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chrome blues May 10. 2020

내 멋대로 작가생활

뭐래, 나 작가 맞대도?

  ‘네 멋대로 해라’라는 드라마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라 정확한 내용까진 생각나지 않지만 재밌게 봤던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원래부터 양동근, 이나영 배우님을 좋아한 데다 드라마 자체와 감성이 맞았다. 뭔가 짠하고 간질간질한 구석이 많아 나도 모르게 끌렸지. 제목이라던가 분위기, 뉘앙스 등등 모든 부분에 공감하고 위로받았다. 어설픈 미성년의 삶일지라도 ‘네 멋대로’란 제목 그 자체가 주는 어감이 좋았다. 발목을 옥죄는 무수한 족쇄들에 한창 답답해할 나이였으니까. 사실 그땐 어른만 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그래서 빨리 나이를 먹고 난 뒤, 내 멋대로 훨훨 날아오르길 꿈꿨다. 그런데 묶여있기로는 마찬가지는커녕, 전보다 거칠고 잔인해졌다. 미성년을 지나 미성숙해진 어른의 삶에선 가시 돋친 족쇄를 목에 걸고 있기 때문이리라. 스스로의 생을 책임져야 하는 순간들 앞에서 가시는 더 날카롭고 빽빽해져만 갔다.


   아이의 족쇄는 발목에 걸려있는 탓에 스스로 쳐다볼 수라도 있었으나 지금의 것은 목에 걸리어 시선에 닿지 않는다. 보질 못하니 어떤 타이밍에 찔리는 지도 알 수 없지. 결국 나이 먹어 갈수록 의심과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실제로 묶여있긴 한지, 목을 옥죄는 무언가가 사실 이 두 손은 아니었는지 등등 말이다. 결국 무디어진 척 방어적으로 변해갔다. 왜 그런 얘기도 있지 않은가? 일 미터 가까이 뛸 수 있는 벼룩을 잡아다 놓고 작은 병에 가둬 놓으면 천장에 부딪히길 반복하다 딱 병 높이만큼만 뛰논단 말 말이다. 그래 놓고 벼룩을 풀어주면 그 후로도 딱 그만큼 밖에 뛰지 못한다는 결론으로 끝나는 그 이야기 말이다. 꿈을 포기하지 말라던가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는 오늘의 교훈까지 건네주지. 아늑한 거북이 등껍질 속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해보니 이쪽이 벼룩인 양 정수리가 아팠다.  


   어렸을 땐 무언가 창조하는 생을 살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음악이 너무 하고팠다. 배를 곯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곡, 짤막한 후렴구만이라도 세상에 꽂아 넣는 사람이고 싶었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나의 묘비명에는 본인의 분신과도 같은 노래 제목이 이름 옆에 쓰일 수 있는 삶이면 되었다. 근데 너무 높은 곳에 매달린 꿈이었다. 누군가 인생의 모든 걸 걸어보고서 투정하는 거냐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단 말이다. 갈고닦을만한 재능은 손에 쥐지 못했단 사실을 자각할 수 있을 정도로만, 딱 그만큼만 갖고 태어났으니까. 목구멍에서, 혹은 머릿속에서 ‘현실적’으로란 단어가 맴돌던 그 어느 순간. 이쪽은 다 타버린 성냥처럼 언제 치열했었냐는 듯 빠르게 식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지는 석양에 붉게 타오르는 호수이고 싶었지만.


  하지만 벼룩처럼만 살다 갈 순 없지. 그건 용납할 수 없다. ‘겁 많은 반항아’란 모순적 특성 탓에 현실과 타협할지언정 포기할 순 없었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할지라도 말이다. 그 덕에 작지만 본인만의 냄새를 풍기는 텃밭을 일구고 산다. 직장에선 무언가 기획하는 사람으로 불린다. 마음에 딱 들어차진 않더라도, 작게나마 무언가 만드는 일상을 살지. ‘예술가’는 포기했으나 ‘작가’의 호흡만은 여전히 가슴속에 품었다. 작가의 삶을 살고자 한다. 비록 수필인지 소설인지, 혹은 사진이 될는지 알 수 없으나, 앞에 오는 수식어 자체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지금은 방구석에서 집필 중이나, 스스로 ‘작가’라고 의식하는 데서부터 첫걸음을 떼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미약하고 부족할 지라도 그게 뭐 어떤가? 스스로 믿는단 사실이 중요하지. 한 문장을 담더라도 꾹꾹 눌러쓰며 꾸준히 셔터를 누른다. 직장인의 삶을 빼고 보자면 지금은 단 한 줄의 문장, 한 장의 사진이 명함이 되길 바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피그말리온처럼 살고 있으니깐. 


   나는 작가다. 지망생이 아니다. 누군가의 인정이나 납득은 그다음이며, 지금은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일에서부터 발걸음을 내딛는다. 여전히 목에 묶인 족쇄는 한겨울 칼바람처럼 시린, 단호한 현실과의 타협일 지라도 말이다. 나는 작가다. 평범한 삶 속에서 찾는 한 줌의 사금(砂金)이다. 누군가 ‘네 멋대로 하라’며 찾아준 길은 아니지만, 스스로 찾아낸 ‘내 멋대로 작가 생활’이다. 지금의 꿈이 언제 만개할 수 있을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니, 못 다 핀 꽃일지라도 상관없다. 꽃을 틔우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정성을 쏟고 있단 사실만큼은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깐.

못 다 핀 날개일지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