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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Jun 28. 2020

이상형을 말할 때 생각나는.

당신과 함께 빠져들고 싶은 것에 대하여.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 그의 ‘수련 연작’을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 그가 그린 연꽃에 반해버린 사람이라면, 이쪽은 아무런 이유도 계기도 필요치 않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평생 동안 그녀에게 반해버릴지도 모르지. 살면서 ‘수련 연작’ 앞에 마주했던 적은 단 두 번 뿐이지만 이런 생각을 품을 정도로 강렬했다. 처음 보았을 땐 압도당했고, 두 번째에 확신했다. 


아, 나는 모네의 수련이 미치도록 좋구나.


   순서를 뒤집어 두 번째 만남부터 얘기하련다. 연초에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보다 ‘모네에서 세잔까지’란 제목의 전시회 소식을 보았다. 모네란다. 길을 걷다 우연히 짝사랑 중인 상대와 마주친 듯 마음 한구석이 저렸다. 그가 보고 싶어 졌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모네가 왔다는데 가야지. 두말 않고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시 중인 작품 중에 수련은 딱 한 점이라 아쉽지만 개의치 않았다. 짝사랑에 빠진 사내에겐 그 정도로도 충분하니까.


   혹시나 첫 만남의 추억만 남아 기억이 왜곡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처음보다 강렬한 발걸음으로 이 내 마음을 두드렸다. 사실 그림의 소재는 별다를 게 없다. 연못에 뜬 수련들과 물에 비친 하늘, 구름, 나무, 바람, 날씨, 분위기. 그게 다다. 거기에 맞는 빛의 색채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단순한 조합으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뽑아낸 거다. 가슴의 떨림이 멈추질 않는다.


지금까지 봐온 그림들 중 빛의 색채와 아름다움을 모네보다 잘 표현해내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연못의 시간은 화창한 오후다. 그럴 것만 같다. 붓터치로 표현한 수면은 거친 듯 부드럽다. 거울처럼 비친 하늘과 구름과 나무는 몇백 년을 거슬러 나에게로 왔다. 연꽃 하나에 그 많은 시간을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아쉬움에 뒤돌아본 그 순간, 나는 새로운 시간의 시선을 만나고야 말았다. 같은 그림 속에서 전혀 다른 장면과 마주했다. 멀어진 만큼 붓터치가 희미해지니 연못 그 자체가 눈에 들어찼다. 연못과 수련의 조화로움이 달리 보였다.  


흐드러지게 화창한.


   가까울 땐, 바람 부는 연못에 비친 하늘이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멀리 서니 숨겨져 있던 잔잔함이 보였다. 어떤 시선에 닿든 새롭고 좋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아 그랬지 참. 처음 만났을 때도 이랬지. 이쪽은 당신의 모든 순간에 반했더랬지.


   모네의 수련 연작을 처음 만난 건 일본에서였다. 지금도 처음 만나던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약간 어두운 입구를 통과하면 수련으로 가득 찬 전시실이 나온다. 상당한 크기의 수련과 처음으로 마주한다. 우선 그 크기에 압도된다. 경외 로운 마음으로 당신과 찬찬히 눈을 맞춘다. 이내 그 색채와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빠져든다. 세이렌의 유혹이 이런 걸까 싶어 하며 온몸에 돋은 소름에 어찌할 바 몰라한다. 다른 벽면에도 작품들도 하나같이 좋다. 저마다의 시간과 계절과 날씨가 다르다. 단지 연못과 수련일 뿐이다. 근데 미치게 좋다. 사랑에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다.  


   첫눈에 반해버린단 건 이런 거겠지. 가까이 서면 붓터치가 느껴지며 흔들리는 수면이 보이고, 멀리 서면 아름다운 빛의 색채가 펼쳐졌다. 한 시간 이상 멍하니 가까이 서다 멀리 서다를 반복하며 벅차오르는 사랑을 고백했다. 요새 같은 시국이 아니라면 매년 찾고 싶은 당신이 되었을 거다. 그림이 있던 미술관은 지하에 지어진 대신 오로지 자연광만을 이용해 공간을 비춘다 하였다. 마음 같아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른 날씨, 계절마다 멍하니 서서 수련을 비추는 조명의 차이를 즐기고 싶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러고 싶어지는 첫 번째 만남이었다.


   클로드 모네를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해보고 싶다. 그가 그린 연꽃에 반해버린 사람이라면, 두 손을 꼭 잡고 연꽃을 멍하니 바라볼 거다. 한없이 피어오르는 이 사랑의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며, 이 사랑이 너인지 혹은 그림인지 조금은 헷갈려하며. 당신과 사랑에 빠져들고 싶다.    


첫 번째 즈음의 수련을 보던 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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