금씩 자주 먹어치우도록 말이다.
거듭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펜을 놓지 않기. 꾸준히 본인만의 글쓰기를 이어가기. 이쪽이 택한 ‘고양이식(式) 집필 활동’의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고양이라던가 하룻강아지에게도 나름의 낭만이라던가 순정은 있는 법이다. 매번 발표일이 기다려진다. 느낌이 좋다. 이번만큼은 정말 다르다 자부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봐도 나쁘지 않단 말이다. 아니, 조금 많이 봐줄 만하지. 심사위원께서도 분명 구미가 당길 거다. ‘최소 장려상 정도는?’ 이란 금기된 생각에 꾹꾹 눌러왔던 행복 회로가 폭발한다.
심지어 이놈의 고양이께서는 복에 겨운 고민 보따리를 풀어 제친다. 여태껏 부끄럼이 체질에 맞아 본인 발톱을 숨기고 사뿐사뿐 걸었다. 덕분에 주변에선 이쪽이 글쓰기가 취미란 사실 정돈 알고 있으나 실제 읽어 본 사람은 드물다. ‘관심 있든 없든 절대 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다’가 첫 번째 철칙이라 그렇다. 부끄럽기도 하고, 신경 쓰이는 탓에 앞으론 맘대로 키보드를 두드리지 못할까 봐서다. 근데 상을 받게 되면 지금 같은 은밀함은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필명과 본명 사이에 연결 고리가 생겨버리는 순간일 테니 말이다. 그럼 난 이제 어떡하지? ‘글쓰기 셀럽’이라도 돼야 하는 건가? 결국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며, 상 하나에 별다른 변화는 없을 거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는 우스운 꼴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발표 전 날까지 와버리게 되면, 기대감과 초조함이 극에 달하여 조금씩 우울해진다. 두렵다. 탈락에 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겠는가? 큰 일을 앞둘수록 혹시 모를 변수에 준비하게 되지. 공모전도 비슷하다. 보통은 수상자에게 미리 연락을 취해 이런저런 사항을 최종 확인하곤 할 테다. 그런데 오늘이 오기까지 전화와 이메일은 감감무소식이다. 상큼했던 입맛과 식욕은 여전하지만 조금씩 입 안이 시큼해진다. 묵은지 김치찜에 소주 일 병이 간절해진다. 혹시라도 이메일 주소를 잘못 적어 제출한 건 아니었겠지?
스스로도 웃기다. 매번 계속되는 기대와 시련이 말이다. 짝사랑도 아니고 남몰래 앓으며 행복해하고, 처연해진다. 설렘에 빠져 죽을지언정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보통의 결말이 찾아온다. 수상자 명단에서 익숙한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몰래해왔던 집필 생활이 들킬 걱정이라던가 ‘낯가림 많은 성격에 인터뷰는 또 어찌 하나’와 같은 기분 좋은 민망함이 무색해진다. 너무 푹 익어버린, 시큼하다 못해 쌉싸름해진 이 김치를 또 어찌해야 하나. 잘 헹구어 김치전이라도 해 먹을까? 냉수 마시고 속 차리는 심정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신다. 속이 쓰리다.
그래도 말이다. 글쓰기 목표가 수상에 있었다면 진즉에 굶어 죽었을 운명이다. 실패의 연속에 나가떨어졌겠지. 하지만 이쪽은 생존형 글쓰기에 사활을 걸었다. 김칫국에 우스울지라도 꾸준히 쓰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거다. 끝까지 간 사람이 결국 이기는 이야기를 노린다. 어쩔 수 없이 일희일비하는 일이 습관이다만, 한 마리 고양이가 꿈꾸는 세상은 거기에 있다. 꾸준히 들어 올리는 펜 자체엔 실패가 없는 삶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